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로그

이상문의 페르시안 나이트

생명을 주는 강 ‘자얀데’

이상문 | 입력 2016-06-20 14:51:47
이스파한의 사파비 문명을 일으킨 젖줄 자얀데 강. 지금은 상류에 댐을 만들어 강물이 말라버렸다. © News1 이상문 기자.

문명이 꽃핀 도시에는 예외 없이 큰 강이 흐른다. 중세 페르시아의 가장 강대했던 사파비 왕조가 이스파한에 수도를 정한 것도 바로 자얀데 강이라는 풍부한 젖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자얀데는 페르시아어로 ‘생명을 주는’이라는 형용사다. 그러니까 자얀데 강은 ‘생명을 주는 강’이라는 뜻을 가졌다.

자얀데 강은 이란에서 가장 큰 강 중의 하나다. 이란 북부 자그로스 산맥에서 발원해 430㎞를 메마른 사막을 적시며 굽이치는 자얀데 강은 이스파한에 이르러 위대한 이슬람 문명을 탄생시킨 것이다. 또 이스파한의 땅은 쉽게 물이 스며들지 않는 바위 지형이기 때문에 자얀데의 물줄기가 더욱 풍부하게 흐를 수 있었다.

◇ 강물은 말랐지만 ‘생명의 젖줄’ 역할 여전


지금은 그 자얀데의 물길이 말라버렸다. 상류에 댐이 건설됐기 때문이다. 길지 않은 우기에 강물이 불어나면 시민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강물에 발을 담그지만 거북의 등처럼 갈라진 강바닥을 드러내는 날이 더 많아져 버렸다. 거대한 물길이 거침없이 지나간 강은 자국만 남아 하늘에서 보면 몸집 굵은 뱀 한 마리가 사막의 모래바닥을 훑고 지나간 흔적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스파한의 시민들은 끊임없이 자얀데 강변으로 모인다. 강변은 거대한 공원이다. 각종 운동경기를 즐길 수 있는 체육시설부터 박물관, 놀이공원이 밀집해 있다. 이란 사람들이 강을 사랑하는 심성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 까닭은 아마도 건조한 사막기후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강은 곧바로 ‘생명의 젖줄’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스파한의 아름다운 다리 시오세폴은 밤이 되면 오렌지빛 조명을 켠다. 이 다리는 이스파한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불린다. © News1 이상문 기자.

이스파한에는 모두 11개의 다리가 자얀데 강을 가로지르고 있다. 대개 무슬림과 기독교인들의 삶의 경계를 잇는 역할을 한다. 강을 사이에 두고 북부에는 무슬림들이, 남부에는 기독교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스파한의 다리는 단순하게 강을 가로지르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강을 사랑하는 이스파한의 시민들은 해 저물녘이면 다리로 모여든다. 다리는 이들에게 모임의 장소이기도 하고 휴식처이기도 하다. 삼삼오오 가족이나 친구들이 모여들기도 하고 연인들이 난간에 설치된 공간에 앉아 밀어를 속삭인다.

그리고 조형적인 아름다움도 무시할 수가 없다. 세상의 수많은 다리들이 있지만 이스파한의 다리는 중요한 관광자원으로서의 역할을 할 정도다. 울산대학교 디자인·건축융합대학 강영환 교수는 자신이 본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이스파한의 시오세폴과 중국 귀저우성 자오싱 동족 마을의 풍우교를 꼽았다.

강을 건너는 고유의 역할을 하지만 다리 위에 지붕을 얹고 군데군데 앉을 자리를 마련해 쉼터를 만들어 뒀다. 사람들은 그 다리를 건너오고 가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강 이편과 저편의 소식을 나눈다. 또 강을 건너다 말고 쉼터에 주저앉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음식을 먹고 차를 마신다.

◇ 오렌지 불빛으로 물드는 시오세폴 야경은 압권

강영환 교수가 격찬한 시오세폴은 세계 최초의 가로수길인 차하르바그가 끝나는 곳에 있다. 씨오세는 ‘33’을 뜻하고 폴은 이란어로 ‘다리’를 의미하므로 시오세폴은 ‘33개의 다리’라는 뜻이다. 33개의 아치로 형성된 다리여서 붙은 이름이다.

시오세폴을 건너는 시민들. 더러는 난간에 놓인 쉼터에서 한가로운 밤을 즐긴다. © News1 이상문 기자.

시오세폴에는 언제나 사람이 북적인다. 강물이 불어 있거나 말라붙었거나 아랑곳하지 않는다. 해질 무렵에 찾아가면 시오세폴의 아름다움을 가장 극적으로 느낄 수 있다. 오렌지색 불을 밝히기 때문이다. 물이 불어나면 다리의 아치가 빚어내는 낭만이 물 위로 떠다닌다. 또 건기에 강바닥이 드러나도 다리는 요염하다.

시오세폴은 이스파한에서 자얀데 강의 폭이 가장 넓은 곳에 건설됐다. 길이는 360m에 폭은 14m다. 33개의 아치 아래 사람들이 걸터앉을 수 있는 벽돌로 만든 쉼터를 설치했다. 이 다리 위에서 무슬림과 기독교인들은 자유롭게 왕래한다. 다리 위에서 그들에게 종교란 큰 의미가 없는 듯했다. 이란이 시아 이슬람의 종주국이라고 하지만 극단의 종교 편견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종교적으로 매우 엄격한 나라지만 시오세폴에서 느끼는 자유로움이 이란 전체의 분위기를 끌고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시오세폴의 밤은 평화롭다. 아치에서 새어나오는 오렌지색 불빛이 이스파한 도심을 고혹적으로 만든다. 사람들은 다리 아래 차이하네(찻집)에서 홍차에 간드라고 일컬어지는 각설탕을 담아 마신다. 그리고 사과, 딸기, 박하향이 나는 물담배를 피워댄다. 구도심의 랜드마크인 낙쉐자한은 늦은 밤이 되면 한가해져도 시오세폴은 여전이 붐빈다. 거기에는 남녀노소, 내외국인을 망라한다.

폴레카주의 아름다운 모습. 이 다리는 단순한 교량의 역할에 댐의 기능도 더한다. © News1 이상문 기자.

◇ 수량 조절 폴레카주, 페르시아 치수 능력 엿본다


이스파한의 또 하나의 유명한 다리는 폴레카주다. 시오세폴이 인문적 가치를 지닌 다리라면 폴레카주는 공학적 역할을 하는 다리다. 물론 다리 위에 시민들의 휴식처와 과거 왕들이 연희를 베풀었던 공간이 있지만 자얀데 강의 수량을 조절하는 댐의 기능을 감당하는 수문이 21개 마련돼 있다. 또 수문은 그 높이가 각각 달라 강의 수위에 따라 수압과 수량을 조절하도록 설계됐다. 페르시아 문명의 치수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둔 다리다.

외국인들이 시오세폴을 좋아하는 반면 이스파한의 시민들은 폴레카주를 더 좋아한다. 다리의 입구 양편에 사자상이 서 있다. 사자상은 페르시아 제국의 용맹함과 강대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폴레카주의 사자상은 조금 다른 용도로도 쓰인다. 사자상에 올라타면 곧 결혼을 할 수 있거나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속신이 전해져 내려온다. 그래서 폴레카주의 사자상은 등이 반질반질하다.

폴레카주에 나와 오후를 즐기는 이스파한의 노인들. 폴레카주는 외국인들보다 시민들이 더 좋아하는 다리다. © News1 이상문 기자.

그림 같은 다리가 강 위에 얹혀 있는 이스파한의 풍광은 평화롭다. 하지만 이스파한의 역사는 잔인하다. 고대의 이스파한은 군영도시였다. 페르시아의 용맹한 군인들을 길러내던 이스파한은 13세기에 몽골의 침입으로 도시 전체가 유린당했다. 몽골의 군대는 이스파한에 이르러 사람과 축생을 가리지 않고 살육했다. 또 14세기에는 티무르가 침입해 7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참수했다. 역사가들은 당시의 자얀데 강이 핏빛으로 물들었다고 묘사했다.

16세기 들어 사파비왕조가 건설된 후 번영을 누리게 된 이스파한이지만 자얀데 강은 영욕의 역사를 고스란히 지켜봤고 묵묵히 흘렀다. 이스파한의 시민들이 자얀데 강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한 시대의 영화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터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들을 통시적으로 품고 있는 것이어서 더욱 간절한 애정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사 광고영역
블로거 전체보기
이상문의 페르시안 나이트

이란이 경제제재에서 풀리면서 21세기 골드러시로 떠오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5월1~3일 이란을 국빈 방문한다. 이란과 SOC, 건설, 조선, 석유화학,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의 교역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고대 페르시아제국 때부터 신라와 실크로드를 통해 교류했던 이란의 문화와 역사, 종교, 이란인들의 삶을 현지 취재를 통해 파헤친다. 이 취재는 지난 2014년 11월에 20일간, 지난해 12월에 15일간 두 차례 이뤄졌다.

블로거 글 더보기

많이 본 기사

분석과 전망

지구 온난화로 인한 더위 때문에 인간수명 짧아진다
온도가 화씨로 1도 정도만 높아져도 열파로 인한 사망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