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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의 페르시안 나이트

순응은 하되 꺾이지는 않았다

이상문 | 입력 2016-07-06 10:34:46
이란 중부 야즈드 근교의 진흙으로 만든 마을 카르낙. 이 마을은 최소 1000년 전에 조성됐고 현지인들은 4000년 이상 됐다고 주장한다. © News1 이상문 기자

7000년 전 한반도의 조상들은 울산 반구대 절벽 바위에 그림을 새겼다. 짙푸른 바다로 나아가 거침없이 유영하는 고래를 잡아 올려 해체하고 육지에서는 사나운 호랑이를 때려눕혔다. 원시의 거친 삶을 짐작이야 하겠지만 그 이상이었을 수도 있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날카로운 돌망치 정도가 고작이었을 것이고 얼기설기 조악한 그물을 강에 던져 잡은 물고기를 불에 구워 밥상에 올렸을 것이다. 사슴 가죽으로 만든 옷으로 삭풍 몰아치는 해변의 추위를 견뎠을 것이고 한눈판 사이 표범과 멧돼지가 출몰해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린 움막을 바라보며 허탈해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암각화에 그려진 대로 인간은 항상 지구상에서 가장 지혜로웠고 강했다.

◇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땅에 움을 튼 이란의 조상들


그 무렵 이란의 조상들은 사막 한가운데 움을 텄다. 루트사막. 섭씨 70도까지 올라가는,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곳이라는 그 사막에 삶을 부려 놓은 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씨를 뿌려 소출을 볼만한 한 뼘 땅도 마땅치 않은 사막에 정착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아마도 세상을 등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힘 센 이들에게 식솔을 잃고 구차한 목숨을 버리지 못해 흘러든 곳이 사막이었을 것이다. 사막의 모래바람에 풍찬노숙하면서 절치부심 복수의 날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그 죽음의 땅에까지 힘센 이들이 찾아와 씨를 말려버리지는 않을 것이므로 은신처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사막도시에서 개발된 지하수 시설 콰나트. 아직도 콰나트는 이 지역 사람들의 주요한 생명수 역할을 하고 있다. © News1 이상문 기자

메마른 땅에 터를 닦고 보니 물이 필요했다. 신은 그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사막의 땅 밑으로 물을 흘려보냈다. 사막에 정착한 사람들은 땅 밑으로 흐르는 물을 개발해 수로를 만들고 마른 땅을 개간해 씨를 뿌렸다. 마지막 방도로 숨어든 땅에서도 살아갈 길이 트인 것이다. 더러는 그 물이 땅 위로 솟아오르기도 했다. 지하수가 솟아오르는 곳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오아시스’다.

그들이 사막에 정착하면서 지은 집들은 진흙집이었다. 모래바람에 날려가지 않고 작열하는 태양의 살인적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이 최선이었다. 진흙을 지푸라기에 이겨 벽돌을 만들고 차곡차곡 쌓아올렸다. 간혹 비가 와서 젖어도 쌓아올린 벽돌은 더욱 단단하게 굳었다.

여름철 45도를 넘는 숨막히는 더위를 식혀주는 바람탑. 탑에 뚫린 구멍으로 바람이 빨려들어가 탑 밑 지하수로 만든 웅덩이와 만나면서 차가운 바람을 일으키는 구조다. 에어컨이 발명되기 전 가장 과학적인 자연 에어컨 역할을 했으며 지금도 이란의 사막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 News1 이상문 기자

그리고 세월이 지난 후 루트사막의 뜨거운 기후를 이기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바람탑이다. 진흙으로 만든 집 지붕 위에 높게 탑을 세우고 사방에 구멍을 숭숭 뚫었다. 그 구멍 속으로 바람이 빨려들고 탑 아래 시원한 지하수로 채워놓은 물통에 닿게 된다. 여름철 45도를 넘나드는 살인적 더위로 데워진 실내는 바람탑이 만들어낸 청량한 바람이 식혀준다. 에어컨 이전에 고안해 낸 기막힌 발명품이다. 지금도 오지를 여행하다 보면 숙소에 ‘에어쿨러’라는 독특한 냉각기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란의 바람탑과 같은 논리다. 실내용 에어컨 같은 기계에 물을 담고 바람을 일으켜 시원하게 하는 장치다.

이란 땅의 한가운데 위치한 야즈드는 바로 이란의 조상들이 가장 먼저 정착해서 살아간 도시다. 그리고 구시가지의 사방을 둘러봐도 황토색 진흙으로 만든 집들뿐이다. 물론 새롭게 조성된 신시가지에는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섰지만 야즈드는 여전히 진흙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신시가지가 조성되기 전의 야즈드는 사방을 둘러봐도 황량한 사막지형이었을 것이다. 모래바람이 거칠게 불어오면 야즈드는 온통 황금색 모랫빛으로 물들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야즈드보다 더 오래된 도시가 있다. 바로 야즈드에서 서북쪽으로 1시간쯤 달리면 나타나는 메이보드라는 곳이다. 메이보드로 가는 길은 루트사막의 황량한 바위산이 즐비하다. 그 바위산 사이로 곧은길을 뚫어 지금은 왕래가 편해졌지만 과거 낙타 등 위에 바리바리 짐을 싣고 사막을 가로질러 다녔던 카라반들의 발걸음은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1000년 전에 조성된 진흙마을이 원형 그대로 보존된 마을 카르낙. 최근까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 News1 이상문 기자


◇ 4000년 된 진흙도시 인적은 온데간데없고…


메이보드로 향하는 길 중간에 최소한 1000년이 넘은 진흙도시 카르낙이 고스란히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1000년의 세월동안 무너지지 않고 그대로 보존된 마을은 그리 흔하지 않다. 그것도 석조건물이 아닌 진흙으로 만든 건물이라는 점에서 경이롭다. 현지인들은 이 마을이 1000년이 아니라 4000년 전에 세워진 마을이라고 허풍을 친다. 그러나 그것은 허풍이 아닐 수도 있다. 야즈드에서 사람이 정착해서 살아간 것이 7000년 전이니 그곳은 이미 7000년 전이나 그 언저리에 형성됐을 수도 있다.

카르낙은 건물의 형체는 온전하되 지금은 사람들이 살아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기거했을 것이 분명한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폐허가 된 집들 사이로 걸으면 상투적인 표현으로 마치 고대의 한 시점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퇴락한 진흙집 안으로 들어가 보면 부엌과 침실, 동물을 가둬 키웠을 마구간이 보인다. 좁은 골목길을 오르내리는 계단이 단정하고 앞뒷집에서 물건을 주고받고 담소를 나누던 퇴창이 발달했다.

B.C. 3세기에 축성된 메이보드의 나레인 성. 이 성은 이란에 남아 있는 진흙으로 만든 성 가운데 가장 오래된 성이다. © News1

카르낙이 사람들이 살지 않아 박제된 진흙도시라면 메이보드는 여전히 사람들이 거주하는 살아 있는 도시다. 메이보드로 진입하는 초입에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나레인 성은 진흙으로 쌓아올린 성 중에 이란에서 가장 오래된 성이다. B. C. 3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성은 그 후 왕조가 바뀔 때마다 요새나 행정 본부 역할을 했다. 약 1만2000평에 이르는 성은 5층으로 이뤄져 있고 높이 올라갈수록 신분이 높은 사람이 기거했다. 고고학자들은 이 성을 발굴하다가 야즈드보다 더 오래된 도시라는 증거를 찾아냈다. 최소한 7000년보다 더 오래된 도시라는 것이다.

나레인 성에서 내려와 메이보드 시내로 진입하다 보면 깜짝 놀랄 만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카르낙과 같은 진흙마을이 시내 한가운데 존재하며 이 마을에 아직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의 유수한 민속마을이 존재하지만 메이보드는 그 가운데 가장 독특한 모습을 지닌다. 카르낙의 골목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넓은 골목길에는 어린 아이들에서부터 허리가 굽은 노인에 이르기까지 고대의 삶터에서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

메이보드 시가지 안의 진흙마을. 오랜 세월동안 원형 그대로 보존돼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 © News1 이상문 기자

그리고 사막을 적신 지하수 ‘콰나트’가 아직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메이보드의 사람들은 마을 공터를 깊이 파고 시원하게 흐르는 콰나트를 개발했다. 마을의 아낙들은 계단을 타고 내려가 콰나트에서 빨래를 하고 관을 묻어 그 물을 끌어올려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메이보드에는 우리나라의 석빙고와 같은 얼음집인 약촐이 있다. 겨울철 약 25m에 이르는 깊은 땅을 파고 그곳에서 얼음을 얼렸다가 여름까지 사용했다고 한다. 겨울에 언 얼음은 두꺼운 진흙벽돌로 감싼 약촐 안에서 여름까지 녹지 않고 보관됐다. 약촐의 벽은 약 3m에 이른다. 이 두꺼운 벽은 뜨거운 사막의 열기를 철저하게 막아줬다. 사람들은 자연에 순응하면서 그 자연을 극복하는 기술을 터득하며 살아간다. 살인적 더위의 사막 더위를 이겨낸 이란인들의 지혜는 약촐에서 빛이 난다.

메이보드의 카라반들의 숙소. 현존하는 카라반사라이 중 가장 아름다운 곳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 News1 이상문 기자

◇ 험악한 자연환경 이겨내고 이룬 아름다운 문명


그리고 약촐과 바로 잇대어 아름다운 카라반사라이가 남아 있다. 카라반사라이는 실크로드를 오고가던 카라반들의 숙소다. 이 숙소는 오랜 여행에 지친 카라반들의 심신을 달래주는 역할과 교역의 장으로서도 사용됐다. 카라반들은 카라반사라이의 마당에 낙타를 매어두고 저녁밥을 청해 먹고 나서 각지에서 몰려든 동업자들과 정보를 나눈다. 메이보드의 카라반사라이는 이란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원형이 잘 보존된 곳이다.

사막 한가운데 자리 잡은 야즈드와 메이보드는 자연의 역경을 슬기롭게 이겨낸 페르시아안의 지혜가 깃들인 도시다. 혹독한 환경에 순응은 하되 꺾이지는 않았고, 거기에 한술 더 떠 문명을 일궈냈던 인간의 의지가 집약된 도시다. 가장 험한 지형을 일궈 실크로드를 오가던 상인들의 거점이 됐던 이 사막도시는 페르시아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현재에는 오래된 본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해 이란 관광의 핵심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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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경제제재에서 풀리면서 21세기 골드러시로 떠오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5월1~3일 이란을 국빈 방문한다. 이란과 SOC, 건설, 조선, 석유화학,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의 교역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고대 페르시아제국 때부터 신라와 실크로드를 통해 교류했던 이란의 문화와 역사, 종교, 이란인들의 삶을 현지 취재를 통해 파헤친다. 이 취재는 지난 2014년 11월에 20일간, 지난해 12월에 15일간 두 차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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