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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 규제 풀며 낙관한 금융위…"성장통으로 보고 보완해야"

5년 전 "피해 봐 가면서" 속도조절론에 금융위 "문제 없을 것"
규제 강화로 시장 위축될라…"무조건 막기보단 보완방안을"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전민 기자 | 2020-02-12 06:15 송고
정부서울청사 전경. 2017.8.6/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정부서울청사 전경. 2017.8.6/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금융위원회는 모험자본 육성 등을 위해 지난 2015년 사모펀드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당시 이른바 '사모펀드 규제 완화법' 법제화 과정 중 일각에서는 규제 완화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해 '속도조절론'이 나왔지만 금융위는 "문제 없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19년 라임자산운용의 환매 중단 사태가 발생했고 개인투자자들은 대규모 투자손실을 안을 위기에 처하게 됐다. 
사모펀드 시장이 클 수 있도록 금융위가 각종 빗장을 풀었지만 시장을 감시할 수 있는 촘촘한 관리감독 체계를 마련하는 데는 다소 소홀했다는 점이 아쉬운 대목으로 꼽힌다. 또한 이번 사태로 사모펀드 시장에 높은 규제 장벽을 쌓는 것은 모험자본 육성 등 순기능 위축을 불러올 수 있는 만큼, 제도의 맹점을 보완할 수 있는 대책을 통해 사모펀드 시장이 한 단계 성숙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5년 전 "피해 봐 가면서" 속도조절론에 금융위 "문제 없을 것"

2012년 기준 금융감독원이 파악한 미국과 영국의 GDP 대비 헤지펀드(순자산) 비중은 각각 8.83%, 11.8%인데 반해 한국은 0.09%에 그쳤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사모펀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돼, 규제가 거의 없는 외국과 달리 엄격한 틀에서 사모펀드가 운영됐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위는 자본시장과 금융산업의 역동성 제고를 위한 촉매제로서 사모펀드 시장을 키우기 시작했다. 업계의 규제 완화 요구도 컸다.

금융위는 2013년 12월 '사모펀드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이듬해 9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정부안으로 발의했다. 사모펀드 유형을 전문투자형(헤지펀드)과 경영참여형(PEF)으로 단순화하는 등 규율체계를 재정립하고 사모펀드 진입·설립·운용·판매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여야는 사모펀드 시장 육성에 대체로 공감대를 형성했다.
다만 국회에서 정부안이 심의될 때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록(2014년 12월3일)에 따르면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소속 김기준 의원은 "지금 우리나라 사모펀드 시장이 침체돼 있는 게 아니고 어떻게 보면 상당히 오버됐다고 할 정도로 많아졌다"며 "사모펀드 시장 위주로 금융시장을 발전시키려고 하는 정책에 대해서 한번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동을 걸었다. 김 의원은 "사모펀드로 인해 생길 수 있는 피해 사례도 봐 가면서 규제 완화를 해야지, 마구잡이로 완화할 문제는 아니다"라며 "아직은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당시 PEF 뿐만 아니라 헤지펀드 관련 규제 완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이런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당시 정찬우 금융위 부위원장은 "사모펀드가 움직임이 자유롭기는 하지만 불법을 자행하지는 못 한다. 법이라는 게 다 존재하고 있고, 그 법을 어기면 처벌을 받게 돼 있다"면서 "규제가 너무 많았던 부분을 현재 정비를 하면서 좀 완화시키는 부분이기 때문에 제가 볼 때는 김 의원님이 걱정하시는 만큼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다"고 답했다. 정 부위원장은 "자본시장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창의력이라든가 자율성을 많이 줘 가지고, 자기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새로운 수입원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 신동우 의원은 "'우리 모여서 돈 좀 갹출해서 투자하자' 이렇게 계처럼 모여서 움직이기 때문에 미국 같은 경우 사모펀드에 대한 금융당국의 규제가 일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가 오히려 지금 규제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까 사모펀드 시장이 형성이 안 된다"며 정부안을 지지했다.

이후 법안심사소위가 4차례(2015년 1월6일~4월28일) 더 열렸지만 PEF 규제와 관련된 논의가 일부 이뤄진 게 전부였다. 당시 금융위 소속으로 사모펀드 규제 완화 관련 실무를 맡았던 담당자는 "사모펀드는 사적 자치영역이라 (금융당국의) 관심이 적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면서 여야가 규제 완화에 공감대를 형성했었다고 전했다. 이후 정부안에서 일부 내용이 수정된 사모펀드 규제 완화법이 2015년 7월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같은해 10월25일부터 시행됐다.

◇또한번 규제에 시장 위축될라…"무조건 막기보단 보완방안을"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우선 사모운용사 수가 급증했다. 헤지펀드가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뀌면서 진입 장벽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환매 중단 사태의 진앙지인 라임운용이 투자자문사에서 사모운용사로 전환한 것도 2015년 12월이다. 지난 2015년 19개에 불과했던 사모운용사는 2016년 91개로 4배 넘게 급증했고 지난해 말에는 217개로 5년 사이 10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공모펀드도 운용하는 종합운용사는 74개에서 75개로 1개사 늘어나는데 그친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사모펀드 설정액도 대폭 증가했다. 사모펀드 규제 완화가 시행되기 이전인 2014년말 173조2456억원이었던 사모펀드 설정액은 지난 2016년 8월 처음으로 공모펀드 설정액을 추월한 뒤 지난해말 기준 416조4583억원을 기록했다. 5년 사이 140% 늘어난 셈이다. 지난해말 기준 공모펀드 설정액은 242조3380억원에 그쳐 사모펀드와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인가가 아닌 등록만으로 사모펀드 운용사를 설립할 수 있게 하면서 사모펀드 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했다. 운용사가 공시해야 할 항목 중 펀드 투자자와 관련이 크지 않은 사항은 제외됐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수단이 있는데 감독을 안 했다면 뭇매를 맞아도 할 말이 없지만, 2015년 규제 완화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감독의 범위는 줄었다"며 금감원의 관리감독 부실론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사모펀드 운용전문인력 요건 완화, 환매 대응목적 펀드의 자전거래 기간 제한 폐지, 한 펀드 내 다양한 자산 투자 허용 등의 규제 완화도 라임운용 환매 중단 사태가 촉발된 배경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사모펀드 시장에 높은 규제 장벽이 생긴다면 불필요한 시장 위축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계론도 만만치 않다. 금융권에선 모험자본 육성 등 순기능을 위해 사모펀드 시장이 위축돼서는 안 된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제도의 맹점을 보완할 수 있는 대책으로 시장이 성숙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한상일 한국기술교육대 산업경영학부 교수는 "순기능이 있는 사모펀드 시장을 너무 위축시키면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버린다"면서 "지금 상황에서는 무조건 막는 것보다, 이번 사태를 성장통으로 여기고 시장 보완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환매 중단 사태가 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일부 운용사의 도덕적 해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사기, 배임 등 혐의를 받는 이종필 전 라임운용 부사장은 현재 잠적한 상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문제는 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제도를 악용한 라임운용의 위법행위 케이스"라고 비판했다. 황 연구위원은 라임운용이 펀드 자금을 사실상 돌려막기한 부분을 지적했다. 그는 "시장 참가자들은 사모펀드를 통해서 모험자본이 공급된다는 점을 대부분 인정한다. 지나치게 규제를 강화하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사후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싶다"고 봤다.

금융위는 오는 14일 사모펀드 규제 관련 개선 방안을 발표한다. 이번에는 사모펀드의 자체 내부통제 강화 방안과 투자자에 대한 판매사의 정보 제공 확대 등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규제 수위에 대해 "시장이 위축될 만한 수준의 규제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하되, 사모펀드 시장의 원래 기능을 지키고 질적 성장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앞서 금융위는 지난해 해외 주요 금리 연계 파생상품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해 원금 20~30% 손실 위험이 있는 고난도금융상품의 은행 판매를 금지하고, 헤지펀드의 일반투자자 최소 투자금액 현행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상향하는 등의 대책을 제시한 바 있다.


pej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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