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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옷'(馬甲) 전시 함안박물관...방학맞아 인기몰이

(경남 함안=뉴스1) 김동출 기자 | 2012-07-27 04:33 송고
1500여년 전의 것으로 밝혀진 마갑의 왼쪽 모습. (함안박물관 제공) © News1
마갑을 확대한 모습. 마갑을 잇는 구멍조차도 섬세하다. (함안박물관 제공) © News1
1992년 6월6일 경남 함안군 가야읍 해동아파트 신축공사 현장.

신문배달을 하던 이병춘(당시 학생)씨가 현장 옆을 지나다 보니 굴삭기가 파낸 흙 가운데 거무튀튀한 쇠덩이가 눈에 띄었다.

이씨의 신고로, 전문가들이 동원돼 흩어진 쇠조각을 수습해보니 놀랍게도 마갑(馬甲·말 갑옷)이었다.

전문가들은 또 아직 파헤쳐지지 않은 땅에서 말의 오른쪽을 감싸는 온전한 형태의 갑옷을 찾아냈다. 말의 얼굴의 감싸는 마면주(馬面胄)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출토된 마갑은 그렇게 사라질 위기에서 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언론들은 '1500년 전 말갑옷이 현실로 걸어나오다'고 대서특필했다.

1500여 년 전, 전장에 나가는 장수의 갑옷도 아닌, 장수가 탄 말에까지 갑옷을 씌운 사람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땅에 묻힌 지 1500년의 세월이 지난 요즘, 함안박물관 제3전시실에 상설 전시중인 마갑은 방학을 맞아 박물관을 찾는 이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철기문명의 꽃으로 불리는 마갑

마갑은 중장기병(重裝騎兵)의 기본이다. 아울러 마갑은 철기문명의 꽃이다.

마갑은 총 440~453개의 형태가 다른 조각으로 출토됐다. 이를 연결해 보니 총길이가 2m26㎝~2m30㎝, 너비 43~48㎝다. 보호하는 부위에 따라 조각의 크기도 달랐다. 마갑을 잇는 줄을 꿰는 구멍도 아주 미세했다.

함안 마갑이 더 의미가 깊은 것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완전한 형태가 출토됐다는 점이다.

평안남도 용강군의 쌍영총, 남포의 약수리고분, 평양의 개마총, 중국 집안의 삼실총 등 고구려의 고분벽화에는 말과 사람이 함께 무장한 개마무사(鎧馬武士)가 등장하는데 경주와 동래, 합천에서 마갑의 일부 미늘 조각이 출토된 것을 제외하고는 단지 벽화 속에서 존재할 따름이다.

하지만 함안에서 발견된 마갑은 머리·목·가슴·몸통 부분을 확실히 구별할 수 있는 완전한 형태로 출토돼 개마무사의 실존을 확인해 줬을 뿐 아니라, 철을 수출한 변한에서도 가장 대국이었던 아라가야의 위상을 확실히 보여주는 유물로 평가받는다.

그 뒤 함안 말이산 6호분과 8호분에서 두 벌이 더 출토되고 2007년에는 경주 쪽샘지구에서도 함안 것보다 크기가 작은 마갑이 발굴됐다.

◇고분총에서 환두대도(둥근고리 칼) 출토

마갑이 나온 고분은 마갑총(馬甲塚)으로 명명되는데 마갑총에서는 아라가야의 위력을 보여주는 또 다른 유물이 함께 출토됐다. 바로 '둥근고리 칼(환두대도)'이다.

길이 83cm의 둥근고리 칼은 자루에 용의 문양이 새겨져 있고 금으로 장식돼 있어 무덤주인이 최고 권력층이었음을 보여준다. 또 개마총의 벽화에 나오는 고리자루 칼과 형태가 유사해 고구려와의 연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마갑을 입은 말을 탄 장수모습. 함안박물관 제3전시실에서 전시중이다. (함안박물관 제공) © News1


고구려와 밀접한 관계 속에 광대한 영토를 이루며 왜(倭)에 철기를 전한 아라가야였기에 여러 형태의 마갑도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는 추정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함안에서 출토된 세 벌의 마갑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1500년의 세월이 지나 세상에 나온 마갑…. 함안군은 이 마갑을 '아라가야의 혼'으로 이름 짓고 관광객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함안박물관 손영호 학예사는 "말갑옷과 마갑총 출토 환두대도야말로 아라가야 시대가 대단한 철기문화를 꽃피웠음을 말해주는 것"이라며 "아라가야의 혼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관람 문의 함안박물관 (055) 580-3902~4.


kdc@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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