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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의 페르시안 나이트

죽은 자들의 증언

이상문 | 입력 2016-05-23 14:03:53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왕들의 암굴묘인 낙쉐로스탐. 거대한 규모에 압도당하지만 암굴묘와 함께 새겨진 사산왕조 왕들의 전승도는 당대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 News1 이상문 기자.

고대 페르시아 제국이 얼마나 강대한 국력을 지녔으며 그 왕들은 어떻게 주변 국가들을 제압하고 거대 제국을 다스렸는지 실감하려면 그들의 모습을 담은 부조를 보는 것이 가장 생경하다. 이란에는 곳곳에 바위를 쪼아 위대한 조상의 모습을 남겼으며 그것들은 주로 이란 남부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다. 페르시아 제국의 영광을 고스란히 느끼고 싶다면 시라즈를 중심으로 흩어진 유적과 부조를 훑어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것들은 고대 페르시아의 문화적 성과를 함께 보여주기도 한다.

이란의 페르시아 유적은 로마의 유적과 달리 꾸며지지 않은 채 민낯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아직은 관광산업에 대한 준비가 덜 돼서 그럴 수 있다. 그리고 체계적인 발굴과 복원이 이뤄지지 않은 탓도 있다. 그래서 페르시아의 유적은 시간의 물결에 씻기고 깎여서 바스라지기도 하고 모래언덕 속에 묻혀 있기도 하다.

▶페르시아 왕이 묻힌 암굴묘, 강건한 위용 압권
페레스폴리스조차도 아직 발굴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군데군데 복원이 진행 중이다. 인류 역사상 매우 중요한 유적임에도 느리게 느리게 복원이 이뤄지고 있다. 곳곳에 비계가 설치돼 불꽃 같았던 고대사의 한 장면을 고스란히 느끼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낙쉐로스탐의 암굴묘. 가운데가 왕의 무덤이고 위는 코로아스터 종교의식을 표현한 부조, 아래는 사산왕조 시대의 전승도가 새겨져 있다. © News1 이상문 기자.

페레스폴리스가 폐허와 잔해로 역사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면 그곳에서 북서쪽으로 약 6㎞ 정도에 위치한 낙쉐로스탐은 강건하게 원형이 보존되고 있어 대륙을 호령하던 그들의 위세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낙쉐로스탐은 호세인이라는 거대한 바위산을 깎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를 다스리던 4명의 왕을 묻은 암굴묘다. 다리우스 1세왕과 2세왕, 크세르크세스 1세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왕이 묻혀 있다. 구약성서에서도 주요배역으로 등장하는 이들의 주검이 묻힌 돌산의 높이는 60~70m 정도다. 돌산 위에는 조로아스터교의 장례방식인 조장을 행하던 터가 남아 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묘역에 질리다가도 천하를 호령하던 이들의 생전 모습과는 달리 무덤 속에 들어앉은 그들의 유해는 왠지 모르게 ‘갇혔다’는 느낌이 들었다. 깎아지른 절벽에 굴혈을 파고 작은 대문만한 출입구를 내놔 어느 누구도 쉽게 다가갈 수 없도록 유폐된 모습이다. 그 안에는 조장으로 독수리에 의해 육탈된 왕들의 유골과 살아생전 호사를 누리며 가졌던 각종 금은보화와 장신구들이 함께 묻혀 있다. 누군가가 무단으로 묘를 헐고 해코지할 것에 대비해 높은 절벽에 무덤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워낙 육중하고 두껍게 보이는 바위산이 대륙을 호쾌하게 달리던 영웅호걸의 기상을 가둬둔 듯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허술한 초소와 더 허술한 울타리를 가로질러 다가간 왕들의 무덤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드물었다. 1시간여 머물렀지만 페르시아 왕의 무덤을 참배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은 젊은 이란인 3명이 고작이었다.

낙쉐로스탐에 묻힌 왕의 무덤은 십자가 형태를 띠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페르시아의 십자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역사학자들은 이 십자가가 기독교의 십자가와 연관이 없는지에 대해 연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추측은 견강부회일 수도 있다. 가로로 길게 왕의 묘를 만들고 그 위아래로 조로아스터교를 상징하는 부조를 새겨 자연스럽게 조형적 조화를 꾀한 것에 불과할 것이라는 생각이 합리적인 상상일 것이다.

 
사산왕조 페르시아를 건국한 아르데쉬르 1세가 조로아스터교의 외고신인 아후라 마즈다로 부터 왕권을 상징하는 링을 건네받는 대관식 모습. © News1 이상문 기자.

▶두 개의 왕조가 공존하는 ‘죽은 자들의 도시’ 낙쉐로스탐

페르시아어로 낙쉐는 ‘그림’이나 ‘조각’을 뜻하는 말이고 로스탐은 신화에 등장하는 왕의 이름이다. 그러므로 ‘왕의 그림’, 혹은 ‘왕의 조각’쯤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탁테 잠쉬드’를 ‘페르시아인의 도시’라는 뜻의 페레스폴리스라고 불렀듯이 낙쉐로스탐을 ‘죽은 자들의 도시’라는 뜻의 ‘네크로폴리스’라고 불렀다.

이 거대한 무덤은 ‘도시’라고 말해도 크게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왕조의 왕들이 묻힌 무덤만 덩그렇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사산왕조 시대의 왕들이 다양한 모습의 부조로 표현돼 있기 때문이다. 그 부조들은 매우 정교하게 조각돼 완벽에 가깝게 보존돼 있다.

사산왕조(226~651년) 페르시아는 알렉산더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세운 파르티아제국을 물리치고 재건한 새로운 페르시아 제국이다. 낙쉐로스탐에서는 사산왕조의 첫 왕인 아르데쉬르 1세가 조로아스터교의 최고신인 아후라 마즈다로부터 왕위 계승을 인증 받는 모습과 경주 원성왕릉의 무인상과 흡사한 장군의 모습, 페르시아 왕의 기마 전투장면 등의 부조를 만날 수 있다. 그러므로 ‘왜 왕들의 무덤에 왕의 그림, 왕의 조각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였을까’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풀린다.

 
로마 황제 발레리안이 사산왕조 샤푸르 1세에게 전쟁에서 패해 항복하는 모습을 새진 부조. 이 부조는 페르시아인에게는 영광을 로마인에게는 굴욕을 가져다 준다. © News1 이상문 기자.

▶로마황제 ‘굴욕적 항복’ 담은 부조는 페르시아의 자부심

낙쉐로스탐의 부조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산왕조의 샤푸르 1세가 로마 제국의 33대 황제였던 발레리안을 전쟁 중에 포로로 잡은 모습이다. 발레리안은 말에 올라탄 샤푸르 1세 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을 선언하고 있다. 페르시아의 왕의 기세는 당당하고 발레리안은 한없이 초라하다. 그때 마침 바람이 불었는지 발레리안의 옷자락은 불안하게 펄럭이고 있다. 로마 황제가 전투 중에 죽은 예는 더러 있었어도 포로로 잡힌 예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로마로서는 치욕적인 사건이었고 페르시아는 이 사건을 크게 강조했다.

발레리안은 7만명의 군단을 끌고 유프라테스강을 건넜다. 그리고 에데사 성벽에 이르러 샤푸르 1세가 이끄는 페르시아 군대와 맞섰다. 발레리안은 이 싸움에서 대패했고 결국 샤푸르 1세에게 무릎을 꿇었다. 18세기 영국의 역사가인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에 발레리안이 샤푸르 1세에게 굴복할 당시의 모습을 “황제를 상징하는 자주색 옷을 입은 채 사슬에 묶인 발레리안은 몰락한 귀족의 모습으로 비쳤고 페르시아 왕은 말에 올라 탈 때마다 로마 황제의 목을 발판으로 삼았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역사에는 샤푸르 1세를 그렇게 매정한 군주로 표현하지 않았다. 샤푸르 1세는 생포한 발레리안을 자신이 만든 신도시 비샤푸르에 새로운 궁을 짓고 거기에서 여생을 보내도록 했다고 전한다.

낙쉐로스탐에 그려진 사산왕조 왕들의 용맹스러운 모습은 더 있다. 낙쉐로스탐에서 빠져 나와 시라즈로 향하는 도로변에 문득 낙쉐라잡이라는 암각유적이나타난다. 불과 2㎞ 남짓 떨어진 이곳에는 왕들의 대관식 장면, 조로아스터 성직자들의 활동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샤푸르 1세가 로마황제를 물리치는 용맹스러운 기마전투도와 로마황제의 굴욕적인 장면을 더 자세히 보려면 약간의 수고를 더해야 한다. 시라즈에서 버스로 약 2시간30분 정도 호르무즈 해협 쪽으로 향하면 카제룬이라는 도시가 나온다. 이 지역이 바로 샤푸르 1세가 신도시로 건설한 비샤푸르가 있는 곳이다. 비샤푸르로 가려면 카제룬에서 다시 택시를 타야 한다. 약 20㎞ 정도 북쪽 오지로 달리면 2000년 전쯤 건설된 신도시가 나온다.

▶허술한 유산 보존 아쉬움 남겨
샤푸르 1세의 전공을 생생하게 새긴 부조를 보려면 비샤푸르에서도 더 깊은 골짜기로 달려야 한다. 거기가 바로 탕게초간이다. 계곡을 끼고 있는 절벽에 새겨진 샤푸르 1세의 전승도는 페레스폴리스나 낙쉐로스탐에 비해 다소 소홀히 다뤄진 듯하지만 암각 유적으로는 인류의 문화유산급에 속한다. 그리고 거기서 만날 수 있는 한 장면은 페르시아인들에게는 무한한 자부심을, 로마인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기는 역사적 사실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발레리안의 모습이 더 치욕적으로 묘사된 탕게초간의 부조. © News1 이상문 기자.

탕게초간 계곡에는 샤푸르 1세에게 생포되는 로마 황제 발레리안의 모습이 더욱 비참하게 그려져 있다. 샤푸르 1세의 말발굽 아래 발레리안이 짓밟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치열하게 벌어지는 로마군과의 전투 장면이 역동적으로 새겨져 있다. 바위벽에 새겨진 페르시아의 영광은 장중하다. 그러나 그것을 보존하려는 노력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어설픈 울타리가 고작이며 입구에서 손가락 크기만한 입장권을 팔고 수거하는 관리인 두 사람이 고작이었다. 더러는 계곡을 끼고 뻗은 도로변에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버려진 부조들도 있었다. 그것은 호메이니의 혁명 이후 이슬람 왕조 이전의 페르시아 문명에 대해 떠받들고 기리는 것을 금기시한 영향이 클 것이다.

오랜 암흑기를 거쳐 이란이 다시 세계사의 중심으로 떠오를 수 있을까? 이란인들은 그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들의 조상이 오리엔탈 대제국을 건설했던 적이 있었고 조상의 용맹스러움과 지혜가 자신들의 DNA에 흐르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 빛바랜 역사를 죽은 자들이 부조로 남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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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경제제재에서 풀리면서 21세기 골드러시로 떠오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5월1~3일 이란을 국빈 방문한다. 이란과 SOC, 건설, 조선, 석유화학,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의 교역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고대 페르시아제국 때부터 신라와 실크로드를 통해 교류했던 이란의 문화와 역사, 종교, 이란인들의 삶을 현지 취재를 통해 파헤친다. 이 취재는 지난 2014년 11월에 20일간, 지난해 12월에 15일간 두 차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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