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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판 도가니-그후⑩ 짜맞추기 조사에 원생들 ‘집단 트라우마’

(울산=뉴스1) 김재식 기자 | 2012-08-29 22:02 송고 | 2012-08-30 05:22 최종수정
메아리복지원은 지난 12월 5~6일 인권실태조사를 받은 강기태, 정명수, 최기남이 정신병적인 증세를 보이자,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자필 진술을 받았다. 위로부터 강기태, 정명수, 최기남 의 자필 진술서. 2차 조사팀으로부터 성폭행범으로 몰려 자백을 강요당하며 억울하게 조사를 받은 원생들의 분노와 아픔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 News1
“박영수가 나한테 성폭행 당했다고 말도 안했는데 나보고 박영수를 성폭행했다고 자백하라니…그땐 정말 억울해 죽고 싶었어요. 인권실태 조사는 두 번 다시 떠올리기 싫은 악몽이에요.”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0월 광주 인화학교에서 시설 운영자들이 미성년 시설 이용자들을 반복적으로 성폭행한 이른바 ‘도가니’ 사건을 기화로 전국 200여 곳 장애인 거주시설에 대한 인권실태를 조사했다.

막대한 국가 예산을 투입해 시설 거주 장애인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실시한 인권실태 조사가 왜 메아리복지원 청각 장애 원생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끔찍한 악몽이 됐을까.

2차 조사팀이 보건복지부 인권실태 조사 매뉴얼을 무시하고 '메아리복지원 운영권 강탈'이라는 목적을 가진 ‘짜맞추기’식 강압조사를 했기 때문이라고 메아리 원생들과 학부모들은 주장하고 있다.
뉴스1 취재 결과 박영수가 자신과 관련된 성폭행에 연루됐다고 진술한 원생들뿐만 아니라 전혀 거명되지 않은 원생들까지 무차별적으로 박영수에 대한 성폭행 가해 여부를 조사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2차 조사팀으로부터 가장 강도 높게 조사를 받은 원생은 박영수가 2006년 목욕탕에서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지목한 강기태다.

강기태는 이틀에 걸쳐 “후배(박영수)가 말했으니, (XX에 성기 삽입을 통해) 박영수를 성폭행 한 사실을 시인하라”고 추궁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최종보고서의 강기태 진술 내용을 보면, 이틀에 걸친 조사에도 불구하고 강기태는 박영수에 대한 성폭행 사실을 부인한 것으로 기술돼 있다.

결국 2차 조사팀은 강기태로부터 박영수에 대한 성폭행 가해 사실을 자백 받지 못한 것이다.

강기태는 뉴스1 취재진과 만나 “박영수가 왜 그런 허위 성폭행 사실을 조사팀에게 말했는지 모르겠다”며 “조사 받을 때 너무 억울해 죽고 싶었고, 청각 장애인으로 태어난 게 너무 서러웠다”고 밝혔다.

문제는 박영수가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지목한 강기태만 '박영수에 대한 성폭행 가해 조사'를 받은 게 아니라는 점이다.

2차 조사팀은 박영수가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진술한 적도 없는 정명수(가명)와 최기남(가명)까지 박영수에 대한 성폭행 여부에 대해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는 박영수의 진술도 없는 상태에서 정 군과 최 군에게 ‘박영수에 대한 성폭행 가해 사실을 자백하라’는 법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행위를 ‘인권실태 조사’란 명목으로 청각장애 원생들에게 자행한 것이다.

이들 원생들은 박영수와 함께 생활시설에서 같이 기거했던 학교 선배들로 파악됐다.

단지 박영수와 함께 생활했던 학교 선배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성폭행범으로 몰려 사실상 허위 자백을 강요받은 것이다.

2차 조사팀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짜맞추기 조사를 통해 메아리 원생들을 성폭행범으로 몰아간 것이다.

2차 조사팀의 이러한 상급생 원생들에 대한 강압적인 짜맞추기 조사는 ‘1차 조사에서 성폭행 가해자로 밝혀진 박영수가 하급생일 때 선배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그것을 배워 상급생이 돼 하급생을 성폭행하게 됐다’는 이른바 ‘성폭행 대물림’의 근거를 만들기 위함으로 보인다.

결국 2차 조사팀의 강압 조사에 굴복한 정명수가 허위 자백한 (박영수에 대한) 성폭행 내용 등이 기술된 최종 보고서를 근거로 해 북구청이 내린 행정처분이라는 합법적 절차를 통해 메아리복지원 설립자 가족들은 모두 운영진에서 물러났다.

메아리복지원 설립자 가족들은 자신의 재산은 물론 문중 재산까지 사재를 모두 털어 50년 가까이 운영해 오던 복지시설에서 사실상 쫓겨난 것이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박영수에 대한 성폭행 가해 사실을 시인하라는 2차 조사팀의 강압 조사에 정신적 충격을 받은 메아리 원생 들은 그 후유증으로 1~2개월의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News1

이런 짜맞추기 조사를 받은 원생 가운데 지난해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역도 금메달리스트로 메아리학교 학생회장이기도 한 정명수는 “인권실태 2차 조사원이 후배가 이미(성폭행 사실을) 말했다”며 “성폭행 자백을 강요해 계속 아니라고 하면 학교와 친구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하지도 않은 성폭행 사실을 어쩔수 없이 인정했지만 너무 억울하고 후회스러웠다”고 말했다.

촉망 받는 장애인 체육선수이며 학교를 대표하는 학생회장이 인권실태 조사란 미명으로 자행된 ‘짜맞추기’ 강압조사로 한 순간에 성폭행범으로 전락, 최종보고서에 이름이 오른 것이다.

다행히 정군은 지난 2월 경찰 조사에서 무고함이 밝혀졌고 올해 초 지역 스키·스노보드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할 만큼 선천적 장애를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 청각 장애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는 주변의 평을 받고 있다.

2주 전 SBS 인기 오락프로그램 ‘스타킹’에서 후배들과 메아리복지원 청각장애 비보이 팀을 구성해 음악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장애를 극복하고 가슴 찡한 댄스를 선보였던 최기남.

메아리학교 교사뿐만 아니라 후배들도 인정하는 모범생인 최군도 2차 조사팀에 의해 박영수 성폭행 가해 여부를 집중 조사 받았다.

2차 조사팀이 박영수의 피해 진술도 없는 상태에서 (박영수에 대한 성폭행)가해 사실을 허위 자백하라고 최 군에게도 강요한 것이다.

이처럼 박영수에 대한 성폭행 가해 사실을 추궁받은 강군, 정군, 최군 등 3명은 ‘자신이 하지도 않은 성폭행 사실을 자백하라’는 인권실태 2차 조사를 받은 뒤 정신적 충격으로 모두 1~2개월간의 정신 치료 진단을 받았다.

이들을 치료한 담당의사는 진단서를 통해 “(인권실태 2차) 조사 때 결백을 주장함에도 성폭력 혐의에 대해 반복적인 추궁을 받은 기억에 대한 위압감, 수치감, 분노감을 호소하고 있으며, 평소와 달리 의욕 저하, 대인관계 불안, 추후 조사에 대한 공포심을 호소해 약 1~2개월간의 약물 및 상담 치료를 요한다“고 밝혔다.

A변호사 사무실 관계자는 “법 상식적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사람의 진술이 없는데 어떻게 피해를 입힌 가해 사실을 자백하라는 조사가 있을 수 있느냐”며 “경찰 조사를 통해 원생들의 무고함이 밝혀졌지만, 이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는 평생 남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jourl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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