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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이나 한번 해볼까' 하면 망한다…아무나 점주하는 게 아니다"

편의점 주부에서 '편의점 운영 대가'로…유정례 점주 인터뷰
코피 쏟고 바닥에 주저앉았지만 포기 안해…매출 100억원 돌파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오현주 기자 | 2020-01-27 07:29 송고 | 2020-01-28 09:54 최종수정
'편의점 운영 대가'로 불리는 유정례 점주(세븐일레븐 제공).2020.01.08© 뉴스1
'편의점 운영 대가'로 불리는 유정례 점주(세븐일레븐 제공).2020.01.08© 뉴스1

직장 생활이 팍팍하거나 퇴직을 앞둔 이들은 하소연하듯 털어놓는다. "나도 편의점이나 한번 해볼까?" 과거 예비 창업자들의 로망이 '치킨집' 또는 '커피숍'이었다면 이제는 '편의점'이다.
"편의점주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진짜로 한번 열심히 해보겠다, 모르면 배워서라도 하루 8시간 이상 일하겠다, 이런 사람이 편의점주를 해야 합니다."

유정례 세븐일레븐 점주(여·61)의 말이다. 그는 편의점 17개(현재 7개)를 운영했던 '편의점 운영'의 대가로 불린다. '나도 한번 해 볼까'는 생각으로 덤볐다가는 후회하거나 망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지난 2018년 말 기준 전국 편의점 수는 4만2258개. 대한민국 인구 1350명당 1개 꼴이다. 참고로 '편의점 왕국' 일본의 경우 인구 2250명당 1개다. 인구 비율로 따지면 한국이 일본보다 편의점이 더 많은 셈이다.

최근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 인근 세븐일레븐 남대문카페점에서 유 점주를 만났다. 짧은 머리에 붉은색 스웨터를 입고 인터뷰 장소에 등장한 그는 요즘 표현으로 '여장부 포스'를 풍겼다. 유 점주는 자동·반사적으로 편의점 안을 샅샅이 훑어보더니 흐트러진 샐러드 위치부터 바로잡았다. 
◇"스트레스에 몸무게가 42~43㎏밖에 안 나갔어요"

마침 그의 저서 '편의점하길 참 잘했다_부제: 평범한 아줌마의 17개 편의점 운영'이 출간된 직후였다. 책을 출간할 만큼 유 점주는 편의점 업계 유명 인사다. 그는 서울 남대문구·종로·동대문구·인천 남동구(인천시청 인근) 등에서 점포 7곳을 운영하고 있다. 한때 17곳까지 운영했다. 당시 연 매출은 100억을 넘어섰다.

편의점 운영 전엔 '평범한 주부'였다. 결혼 전엔 남들이 그토록 다니길 바라는 은행에서 일했다. 남부럽지 않은 삶이었다. 어찌하든 남편·자식 뒷바라지에 열중하던 주부가 편의점을 차리기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 유 점주는 저서에 솔직하게 털어놨다.

"딸의 수능이 가까워지자 나는 초조하고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남편이 가져다주는 돈만으로는 두 아이의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중략)…점포 오픈을 준비하는 두 달 동안 날마다 몸 낮추고 죄인처럼 지낸 덕에 필요한 금액만큼 차용증서를 쓰고 매월 원리금을 분할 상환하기로 약속하고 남편에게 (편의점 오픈에 필요한) 돈을 받아냈다."('편의점하길 참 잘했다', 18~31쪽)

유정례 점주가 쓴 '편의점하길 참 잘했다'(세븐이레븐 제공)© 뉴스1
유정례 점주가 쓴 '편의점하길 참 잘했다'(세븐이레븐 제공)© 뉴스1

유 점주의 첫 번째 점포는 지난 2007년 2월 건국대학교 스타시티 복합쇼핑몰 1층에 들어섰다. 상권이 좋다고 생각했으나 현실은 달랐다. 자신이 점포를 열면 주변 점포도 바로 주인을 찾아 활기를 띨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주변이 휑하고 황량'해 사실상 1년간 개점휴업 상태였다. 

유 점주는 인건비라도 줄이고자 직원을 최소한만 고용했다. 대학생 딸도 휴학계를 내고 유 점주를 도왔다. 당시 하루 15시간씩 일했다고 한다. 코피를 쏟고 바닥에 주저앉기도 했다. 스트레스에 살이 빠져 그때 몸무게는 42~43㎏에 불과했다. 참고로 '여장부 포스'를 풍기는 그의 현재 몸무게는 54㎏.

"건대 뒷골목에 가면 구제 파는 곳이 있어요. 1개당 500원 하는 구제 바지 5개를 사고 그거 입고 일했어요. 그전까지 저는 바지를 입은 적이 없어요. 집에서는 기본적으로 긴 원피스를 입고, 밖에 나가면 꼭 스커트 정장 차림을 했지요."

악착같이 버티었더니 볕 든 날이 왔다. 매장들이 쇼핑몰에 잇달아 입점하면서 유 점주의 편의점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매출도 뛰었고 보람도 느꼈다. 다만 이것만으로 그가 '편의점 운영 대가'로 극찬 받는 배경을 설명할 수 없다.

◇"고가 주스를 파는 저를 '미쳤다'고 했어요"

인터뷰 중간에 무릎을 친 것은 그의 역발상 때문이었다. 대표적으로 100% 오렌지 원액인 보타니 주스를 판 것이었다. 보나티 주스 가격은 한 병에 3000원. 당시 기준으로 '고가'라 과연 팔릴까 우려했으나 제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주변에서 보나티 주스를 파는 저를 '미쳤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저의 생각은 좀 달랐어요. 당시엔 남성이 여성을 이른바 '에스코트'해 극장에 왔어요. 남성들이 여자 앞에서 폼을 잡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비싼 주스에도 지갑을 과감히 열었어요."

유 점주의 '우산 680개 완판 기록'은 업계에서 여전히 회자된다. 그는 잠재적 수요를 겨냥해 매장에 우산을 진열해 놓은 일화를 소개했다. 매장이 좁아 구석구석에도 우산을 욱여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날 기우제하듯 기다리던 '비'가 내렸다. 심야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은 갑작스러운 폭우에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쇼핑몰 안에 입점한 편의점. 유 점주의 편의점이다. 그는 점포에 우산 680개를 준비한 상태였다.

유정례 점주가 자신이 운영하는 세븐일레븐 남대문카페점 계산대에서 상품을 들고 있다.2020.01.08(세븐일레븐 제공)© 뉴스1
유정례 점주가 자신이 운영하는 세븐일레븐 남대문카페점 계산대에서 상품을 들고 있다.2020.01.08(세븐일레븐 제공)© 뉴스1

"편의점 현관 입구에 아예 우산을 꺼내다 놓고 팔았어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렸죠. 싫어도 우산을 살 수밖에 없었죠. 밖에 비가 오는데 나갈 수도 없고, 우산 없이는 갈 데도 없고…… 기자님이라면 어쩌겠습니까?"

◇"절박하지 않은 지원자는 채용 안해요"

성실함과 역발상, 그리고 남다른 '고용 철학'은 유 점주의 성공 스토리를 설명하는 열쇠말이다. 그는 가히 '인사가 만사'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는 직원을 선발할 때 한 가지를 유심히 본다. '절박함'이다.

채용 공고를 보고 전화한 이에게 절박함이 있는지 살펴본다. '면접 보러 오겠느냐'고 물었는데 머뭇거리는 이들은 절대 고용하지 않는다. "지금 면접보러 가겠다"는 이들이 선발 대상이다.

"기존 메이트(점장·아르바이트생 등 의미)들도 면접 지원자를 보게 합니다. 메이트들이 맞교대하거나, 동시간 대에 일할 때 지원자를 오게 해요. 같이 일하는 사람의 의사가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그들이 '오케이'해야 최종적으로 지원자를 선발하지요."

유 점주가 그렇게 뽑은 아르바이트생들이 세븐일레븐 남대문카페점에서도 일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부부' 아르바이트였다. 45살 동갑내기 곽모·이모씨(여) 부부다. 두 사람의 거주 지역은 경기도 의정부시다. 이들이 세븐일레븐 남대문카페점까지 출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무려 1시간 30분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이유'를 묻자 곽씨는 흥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사장님(유 점주)을 보면 엄청 멋있고 카리스마가 넘쳐요. 저분 밑에서 열심히만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알고 보면 정도 많으시고요."

이 얘기를 들은 유 점주의 마음은 어떠할까. '편의점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지 않을까. 곽씨 부부와 나란히 선 유 점주는 수줍게 웃었다. 그리고 이내 세 사람은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었다.

유정례가 점주가 세븐일레븐 남대문카페에서 일하는 곽씨 부부와 나란히 서서 웃고 있다.. 2020.01.08(세븐일레븐 제공) © 뉴스1
유정례가 점주가 세븐일레븐 남대문카페에서 일하는 곽씨 부부와 나란히 서서 웃고 있다.. 2020.01.08(세븐일레븐 제공) © 뉴스1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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