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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푸틴의 야욕은 어디까지 갈까

(서울=뉴스1) | 2022-03-18 11:03 송고 | 2022-03-18 11:08 최종수정
© News1 
1976년 구 소련 레닌그라드(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곳 지역신문 '레닌그라드이브닝뉴스'가 유도 경기 결과를 보도했다.
"지금까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23세의 지역 선수가 유도 경기에서 우승하고 처음으로 챔피언 랭킹에 이름을 올렸다. 앞으로 사람들은 이 선수에 대해 더 많이 듣게 될지 모른다. 그의 이름은 블라드미르 푸틴이다."

이 신문의 예측이 절반은 틀리고 절반은 맞았다고 해야 할까. 지금 유럽을 2차대전 이후 가장 참혹한 전쟁터로 만들면서 세계 경제를 충격과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첫 사회 데뷔는 이렇게 시작했다. 아마 당시 이 기사를 쓴 기자는 그가 유도선수로서 세계에 두각을 나타낼 것이라고 생각했지, 이웃 나라를 침공하며 인명을 대량 살상하는 러시아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으로 촉발된 전쟁이 20여일째 계속되고 있다. 푸틴의 군대는 우크라이나의 군과 산업시설 뿐 아니라 학교, 민간아파트, 병원, 어린이 대피소 등 모든 걸 미사일과 포격으로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있다. 이웃 동구권 나라로 피신한 우크라이나 난민이 300만명에 이른다고 유엔이 추산했다.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푸틴의 전비 돈줄을 끊기 위해 고강도의 경제제재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아무도 이 반인륜적인 전쟁상황을 제어할 힘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미국 등 나토 동맹국들은 궁지에 몰린 푸틴이 핵무기 또는 화학무기 사용 등 극단적 선택을 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우크라이나 지원에 제한적이다.
이를 기회라고 보는 듯 푸틴은 우크리이나를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는 듯 그야말로 초토화 작전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군의 공격 목표가 폴란드 인근으로 이동하는 등 공세 수위가 한층 대담해졌다. 2500년 전 그리스의 장군이자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서스 전쟁사'에서 서술한 글귀가 떠오른다.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전쟁이란 얼마나 예측하기 어려운 것인지 미리 생각해보라. 전쟁이 오래 계속되면 대개 우연의 지배를 받게되어, 둘 중 어느 쪽도 사태를 제어할 수 없게 된다." 멀리 떨어진 아시아에서 바라보기에도 하룻밤 동안에 유럽에서 어떤 변고가 일어나는 게 아닌가하는 불안한 생각이 든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결정은 오직 한 사람 푸틴 대통령의 마음에 있다. 그는 현재까지 전쟁을 자기 의지대로 끌고 가고 있다. 세계 평화가 지금 푸틴의 손에 달려 있는 셈이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이 중재에 나서고 있고 블라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나토가입을 하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 섰으니 협상의 돌파구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 본다.

미국의 러시아에 대한 석유 및 가스 금수조치와 국제은행간통신협회결제망 배제로 루불화가 폭락하면서 러시아는 디폴트(지불불능) 위기에 몰렸다. 더 이상의 전쟁은 러시아 경제에 치명적 타격을 줄 것이 불을 보듯 뻔하지만 푸틴의 오기는 아직 꺾이지 않은 것 같다.

클린턴 정부의 국무장관이었던 메들레인 올브라이트는 2000년 클렘린에서 갓 취임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다. 그는 회담을 끝내고 나오면서 메모책에 푸틴에 대한 첫 인상을 '파충류같다'(reptilian)고 적었다. 또 오바마 대통령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힐라리 클린턴은 푸틴을 가리켜 "영혼이 없다"고 표현했다. 한 개인의 성격 탓인지 국제환경 탓인지 지금 지구촌은 시베리아의 얼음장 처럼 차디차다.

한 때 지구촌이 살맛 나던 때가 있었다. 20세기말 10여 년 동안 국제사회엔 낭만과 희망이 있었다.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이 미소냉전에 변화를 불렀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됐다. 소련제국이 15개 국가로 해체되고 그 중 제일 큰 나라인 러시아 공화국에 보리스 엘친 대통령이 등장했다. 옐친은 쇼무대에서 연예인들과 춤추며 러시아의 분위기를 바꿨다. 미국에서 클린턴 대통령과 농담을 주고 받았고 수퍼마켓을 방문하여 시장경제를 음미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엘리자베드 영국 여왕이 클렘린 궁을 방문하여 동서해빙의 분위기가 물씬했다. 러시아가 곧 자유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할 것 같았다.

중국도 달라지는 듯했다. 푸근한 인상의 장쩌민 중국 주석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고 아시아 여러나라와 친근하게 교류하던 시대 말이다. 우리나라도 독일처럼 통일이 가깝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완전한 정치적 통일은 안 되더라도 남북 주민이 왕래하며 공존의 틀을 만들 것만 같은 때였다.

하지만 그건 역사를 모르는 순진한 생각이었던가. 소련의 첩보기관 KGB의 동독 파견 요원으로 활동하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해체되자 무직자로 전락한 푸틴은 냉혹함과 끈질김으로 출세의 사다리를 올랐고 옐친의 후계자가 되었다. 그리고 22년동안 정적을 축출하며 독재체제를 강화했다. 그는 소련의 해체를 잘못된 것으로 보고 옛 소련제국의 회복을 꿈꾸며 우크라이나 등 과거 형제국들을 침략하며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과연 누가 푸틴을 멈추게 하고 전쟁의 먹구름을 걷어낼 수 있을까.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바이든 미국대통령, 유엔사무총장, 국제여론이 할 수 있을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힘을 발휘한다면 가능할 것도 같지만 과연 나서줄까. 결국 러시아 국민들이 선택하게 내버려둬야 하는가.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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