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전약후] 입덧 방지 소문에 기형아 2만명…'탈리도마이드' 슬픈 흑역사

약 부작용 최악 사례…'거울상 이성질체' 원인 뒤늦게 밝혀져
임상시험 안전성 중요 교훈…다발성 골수종 치료제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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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태환 기자 =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 환자 치료에 사용하는 '탈리도마이드' 성분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의약품 부작용 사례를 낳은 약으로 회자된다. 지금이야 약의 특성에 맞게 사용하지만, 1960년대 이 약은 2만명의 기형아 출산이라는 되돌릴 수 없는 비극을 초래했다.

탈리도마이드는 항생제 개발 도중 발생한 부산물로 처음 세상에 등장했다. 독일의 제약회사인 그뤼넨탈이 이를 발견해 1957년 10월 서독에서 '콘테르간'(Contergan)이라는 제품명으로 출시했으며, 수면 진정제로 사용했다.

이후 탈리도마이드 성분이 입덧 방지에도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임신부들도 이 약을 찾았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약을 복용한 임신부들이 팔 다리가 없거나 짧은 아이를 출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탈리도마이드 복용으로 인해 '해표상지증' 기형을 갖고 태어난 신생아만 전세계 약 2만명에 달한다. 이 비극의 원인은 도덕적 해이였다. 그뤼넨탈은 동물실험에서 부작용이 없었다는 이유로 '안전성'을 주장했고, 아무도 기형 출산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결국 독일의 소아과 의사인 비두킨트 렌츠가 사회적으로 급증한 기형아의 숫자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면서 임신 초기 3개월간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한 임신부들에게서 공통적인 기형아 출산이 나타났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로 인해 탈리도마이드는 출시 5년만인 1961년 11월 독일에서 판매 중단 조치를 받는다. 일본 등 다른 해외 국가에서도 1962년부터 탈리도마이드 판매 금지 조치를 취했다.

오직 미국식품의약국이 자국민의 건강을 지켜낸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허가 심사를 맡은 프랜시스 켈리는 태아에 미치는 영향 등 안전성 자료 불충분을 이유로 허가를 내주지 않았고, 그 결과 미국 내 부작용 사례는 17건에 그쳤다.

훗날 탈리도마이드가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킨 원인은 '거울상 이성질체' 때문으로 밝혀졌다. 사람의 왼손을 거울에 비추면 왼손과 오른손이 같은 모습이 되듯이 분자 구조는 같으나 R형과 S형으로 다른 탈리도마이드가 존재했던 것이다.

R형의 경우 원래 기대된 진정과 수면 작용을 하는 반면, S형은 혈관 생성을 억제하는 부작용을 갖는다. 탈리도마이드의 경우 R형을 분리 복용한다고 해도 체내에서 상호 전환해 S형이 생성되고, 태아 기형이 발생한다.

이 같은 경험은 임신부 부작용 등 인체 투약 안전성을 중요시 하는 현대식 임상시험과 의약품 허가 과정을 정착시키는 계기가 된다. 특이한 점은 탈리도마이드가 혈관 생성 억제 부작용을 활용한 한센병 치료제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이다.

실제 FDA는 임신부 복용 금기를 조건으로 1998년 한센병 합병증 치료 목적으로 탈리도마이드를 정식 허가한다. 이어 혈관 생성 억제 기전을 암세포 사멸에 활용하면서 지난 2006년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로도 품목허가를 승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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