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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의 페르시안 나이트

피로 얼룩진 이슬람 주도권 쟁탈전

이상문 | 입력 2016-08-10 10:54:02
아슈라 기간에는 이란의 대도시에서 후세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가장행렬이 펼쳐진다. © News1 이상문 기자.


페르시아 역사상 가장 풍요로웠던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폐망은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의 사후에 이뤄진다. 632년 6월 8일 무함마드가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은 채 갑자기 사망해 버리자 이슬람 세계는 수렁에 빠진다. 무함마드처럼 강력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가진 칼리프(후계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혈통으로 보면 당연히 무함마드의 사촌동생이면서 사위였던 알리가 칼리프로 선출돼야 하지만 뜻이 한 곳으로 모아지지 않았다. 지도자 결정을 두고 열린 회의에서 무함마드의 칼리프로 알리 대신 무함마드의 장인이자 친구였던 아부 바크로가 선출됐다.

◇ 후계자 계승 둘러싸고 갈라진 시아파와 수니파


바크로는 동로마제국과 사산왕조 페르시아를 침공해 큰 승리를 거두며 조로아스터 국가였던 사산왕조 페르시아를 위협했다. 그리고 그의 후계자였던 우마르가 이슬람 포교를 위한 정복 전쟁을 펼쳐 페르시아는 물론 이집트까지 장악하며 중동지역 전역을 이슬람 국가로 만든다. 초대 칼리프로 지명됐던 바크로는 칼리프로 지명된 지 2년 만에 사망했고 무리한 정복 전쟁을 펼치던 우마르도 기독교도에게 암살당했다. 그뿐만 아니라 우마르의 뒤를 이었던 우스만조차 타민족 폭도들에 의해 암살당하자 더 이상의 후계자를 찾지 못하던 이슬람 세계는 무함마드의 사위인 알리에게 4대 칼리프의 자리를 물려줬다.

그러나 알리는 반대파에 의해 살해당했고 그의 아들로 5대 칼리프에 등극한 하산은 성품이 유약해 바크로 가문에 충성을 맹세하고 명맥을 유지하다가 결국 또 암살당하고 만다. 이처럼 무함마드 사후의 이슬람은 피의 역사를 거듭했다.

시아파의 시조격인 후세인이 반대파에 살해당하는 모습을 재현한 가장행렬. © News1 이상문 기자

4대 칼리프에 알리가 오르는 동안 알리의 가문은 오랫동안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아부 바크르가 초대 칼리프로 선출됐을 때 무함마드의 순수혈통인 알리를 지지하던 사람들이 시아파를 만들었다. 시아파 무슬림들은 알리가 칼리프에 오르기 전까지 강하게 저항했다. 그리고 알리의 차남이자 무함마드의 외손자인 후세인이 거의 형 하산이 죽은 후 칼리프 자리에 오른 야지드 가문의 세습체제에 대항해 이라크의 카르발라에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참혹하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같은 이슬람이지만 시아파와 수니파가 오랫동안 앙숙이 된 사연은 바로 이런 역사적 원혐이 쌓였기 때문이다.

시아 이슬람의 종주국인 이란에서의 가장 큰 종교행사는 ‘아슈라’다. 바로 알리의 차남 후세인이 수니파에 항거하면서 일으켰던 반란에서 무참하게 살해당한 순교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후세인은 카르발라에서 수니파 무슬림들에게 포위돼 9일 동안 사막에 갇혔고 물 한 방울 공급받지 못했다. 그리고 10일째 되던 날 참혹하게 처형됐다. 결국 아슈라는 시아 이슬람과 수니 이슬람의 갈등의 핵심이 되는 날이다.

◇ 이란 최대 종교행사 ‘아슈라’는 시아·수니 이슬람 갈등의 핵심


이날은 이슬람력인 무하람으로 매년 1월 10일부터 1주일가량 이어진다. 서양력으로는 일정하지 않아 들쭉날쭉하다. 사람들은 아슈라 기간에 후세인의 고통을 직접 느끼기 위해 금식을 하고 채찍을 휘둘러 자신의 몸을 자학한다. 청장년층은 물론 청소년들마저 쇠사슬로 자신의 몸을 내리쳐 심한 상처를 낸다. 그런데 그들은 말한다. “후세인의 사랑으로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상처도 집에 가서 씻고 나면 말짱하게 없어진다”는 것이다.

아슈라 기간에 이스파한의 최대 모스크인 이맘모스크 정문 앞 작은 분수에는 후세인의 순교를 상징하는 핏물이 고인다. © News1 이상문 기자

예를 들어 이렇다. 인도의 갠지스 강의 최대 도시인 바라니시의 강변에서 목욕을 하고 물을 떠마시는 힌두교도들은 이교도들로 하여금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도시에 접어든 갠지스의 강물이 탁하게 변하기도 했지만 불과 수십 미터 옆에 화장터가 있어 화장한 후 시신을 태운 재를 고스란히 강물에 흘려보내는데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강물을 마시고 그 강물에 몸을 담근다. 종교적 힘이 아니라면 도저히 믿기 힘든 장면이다. 그들은 그 물을 마시고도 배탈 나는 법이 없고 목욕하고도 피부병에 걸리지 않는다. 아슈라에서 자신의 몸을 심하게 자해하는 시아 이슬람교도들의 모습과 유사하다. 일종의 종교를 통한 집단 최면인 셈이다.

아슈라 기간에 이란 전역은 고요하다. 아침저녁으로 모스크로 향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지만 가게도 문을 닫고 대중교통도 운행하지 않는다. 길거리에는 온통 검은색 차도르를 두른 여성들과 침울한 표정의 이슬람교도들의 모습만 볼 수 있다. 여행자들은 그 기간 여간 불편하지 않다. 길거리에는 택시 한 대도 다니지 않는다. 당연히 자신의 숙소에서 머물며 길거리에서 펼쳐지는 아슈라 행사를 지켜보는 방법밖에 없다.

◇ 종교적 단합과 결의 다지는 ‘아슈라’의 집단 최면은 상상 불허

아슈라가 절정으로 치달으면 카르발라에서 사망한 후세인과 그를 따르던 순교자들의 참혹했던 모습을 재현한 가장행렬이 길거리를 메운다. 후세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장이 앞장서고 남녀노소 당시 마르발라의 비극을 재현한 분장을 한 채 나선다. 그들의 모습은 결연하다. 가장행렬의 뒤에 건장한 남성들은 웃옷을 벗어던지고 쇠사슬을 휘두른다. 여행자들의 시각으로 보면 매우 위험하고 폭력적으로 보이지만 그들 스스로는 장엄한 종교의식 중 하나에 불과하다.

아슈라 기간에 야즈드의 한 시장에 상인들이 사라지고 아슈라에 참가하기 위한 시민들이 운집해 있다. © News1 이상문 기자

그리고 모스크에는 후세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의 통곡소리로 가득 찬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한 종교에 대한 신심이 이처럼 광폭하게 표현되는 모습을 보는 일이란 쉽지 않다. 아랍지역의 라마단 기간과는 또 다른 모습인 아슈라 행사의 가운데에 있으면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극단적 모습을 체험할 수 있다.

아슈라는 현재 중동을 뜨겁게 하고 있는 시아파와 수니파의 분쟁의 씨앗이 됐다. 아슈라를 지키는 사람들은 19억 이슬람 인구 가운데 15%에 불과하다. 그것도 이란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다. 이슬람 소수 종파로 핍박을 받아온 시아 이슬람교도들에게는 종교적 단합과 결의를 다지게 해주는 절대적인 버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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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경제제재에서 풀리면서 21세기 골드러시로 떠오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5월1~3일 이란을 국빈 방문한다. 이란과 SOC, 건설, 조선, 석유화학,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의 교역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고대 페르시아제국 때부터 신라와 실크로드를 통해 교류했던 이란의 문화와 역사, 종교, 이란인들의 삶을 현지 취재를 통해 파헤친다. 이 취재는 지난 2014년 11월에 20일간, 지난해 12월에 15일간 두 차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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