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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재구성] "나는 도인" 관장 목검에 숨진 30대…3년 폭행 왜 참았나

도장은 관장의 왕국… 수백만원 회비받고 옷빨래·번역일 시켜
가스라이팅에 폭행당하고 스스로 질책…대법원서 징역 7년 확정

(서울=뉴스1) 송상현 기자 | 2022-03-12 07:00 송고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도인'이라 불리며 전통무예와 법문(마음수련법)을 가르치던 무도인. 그를 따르며 월마다 최대 100만원이 넘는 회비도 마다하지 않았던 수련생. 그들이 3년째 함께하던 도장에서 비극은 발생했다. 왜 수련생은 관장에게 목검으로 그토록 끔찍하게 맞아 사망에 이르게 됐을까.
서울 종로구에서 전통무예도장을 운영하는 관장 A씨(50)는 평일엔 수련을, 토요일엔 법문 강의를 했다. 피해자 B씨(32)가 이 도장을 찾은 것은 2015년이었다.

'스승님' '도인'으로 불리길 원했던 A씨는 수련생들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했는데 B씨 역시 이를 피해가지 못했다. 도장은 이미 A씨 홀로 군림하는 왕국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영어 과외 등의 일을 하던 B씨는 A씨에게 최대 100만원이 넘는 회비를 3년 이상 입금했다. B씨는 A씨의 법문강의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까지 맡아서 해야 했다. 본업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번역을 해야 했고, 제대로 하지 못하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A씨의 질책 전화가 따라왔다.

법문강의에 집중하지 않는다거나, 지시를 지키지 않으면 A씨로부터 매를 맞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런데도 B씨는 '스승님이 시키는 것은 뭐든지 하겠다', '지난 세월 스승님과 한 약속은 빠르면 한달, 길면 일년 이내에 지켜라' 등의 메모를 수첩에 남겼다. 실제로 B씨는 매를 맞은 날에도 수첩에 맞았다는 말보단 자기반성을 대부분 적었다. A씨로부터의 지속적인 가스라이팅 때문에 '자신이 잘못했으니 맞았다'는 심리상태에 이른 것이다.

비극이 일어난 것은 B씨가 도장에 다니기 시작한지 3년째인 2018년 9월16일이었다. B씨는 일주일 넘게 법문강의 영어번역 문제로 A씨로부터 독촉을 받다가 이날 오후 6시쯤 도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영어번역 기한을 맞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A가 휘두른 목검에 머리, 등, 목 부위를 무자비하게 맞고 쓰러졌다.

도장 관계자들은 7시쯤 119에 신고를 했고 10분 후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했지만 B씨는 호흡정지 및 심정지 상태로 동공반응도 없었다.

B씨는 인근 대학병원으로 실려 갔지만 광범위한 피하출혈 및 근육손상 후 외상성 쇼크 로 인한 압궤증후군으로 이날 오후 8시40분쯤 사망에 이르렀다. 압궤증후군은 장기간에 걸친 폭행으로 근육이 손상돼 발생하는 사인이다.

A씨와 도장 관계자들은 B씨 사망으로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통화내역·사진을 감추려 휴대폰을 바꾸거나 숨기며 증거를 은닉했다. 수사초기에는 폐쇄회로(CC)TV가 없고, 유의미한 목격자 진술도 얻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이 도장은 무예수련 과정을 짧은 홍보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게재해왔는데, 경찰은 편집되지 않은 이 원본 영상을 확보해 상습폭행 사실을 확인했다.

법원은 A씨가 수련생들에게 지속해서 훈육 명목의 폭력을 가해왔고, B씨가 당시 다른 곳에서 폭행당했다고 볼 만한 정황이 없다는 사실을 고려해 특수폭행치사·특수폭행 혐의를 인정했다. 1심은 징역 7년을 선고했고, 2심과 대법원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songs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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