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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의 페르시안 나이트

‘세상의 절반’ 이스파한

이상문 | 입력 2016-06-07 12:49:51
이스파한의 핵심 이슬람 사원인 조메 모스크로 가는 길. 이란의 여성들이 검은색 차도르를 입고 예배를 드리러 가고 있다. © News1 이상문 기자.

이란인들의 시에 대한 사랑은 못 말린다. 이슬람 문학의 대표적인 시인들은 대부분 페르시아 출신이었다. 페르시아어의 운율은 매우 음악적이어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시를 읊는 것처럼 들린다. 실제로 그들은 대화 속에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시의 한 구절을 적절하게 인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이 지어 놓은 도시나 건축물에 시적인 표현을 붙여 놓은 것을 발견할 때면 은근히 부럽기도 하다.

▶세상의 절반을 줘도 바꾸지 않을 이스파한


이란의 문화수도라 불리는 이스파한은 ‘이란의 진주’ ‘세상의 절반’이라고 불린다. ‘이란의 진주’라는 표현은 이스파한이라는 도시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고 금방 짐작이 가능하게 하는 보편적 비유여서 그리 의아하지는 않지만 ‘세상의 절반’이라는 표현은 다소 낯설다.

그 유래는 이렇다. 이스파한이라는 도시 이름은 ‘네스파자한’이라는 말에서 비롯됐다. ‘네스파자한’이 곧 ‘세상의 절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이스파한은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의 절반을 가지고 있다는 뜻과 세상의 절반을 가져다 줘도 바꾸지 않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매우 시적인 표현이다.

이스파한은 2006년 이슬람 전체 국가의 문화수도로 지정됐다. 이란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이스파한을 목적지로 정해 여행한다. 그만큼 문화적 층위가 두껍고 화려하다. 시아 이슬람을 국교로 정한 이란이지만 이스파한에는 고대 페르시아의 국교였던 조로아스터교와 유대교, 기독교가 공존하는 특이한 도시다. 서아시아의 중요한 길목에서 유럽과 아시아의 문화가 오고가는 실크로드상의 중요한 교차로 역할을 했던 도시답게 이스파한은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화려한 문화와 예술이 꽃을 피웠다. ‘세상의 절반’ 다운 도시다.

이스파한의 버스 터미널은 도시 외곽에 있다. 그래서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도시의 아름다움을 실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택시를 타고 이스파한의 심장부로 진입하다 보면 짙은 가로수길과 곳곳의 고색창연한 모스크, 고요하게 흐르는 자얀데강의 풍광에 차분하게 젖어든다. 테헤란의 매연과 혼잡함을 벗어나 이스파한에 닿으면 숨통이 트인다. 도시는 다소 퇴락한 느낌이 들지만 자연스럽게 역사문화도시라는 정체성을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를 품고 있다.
‘40개의 기둥’이라는 뜻을 가진 압바스왕조의 궁전인 체헬소툰. 소박한 외관이 아름답다. © News1 이상문 기자.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체헬소툰 궁전


페르시아 사람들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문학적 성향은 이른 아침 찾아간 소박한 궁전에서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40개의 기둥’이라는 뜻을 가진 체헬소툰이라는 궁전이다. 페르시아의 궁전은 호들갑스럽지 않다. 모스크에 비해 매우 검박하고 규모도 작다. 유럽이나 중국의 어마어마한 궁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사원의 외벽을 장식한 그 흔한 비취색 타일도 덧대지 않고 단순하지만 기품 있게 지었다. 신을 모신 전당은 웅대하게 짓지만 신의 제자인 왕이 기거하는 궁은 겸손하다.

체헬소툰은 사파비왕조(1501∼1722)의 압바스 1세와 2세에 걸쳐 지어졌다. 완성된 때는 1647년이다. 키 큰 나무 기둥이 궁전을 떠받치고 있고 궁전 앞에는 전형적인 페르시아 정원과 연못이, 그리고 궁전 전체는 울창한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다. 40개의 기둥이라는 말의 궁전 이름이 특이했다. 궁전을 떠받친 기둥은 이란의 고유한 플라타너스 품종인 ‘체나르’를 다듬어 만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헤아려 봐도 기둥은 20개뿐이다. 이것이 바로 페르시아인들의 시적 위트다. 궁전을 받친 20개의 기둥이 궁 앞의 정방형 연못에 비쳐 반영된 기둥 20개를 합쳐서 40개가 되는 것이다. 이름이 정겹고 아름답고 시적인 체헬소툰은 ‘이란의 진주’ 이스파한의 진정한 ‘진주’다.

체헬소툰 내부의 세밀화는 사파비왕조의 왕실 모습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 News1 이상문 기자
체헬소툰 내부의 세밀화는 사파비왕조의 왕실 모습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 News1 이상문 기자

소박하고 겸손한 궁전의 외관과는 달리 내부로 들어가면 사파비왕조 시대의 왕실 풍경을 담은 세밀화가 벽을 가득 채우고 있어 매우 클래식한 분위기다. 그리 넓지 않은 궁의 내부지만 벽을 장식한 세밀화들을 보고 있으면 당시 왕실의 풍요롭고 화려했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어 중세의 역사적 현장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왕족들은 페르시아 카펫을 깔고 앉아 중국에서 건너왔음직한 도자기와 금으로 만든 항아리에 술을 담아 마신다. 비단 옷을 둘렀고 허리와 머리의 장식은 금실을 둘렀다. 그들이 정원에 앉아 있는 배경에는 기괴한 굴곡의 소나무가 있고 멀리 보이는 산은 동양화에서나 볼 수 있는 카르스트 지형이다. 모색은 페르시아인이 분명하지만 중국과의 교류가 빈번했음을 짐작하게 만드는 집기들이 눈에 띈다.

▶세밀화 통해 보는 중세 페르시아의 왕실 모습 생생


사파비왕조가 중국과의 교류는 물론 유럽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점을 알리는 벽화는 체헬소툰에 걸린 벽화 중에 가장 압도적이다. 왕이 주관하는 행사에 유럽에서 온 사신이 참석하는 장면을 담은 세밀화는 당대 왕실 문화를 짐작하게 해주는 소중한 사료다. 왕과 유럽의 사신은 카펫 위 상석에 앉았고 양쪽으로 페르시아 신료들과 유럽 사신들이 나란히 앉았다.

체헬소툰 내부의 세밀화 중 유럽과의 교류가 빈번했음을 알리는 그림. 여기에 등장하는 악기와 복식은 당대 페르시아 문명을 짐작하게 해 준다. © News1 이상문기자.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음식 대신 악사와 무희들의 연희가 베풀어진다. 자세히 보면 재미난 악기들이 보인다. 왼쪽의 악사 중 앞의 악사가 연주하는 것은 세타르다. 이 악기는 인도로 전해져 힌두음악의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뒤에 앉은 악사가 연주하는 악기는 카만체다. 카만체는 유럽으로 건너가 바이올린의 모태가 된다. 그 뒤로 탄현악기를 연주하는 악사가 둘 더 있고 오른쪽으로 건너가면 다프라는 타악기를 두드리는 악사가 있다. 다프는 발현악기, 찰현악기와는 달리 무희들의 몸동작을 지휘하는 역할을 한다. 타프는 페르시아와 아랍에 걸쳐 폭넓게 분포된 타악기다.

무대를 왕실에서 사막으로 옮기면 더 재미있어진다. 사막의 깊은 밤, 길고 고된 여정에 지쳐 모닥불을 피운 카라반들이 낙타들에 둘러싸여 연주로 피로를 풀 때면, 모닥불을 겨냥하고 달려들던 사막늑대와 표범들이 화들짝 놀라 달아나는 모습이 상상된다.


체헬소툰 궁전의 천장. 세월이 흘러 빛은 바래고 얼룩은 졌지만 사파비왕조의 화려함을 잘 드러내고 있다. © News1 이상문기자.
 

체헬소툰의 천장은 깜짝 놀랄 정도로 화려하다. 금색으로 칠해진 페르시안 문양이 어지럼증을 느끼게 만들 정도로 현란하다. 오랜 세월이 흘러 칠이 벗겨지기 시작했고 군데군데 희미해진 곳이 있지만 아치형 창틀로 스며드는 햇살에 반사될 때 천장은 강대했던 사파비왕조의 왕권을 짐작하게 할 정도다. 체헬소툰은 지금 박물관 역할을 하고 있다.

▶또 하나의 천국 하쉬크 베헤쉬트


체헬소툰을 나와 조금 더 걸으면 또 하나의 궁전이 있다. 하쉬트 베헤쉬트다. 이 궁전은 1966년 솔레이만 왕 때 만들어졌다. 이 궁전의 이름을 짓는데도 페르시안인들의 시적 상상력이 발동됐다. 하쉬트 베헤쉬트라는 단어는 페르시아어로 ‘8개의 천국’이라는 의미다. 쿠란에서 천국은 7개의 층으로 돼 있다고 썼다. 페르시아 사람들은 이 궁전이 쿠란에 나오는 7개의 천국에 비견될 정도로 아름답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쉬트 베헤쉬트 궁전과 잇댄 압바스 호텔의 정원. 이 곳은 과거 카라반들의 숙소로 사용됐던 카라반사라이가 있던 곳이다. © News1 이상문 기자.

하쉬트 베헤쉬트의 정원은 이스파한 시민들의 휴식처이기도 하다. 저녁 무렵 마땅한 엔터테인먼트가 없는 이란 사람들은 쿠란에 등장하는 천국과도 같은 정원으로 음식을 가져와 카펫을 깐다. 그리고 가족들이 둥그렇게 모여앉아 시간을 보낸다.

이 궁전 옆에는 과거 실크로드를 오가던 카라반들이 숙소로 사용했던 ‘카라반사라이’가 있다. 실크로드상에 있는 도시에는 대부분 카라반사라이가 존재한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곳도 있지만 몇 군데의 도시에는 생생하게 보존돼 관광객들에게 공개되거나 여행자 숙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하쉬트 메헤쉬트 옆의 카라반사라이는 이란 최고의 호텔이라고 일컬어지는 압바스호텔로 변해 있다. 압바스호텔에 묵는 사람들은 수백년 전 낙타를 몰고 수만리를 걸어서 온 카라반들이 감발을 벗어 털고 노곤한 몸을 뉘었던 곳에서 잠을 청하는 것이다. 꿈자리에서 그들의 거친 코골이를 들을 수 있다면 행운이다.

압바스 호텔의 정원은 하쉬트 베헤쉬트의 정원과 이어져 있다. 과거 이 정원의 이름은 ‘바게 볼볼’이라고 불렀다. 볼볼은 페르시아어로 ‘나이팅게일’을 뜻한다. 나이팅게일이 지저귀는 아름다운 정원에는 지금 오렌지 나무가 빼곡하게 심어져 있다. 풍성하게 달린 노란 오렌지 나무 아래 고급스러운 벤치에 앉아 있으면 페르시아 문화의 한가운데 와 앉아 있는 만족스러움으로 들뜬 마음이 된다.
이스파한의 중심도로인 차하르 바그. 이 길은 세계 최초의 가로수길이다. © News1 이상문 기자

▶세계 최초의 가로수길 걸으면 이스파한이 보인다


하쉬트 베헤쉬트를 나오면 길고 곧은 도로가 이어진다. 그 도로는 이스파한의 중심을 가로지르며 길가에는 무성한 잎을 드리운 가로수가 도열해 있다. 이 길이 바로 세계 최초의 가로수 길인 차하르 바그다. 사파비왕조가 이스파한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조성한 이 길은 당시 우마차가 다니는 길을 터놓는 데만 집중했던 모든 국가들과는 달리 과실수와 정원수들을 심어 도시를 한결 풍성하게 만들었다. 당대의 유럽 도심 도로들이 오물에 뒤덮이고 삭막했던 것에 비한다면 엄청난 발상이었다.

처음 조성할 때보다 훨씬 초라해지고 삭막해졌다고 하지만 현재의 모습도 세계 어느 도로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곧고 아름답다. 높은 가로수 아래 벤치를 설치해 시민들이 길을 걷다가 언제라도 앉아서 쉬게 만들었다. 그리고 늘어나는 교통량으로 대기오염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지만 차하르바그의 가로수가 아니었다면 이스파한도 테헤란의 숨 막히는 도심 풍경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페르시아인들의 선견지명을 느낄 수 있다.

사파비 왕조는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하던 사산왕조가 이슬람 세력에 무너진 후 새롭게 재건된 왕조다. 사산왕조 이후 명멸했던 이슬람 왕조들은 페르시아 전역을 통일한 왕조가 없었다가 사파비왕조에 들어 다시 페르시아는 하나의 국가가 됐다. 중세 이란의 가장 강대한 왕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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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경제제재에서 풀리면서 21세기 골드러시로 떠오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5월1~3일 이란을 국빈 방문한다. 이란과 SOC, 건설, 조선, 석유화학,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의 교역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고대 페르시아제국 때부터 신라와 실크로드를 통해 교류했던 이란의 문화와 역사, 종교, 이란인들의 삶을 현지 취재를 통해 파헤친다. 이 취재는 지난 2014년 11월에 20일간, 지난해 12월에 15일간 두 차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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