의정갈등 6개월째…정부-의료계, 눈치 안 보고 제 갈 길 간다

정부, 하반기 모집 강행…의료계 ‘전공의 구하기’로 세 결집
환자들 "국민 치료권 방해…몰염치하고 반인륜적"

23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 신입 전공의 모집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4.7.23/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의대증원으로 불거진 의정갈등이 6개월째로 접어든 가운데 대화를 통해 정상화를 모색하기보다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각자의 길을 가자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전공의 이탈 이후 지난 5개월 동안 양측 모두 가진 패는 다 보여준 터라 더 내놓을 카드도 마땅치 않다.

무엇보다 '의대증원 백지화'를 요구하는 의료계 배수진에 의정 대화는 단절된 상황. 결국 이 문제를 풀려면 어느 한쪽이 백기투항해야 한다는 얘긴데, 이 또한 불가능에 가깝다.

이에 정부는 지역의료와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개혁을 정부 스케줄에 맞춰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의료계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반기 전공의 모집을 강행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사직 전공의들의 지원이 저조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마지막까지 전공의 복귀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하반기 모집에 지원하지 않은 전공의가 개원가에 취업을 하든, 군 입대를 하든 그건 전공의 개개인이 감당할 몫이지 정부가 관여할 일은 아니라고 했다.

'무기한 휴진' 등으로 정부를 압박했던 의사 단체와 의사들도 답답하긴 매한가지다. 의대증원 반대 자체가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항복을 이끌어낼 투쟁동력마저도 힘에 부친다.

이에 의료계는 '전공의 구하기'를 통해 분위기 전환을 모색 중이다. 이번 사태에서 의료인이라면 누구나 '아픈 팔'로 여기는 전공의 구제를 매개로 단일대오 전선을 회복시킨다는 전략이다. 다만 전공의 구하기 방식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정한 전공의 복귀 시한일인 15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정부가 ‘데드라인’으로 제시한 사직 처리 시한이 임박했지만 수련병원으로 복귀하는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전공의 1만 명 이상이 사직 처리되면서 대형병원 의료공백이 계속될 전망이다. 2024.7.15/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보건복지부 산하 수련환경평가위원회는 하반기 전공의 모집 인원을 7645명으로 결정했다. 지원자들은 31일 오후 5시까지 지원병원에 응시원서를 제출해야 한다. 합격자는 8월에 발표될 예정이다.

하지만 증원 철회 전까지 현장에 오지 않겠다는 전공의들을 생각해 일부 의대 교수들은 이번 하반기 모집 지원 전공의들을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연세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학풍을 함께 할 제자와 동료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가톨릭의대에서 영상의학과, 안과, 피부과 교수들이 모집 거부 의사를 표명했고 성균관의대 영상의학과 교수 등 빅5 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둔 의대 교수 비대위 등도 모집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사직 전공의 대다수는 올 하반기 수련에 복귀하지 않고 미용성형을 주로 하는 병의원이나 요양병원 등의 일반의로 취업 또는 미국 의사 면허 취득 등을 준비 중인 걸로 알려졌다. 대한의사협회 등 선배 의사들은 전공의의 구직난과 진료 고민을 돕겠다는 계획이다.

더군다나 대다수 의대생은 2025학년도 의사 국가시험을 응시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에 따르면 현재 의사 국시 응시 예정자 중 95.52%가 의사 국시를 거부할 걸로 파악됐다.

이런 일련의 상황들에 대해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의료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다. 엄살이 아니라 진짜다. 사회 안전망이 붕괴되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의협은 상황 심각성에 대해 진지하게 전 국민에 알려야 한다"고 언급했다.

임현택 의협 회장도 "가을턴은 환자 살리는 총알 빗발치는 전쟁터의 전우애를 산산조각 내는 일"이라며 "정부가 국민 생명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면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전공의와 의대생 요구를 받아야 한다. 그게 이 사태를 수습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적었다.

사태 해결을 목표로 출범된 의협 산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는 26일 오후 2시 의협 회관에서 '대한민국 의료 사활을 건 제1차 전국 의사 대토론회'를 열어 앞으로 의료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올특위는 "지난 6월 총궐기를 통해 의사들의 투쟁 의지를 확인했고, 이번 토론회에서는 현 사태의 실질적 해법 모색의 장이 열릴 것"이라며 "파국으로 치닫는 의료 현실에 대해 다 같이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대토론회에 앞서 26일 오전에는 강원의대 교수 비대위·충북의대 교수 비대위가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청사 앞에서 '지역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2025 의대증원 취소를 위한 집회'를 개최한다.

하반기 전공의 모집이 시작된 가운데 서울 빅5 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둔 의대 교수들이 잇따라 교육 및 지도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다.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의 모습. 2024.7.24/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그중 충북의대 교수 비대위는 같은날부터 무기한 휴진에 들어간다. 참여는 교수 자율에 달렸다. 다만 입원 병동, 응급실, 중환자실, 응급수술 등 필수의료 업무는 유지하기로 했다. 앞서 교수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62.7%가 휴진에 찬성한 상태다.

비대위는 "미래를 걸고 싸우고 있는 전공의·의대생과 함께하기 위한 결단"이라며 "환자를 볼모로 잡고 있는 것은 의사가 아닌 '불통'의 정부"라며 "병원을 이용하시는 환자들에게 불편을 끼치게 돼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사태 장기화 과정에 정부와 의료계 대화는 성사되지 않고 있다.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 의협·전공의·의대 교수들은 불참하는가 하면 의협 올특위를 전공의 단체·의대생 단체가 거부하는 등 의료계 내 대화도 원활치 않다. 사태를 지켜보는 환자들은 답답함만을 토로하고 있다.

중증질환 환자단체인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교수들의 하반기 전공의 모집 거부 선언 등에 대해 "환자의 고통과 생명을 포기하고 국민 치료권을 방해하는 행동은 자랑스러운 학풍이 아니라 몰염치하고 반인륜적 학풍이다. 부끄럽게 생각하고 철회하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연합회는 또 "현재 의료 공백으로 인한 대한민국에서의 삶은 중증, 희귀질환으로 진단받는다는 건 곧 죽음, 공포 그 자체"라며 "이런 상황에서 현재 대학병원은 일반적 전공의와 의료인의 이탈을 막는 게 선결과제"라고 강조했다.

ks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