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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의 페르시안 나이트

제국의 영광 페르세폴리스

이상문 | 입력 2016-05-15 16:08:20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의 영광을 가장 잘 드러내는 페르세폴리스의 위용. © News1 이상문 기자

이란인들에게 가장 위대한 왕으로 칭송받는 ‘왕중의 왕’은 다리우스 대왕이다. 인더스강 유역과 나일강 유역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넓혀 오리엔탈 대제국을 건설하고 아케메네스 페르시아를 당대 세계 최강으로 만들었다. 다리우스 대왕의 흔적이 고스란히 잘 남아 있는 곳은 고대 세계사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페레스폴리스다. 이란 남부 도시 시라즈 외곽으로 약 40㎞ 떨어진 곳이다.

◇ ‘왕중의 왕’ 다리우스의 왕권 통치 실현
다리우스 대왕은 반란을 일으키는 제후들을 차례로 제압하고 그 지역에 군사를 통수하는 사령관을 파견해 다스리게 했다. 그리고 그 지방의 언어와 종교, 법에 의해 살아갈 수 있는 자유도 함께 허용했다. 자유를 허용하는 대신 파견된 사령관들이 매년 정해진 세금을 어김없이 바치도록 하는 장치를 걸었다. 거기에 사령관의 전횡을 감시하는 비밀 행정관과 세금 담당관을 함께 파견하는 이중 장치도 걸었다. 형식적으로는 지방분권이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모든 권력은 왕에게로 집중됐다.

 
 
페레스폴리스의 건물 기둥에 부조로 새겨져 있는 다리우스 대왕의 모습. © News1 이상문 기자

다리우스 대왕은 유럽과의 교역도 본격화했다. 거대한 제국을 다스리기 위해서 필요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최고의 산업이었던 농업을 장려해 관개시설을 개선하고 지하수로를 건설했다. 제국의 각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과 특산물은 모든 지역이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도록 했고 유럽에까지 영역이 확장됐다.

교역을 통한 영향력 확장은 문화의 영역도 포괄한다. 그래서 당시 유럽과의 교역과 함께 흘러들어간 페르시아어들이 영어로 굳어졌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영어에서도 500개 이상의 단어가 페르시아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면 당시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천국(paridaeza-paradise), 가장 좋은(behast-best), 설탕(shakar-sugar), 오렌지(naranji-orange), 요구르트(yogurt-yogurt),  기타(sitar-guitar), 입술(lab-lips), 잠옷(paejamah-pajamas), 샌들(sandal-sandals), 현금(karsha-cash), 시장을 의미하는 바자(bazaar) 등이 대표적이다. 이 단어들을 살펴보면 당시 페르시아에서 생산된 어떤 물품들이 유럽으로 건너갔는지 짐작할 수 있고 유럽인들의 생활과 사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보인다.

◇ 황성 옛터 페레스폴리스, 영광은 가고 흔적만 남아
황성 옛터인 페레스폴리스는 다리우스 대왕이 주춧돌을 놓았다. 잡초가 우거지고 길이 끊겨 인적이 닿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페레스폴리스는 넓은 국도와 인접한 곳에 잘 정비돼 있다. 이란은 관광 인프라가 아직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래서 그 유명한 인류의 문화유산인 페레스폴리스를 찾는 관광객은 대체로 이란 현지인들이 대부분이다. 간혹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섞여 있지만 서양인들의 모습은 쉽게 찾을 수 없다.

 
화려했던 제국의 왕궁건물은 사라지고 굵은 뼈대처럼 기둥과 기단만 남아 있는 페레스폴리스의 모습. © News1 이상문 기자

다리우스 대왕은 키루스 대왕이 세운 왕도 파사르가드를 버리고 남쪽으로 더 내려와 ‘자비’라는 뜻을 가진 라흐마트 산 중턱에 왕궁을 건설한다. 그때가 BC 518년이다. 페르세폴리스라는 이름은 그리스의 역사가 플루타르코스가 쓴 ‘알렉산더전’에 처음 언급이 됐으며 ‘페르시아인들의 도시’라는 뜻이다. 그러나 페르시아 사람들은 이 도시를 ‘탁테 잠쉬드’라고 불렀다. ‘잠쉬드의 왕좌’라는 뜻이다. 잠쉬드는 페르시아 신화에 등장하는 신이 내린 왕이다. 페르시아인들은 다리우스 대왕을 자신들의 신화에 나오는 잠쉬드와 동일시했는지도 모른다.

페레스폴리스는 왕궁터와 왕궁을 떠받쳤던 기둥들, 기단들이 마치 거대한 공룡의 뼈처럼 남아 있다. 사람들은 그 뼈대 위에 눈대중으로 궁전의 형상을 짓고 화려한 금색 옷을 입힌다. 강대한 제국 페르시아의 위용에 걸맞은 왕궁을 다 짓고 다시 머릿속 상상의 집채를 허물면 세월의 먼지처럼 왕궁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잔해만 남는 것이다.

상상을 고증에 의해 재구성해보면 이렇다. 다리우스 대왕은 이 왕궁을 짓기 위해 제국에서 가장 우수한 건축가와 예술가들을 불러 모았다. 페르세폴리스의 건축물은 이들에 의해 가장 예술적으로 꾸며졌고 서양 건축사에 큰 영향을 미친다. 페르세폴리스를 형성한 건축 방식은 다국적이다. 제국의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진흙 벽돌은 바빌론양식이고 지붕을 지탱하게 한 목재 기둥은 레바논양식이다. 왕궁은 바빌론양식과 아시리아양식, 이집트양식이 섞였다. 건축 자재들은 이집트와 인도에서 가져왔고 금은 지금의 터키 지역인 사르디스에서 가져왔다. 돌은 현지에서 캐냈지만 그 돌을 다듬는 방식은 리디아양식과 이오니아양식을 혼용했다.

◇ 궁터에 널린 3000여개 조각·부조 대제국의 위용 표현
이처럼 제각각의 양식이 도입돼 만들어진 페르세폴리스의 건축물들은 기발하게도 하나의 통일미를 갖췄다. 그것이 바로 페르세폴리스 교유의 양식으로 굳었고 훗날 유럽의 건축양식의 텍스트로 전해졌다. 다리우스 대왕의 사후에도 150년에 걸쳐 왕궁의 증축은 계속됐다.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의 속국들에서 온 사신들이 각국의 진귀한 진상품을 들고 왕을 알현하기 위해 줄을 선 모습은 페레스폴리스의 한 벽에 부조로 남아 있다. © News1 이상문 기자

이곳에서는 매년 페르시아의 신년행사인 노루즈와 조로아스터교의 축제가 열렸다. 이때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에 속한 국가들의 사신들은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진귀한 선물을 왕에게 진상했다. 그들의 모습은 페르세폴리스의 동쪽 계단에 새겨진 부조로 전해진다. 이 부조들을 살펴보는 재미는 페레스폴리스를 찾았을 때 빼놓을 수 없는 행위다.

부조들을 자세히 보면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에 부속된 국가들이 대왕에게 진상하는 조공품들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다. 인도는 향수를, 에티오피아는 상아를, 바빌론은 소를, 아르메니아는 말을, 레바논은 금반지를 들고 줄지어 섰다. 이 부조들은 당대의 예술가들이 얼마나 섬세한 솜씨로 돌을 다뤘는지 짐작하게 한다.

 
각국의 사신들이 왕을 만나기 위해 왕궁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이 ‘만국의 문’을 거쳐야 했다.  © News1 이상문 기자

각국에서 조공을 바치러 온 신하들은 ‘만국의 문’을 통해 입궁하고 대왕을 알현했다. ‘만국의 문’은 아케메네스 왕조의 상징인 신화 속 동물 라마수가 조각된 거대한 출입문이다. 라마수는 사람 얼굴에 날개를 단 황소의 형상을 띠고 있다. ‘만국의 문’은 다소 훼손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 위용을 잘 드러내고 있다. 기둥은 웅장하고 마라수의 자태는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만국의 문’에는 다리우스 대왕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왕이 새긴 글이 있다. “나는 크세르크세스다. 나는 대왕이며 왕 중의 왕이다. 제국의 왕이며 모든 종족의 왕이며 아케메네스의 왕이다. 다리우스의 아들로 아버지를 이어 이곳에 페르시아를 건설했다.” 이 글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가 얼마나 강대한 제국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해 준다.

‘만국의 문’ 옆으로는 100개의 기둥으로 만들었다는 아파타나 궁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궁전은 외국의 사절을 접견하고 조로아스터 종교행사를 거행하던 장소다. 그리고 곳곳에서는 페르시아 신화에 나오는 문양이 3000여개의 조각과 부조로 널려 있다. 페르시아의 권위를 상징하는 사자가 목우를 공격하는 모습은 여러 군데서 찾을 수 있다. 목우는 페르시아 인근의 국가들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 사자의 동체에 뱀꼬리를 가진 그리폰상도 보인다. 그리폰은 동방에서 건너온 괴물로 여겨졌다. 그리폰은 페르시아의 중요한 상징이며 그리스인들에게는 페르시아의 강대한 세력에 대한 공포가 트라우마로 작용해 그리폰으로 대변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의 영광도 오래가지 못했다. 다리우스 대왕의 전사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쇠퇴를 암시했고 그리스의 세계 제패라는 단초를 마련한다. BC 490년 다리우스 대왕은 소아시아 반도에서 일어나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징벌하러 떠났다. 이 전쟁이 일어난 곳이 미나리과의 풀이 무성했던 마라톤 평원이다. 아테네인들은 죽음을 다해 거대 제국 페르시아와 맞섰고 그 결과 승리했다. 다리우스 대왕에게 치명적 패배의 상처를 안긴 것이다.

전쟁에 승리한 아테네군의 페이디피데스란 전령은 아테네까지 달려가서 “네니케카멘!(우리가 이겼다!)”라는 말을 전하고 숨졌다. 이것이 올림픽 경기의 꽃인 마라톤의 기원이다. 거기서 다리우스 대왕은 전사했다. 지금까지 이란은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마라톤 종목에 참가하지 않는다. 이 전쟁이 끝나고 10년 뒤 벌어진 세계 최초의 해전인 살라미스 해전은 아테네가 페르시아를 누르고 번영하는 시발점이 됐다.

 
페레스폴리스에서 바라본 석양. 아케메네스 페르시아도 그 영광을 영원히 이어가지 못하고 알렉산더에 의해 석양을 맞고 말았다. © News1 이상문 기자

◇ 제국의 영광, 알렉산더 말발굽 아래 허무하게 사라져

페레스폴리스의 영광은 BC 331년 알렉산더 대왕의 공격으로 잿더미가 된다. 승리에 도취한 알렉산더의 군인들은 페레스폴리스 궁전에서 술을 마셨고 누군가가 취기에 불을 질렀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의 종말은 그렇게 허무하게 다가왔다.

페레스폴리스는 외적의 침공으로 폐허가 됐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져갔다. 훗날 그 지역의 사람들조차 이 유적이 정확하게 어느 시대 무슨 용도의 건축물이었는지 알지 못했다고 한다. 솔로몬의 궁전이었다고 하고 신화에 나오는 잠쉬드의 궁전이었다고 추측했다. 유럽의 역사학자들이 알렉산더 대왕이 이곳의 탁테 잠쉬드를 멸궁했다는 기록을 발견하고 그때부터 페르세폴리스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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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경제제재에서 풀리면서 21세기 골드러시로 떠오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5월1~3일 이란을 국빈 방문한다. 이란과 SOC, 건설, 조선, 석유화학,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의 교역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고대 페르시아제국 때부터 신라와 실크로드를 통해 교류했던 이란의 문화와 역사, 종교, 이란인들의 삶을 현지 취재를 통해 파헤친다. 이 취재는 지난 2014년 11월에 20일간, 지난해 12월에 15일간 두 차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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