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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의 페르시안 나이트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이상문 | 입력 2016-05-31 20:59:14
 
이란의 민족 시인 하페즈의 영묘. 시민들이 하페즈의 석곽묘 앞에서 참배하고 있다. © News1 이상문 기자.

“그대 검게 될 운명이라면/성수라 할지라도 희게 할 수 없으리.”

이란의 영화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에 나오는 대사다. 이 영화는 이란의 산골 마을에 최고령 할머니의 죽음과 장례 의식을 촬영하기 위해 온 방송국 PD가 마을 사람들의 삶과 가까워지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의미를 깨달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위의 대사는 주인공이 마을의 소년과 골목길을 걷다가 소년의 입에서 흘러나온 시의 한 구절이다. 소년은 그 시를 자신의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즐겨 외던 시라고 소개했다.

 
영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의 한 장면(영화에서 캡쳐).  © News1

그리고 주인공은 우유를 구하기 위해 간 어두운 지하 창고에서 만난 한 소녀에게 또 다른 시를 읊어준다. “사랑하는 이여/내 집에 오려거든/부디 등불 하나 가져다 주오/그리고 창문 하나를/행복 가득한 골목의 사람들을/내가 엿볼 수 있게” 여성이 자유롭지 못한 이슬람 문화권에서 불꽃처럼 살다간 이란의 여류시인 포루그 파로흐자드(1935~1967)의 ‘선물’이라는 시의 한 부분이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이 여류시인의 시를 읽고 영감을 얻어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영화의 제목을 포루그의 시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를 그대로 차용했다.

▶시를 사랑하는 나라 이란, 시 한두수 외는 건 일상

한 편의 시가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는 나라가 이란이다. TV 뉴스 프로그램의 앵커가 시를 읽고 뉴스를 시작하거나 클로징 멘트로 시를 암송하는 나라가 이란이다.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시 한두 수를 외는 것은 기본이고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시를 통해 에둘러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이란 국민들이다.

이란인들이 ‘민족시인’으로 추앙하는 4대 시성은 모두 1000년 전의 시인이다. 페레도우시, 오마르 하이얌, 사아디, 하페즈다. 앞의 두 사람은 이란 북동부의 종교도시 마샤드 출신이고 뒤의 두 사람은 남부도시 시라즈 출신이다.

시라즈에는 사아디와 하페즈의 영묘가 있어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들의 영묘는 마치 잘 지은 공원이나 사원처럼 단장을 했고 시민들은 영묘를 찾아 시인의 석곽을 어루만지며 그의 시를 암송한다. 마치 코란의 한 구절을 외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이 경건하고 애절하다.

 
어지간한 모스코보다 화려하고 아름답게 치장된 하페즈의 영묘. © News1 이상문 기자.

해질 무렵 찾아간 하페즈의 영묘에는 퇴근길의 시민들이 줄을 이었다. 하페즈의 영묘는 시라즈를 가로지르는 로크나바다 강변에 있으며 약 2만㎡의 넓은 공원을 형성하고 있다. 가족 단위로, 혹은 연인끼리, 또는 한 무리의 모임이 어둑해지는 영묘 공원에 가득 모였다. 한 시민에게 물었더니 “사시사철 가리지 않고 시민들이 민족시인의 영묘를 찾아 그의 시를 외고 시 정신을 기리면서 매일 성황을 이룬다”고 말했다.

▶술과 사랑을 노래한 하페즈, 서민의 삶의 연민 역설로 표현


하페즈의 유해를 모셔둔 석곽에는 그의 시가 화려한 페르시아어로 새겨져 있었고 참배객들은 그 석곽에 둘러앉아 들고 온 시집을 읽거나 암송했다. 한 시낭송가가 유려한 페르시아어의 성조로 하페즈의 시를 낭송하자 시민들은 경청하다가 박수로 환호했다. 낭송가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하페즈의 시는 의미는 알 수 없지만 간절하고 호소력이 짙었다. 또 아름다운 페르시아 민요 한 자락을 듣는 느낌도 들었다. 종교 의례인 것 같기도 하고 즉흥적으로 일어나는 퍼포먼스 같기도 했다.

석곽을 감싼 영묘의 정자는 화려하다못해 눈이 부실 정도다. 이슬람 탁발승의 모자 형상을 본떠 지었다는 이 영묘는 이슬람 사원의 벽면을 장식한 페르시아 문양보다 화사하게 치장됐다. 종교적 엄숙함에서 벗어나 훨씬 더 예술적이고 정서적이다.

하페즈는 14세기에 활동한 시인이다. 그는 페르시아의 서정시 '가잘'을 썼다. 1320~1325년에 태어나 1389~1390년에 세상을 떠났다는데 생몰 연도가 정확하지 않다. 하페즈의 아버지는 석탄 장사를 하다가 실패해 아내와 아들에게 엄청난 빚을 남기고 떠났다. 그 가난하고 힘든 삶에서도 하페즈는 천재적 재능을 보였다. 그의 이름인 하페즈는 ‘코란을 모두 외운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가 외는 코란을 귀동냥으로만 듣고 모두 암기했기 때문에 그에게 붙은 별칭이다.

하페즈의 시는 술과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신과 연인에게 바치는 연시 형식을 띠고 있지만 서민들의 삶에 대한 연민과 위선에 대한 경멸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그가 살아온 인생의 결과물인 것이다. 그의 시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영원한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 최고의 가치가 사랑과 평화니 당연한 귀결이다. 페르시아어권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성인’의 반열에 올라 있다.

 
한 시낭송가가 하페즈의 시를 낭송하고 있고, 시민들은 엄숙한 분위기로 듣고 있다. © News1 이상문 기자.

하페즈의 시집은 이란 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고 선물용으로 많이 쓰인다. 그리고 시점(詩占)을 보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눈을 감고 시집을 펼치면 그 페이지에 현대 페르시아어로 운세를 적어뒀다. 이란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점이다. 이 점은 우리의 동지에 해당하는 샤베얄더 때 주로 본다.

하페즈의 영묘에서 만난 대학생 아흐메드가 하페즈의 시 한 구절을 영어로 해석해 읊어줬다. “불 밝힌 궁궐처럼 연인의 사랑이 가득한 집/신이시여/갑작스러운 재난으로 그 집을 폐허로 만들지 말아주소서”

▶방랑시인 사아디, 지성으로 교훈을 노래하다

하페즈보다 1세기가 앞선 또 한 사람의 시라즈 출신의 시인은 사아디(1184~1291)다. 그도 하페즈처럼 어린 시절 가난하게 자랐다. 그러나 하페즈는 스스로 도의 경지에 오른 시인이었다면 사아디는 바그다드에서 아랍문학, 역사, 법학을 공부한 지성이었다. 사아디는 30여년에 걸쳐 시리아, 이집트, 인도 등의 여러 국가들 돌며 방랑생활을 했다. 그래서 그를 ‘방랑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이디는 주로 교훈시를 썼다. UN 본부의 한 건물에는 그의 시 한 수를 걸어뒀다. “한 뿌리에서 인류는 나왔지/그리고 창조로 바탕을 이뤘지/가지 하나만 충격을 받아도 충분하지” 인류 평화를 연원하는 UN의 이념에 부합하는 시다.

 
하페즈와 함께 시라즈에서 태어난 또 한사람의 민족시인 사아디의 영묘.  석곽과 벽면에 사아디의 시가 새겨져 있다. © News1 이상문 기자.

사아디의 영묘는 시라즈 보스턴 거리의 끝에 있다. 넓은 정원 형태로 된 이 영묘는 하페즈의 영묘와는 조금 다른 양식을 띠고 있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화려했지만 여러 차례 보수공사를 거듭하면서 매우 단순하게 바뀌었다고 한다. 하페즈의 영묘처럼 개방된 공간이 아니라 한 건축 안에 석곽이 갇혀 있다. 그러나 하페즈의 영묘와 같이 대리석 석곽과 건축물의 벽에는 사아디의 시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하페즈와 사아디의 영묘는 그들이 숭배하는 시인의 영묘이면서도 시라지 시민들의 쉼터 노릇도 하고 있다. 영묘에는 밤늦은 시간에까지 연인들이 곳곳에서 데이트를 즐긴다. 엄격한 이슬람 문화 속에서도 젊은이들의 사랑은 자유로운 곳이 이란이다.

시라즈는 이처럼 이란의 문학과 예술의 본고장이다. 페르시아 정신의 핵심인 것이다. 또 장미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우리는 장미의 원산지가 영국인 것처럼 오해하고 있다. 약 2000여년 전 시라즈에서 장미가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고 시라즈에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래서 시라즈를 ‘시와 장미의 도시’라고 일컫는다.

▶뜨거운 삶을 살다간 여류시인 포루그 파로흐자드는 시대의 ‘희생양’

세월이 흘러 20세기 이란에서는 한 여류시인이 등장했다. 20세기 이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 중 한 사람인 포루그 파로흐자드였다. 테헤란의 군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16세에 먼 친척과 결혼했지만 아들 하나를 낳고 곧 이혼했다. 그 후 시를 쓰기 시작했고 강렬한 페미니즘을 주제로 했다. 보수적인 이란 사회는 일시에 들끓었다.

 
20세기 이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이었던 포루그 파로흐자드. © News1

포루그는 유럽으로 건너가 9개월을 머물면서 영화감독 에브라힘 골레스턴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의 영향을 받은 포루그는 타브리즈의 나환자 수용소를 방문해 다큐멘터리 영화 ‘그 집은 검다’라는 기념비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이 영화가 결국 이란의 뉴시네마를 이끄는 교과서가 됐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란의 유명 영화감독들은 모두 포루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1967년 포루그는 자신의 지프차를 타고 가던 중 맞은편에서 오는 스쿨버스를 피하려다 벽에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병원으로 옮겨지는 도중 포루그는 32세의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일부에서는 이란의 엄격한 이슬람 문화가 그녀의 혁명적 페미니즘을 수용하지 못하고 암살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녀의 무덤은 시대적인 배경 때문인지 하페즈나 사아디의 영묘처럼 화려하게 꾸며져 있지 않다. 테헤란 외곽 공동묘지에 자신의 시 ‘선물’을 새긴 비석 하나로만 치장된 채 쓸쓸하게 묻혀 있다.

이란의 문학적 전통을 이어오던 포루그 파로흐자드의 시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는 이란을 대표하는 감독 압바스 카아로스타미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고 1999년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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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의 페르시안 나이트

이란이 경제제재에서 풀리면서 21세기 골드러시로 떠오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5월1~3일 이란을 국빈 방문한다. 이란과 SOC, 건설, 조선, 석유화학,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의 교역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고대 페르시아제국 때부터 신라와 실크로드를 통해 교류했던 이란의 문화와 역사, 종교, 이란인들의 삶을 현지 취재를 통해 파헤친다. 이 취재는 지난 2014년 11월에 20일간, 지난해 12월에 15일간 두 차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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