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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보험산업]안철경 "저금리 공습 이제 시작…과거 버려야"

보험연구원장 인터뷰…저금리·저성장에 곪은 부위 드러나, 과감한 규제완화 필요
수익성 위해 보험료 '적정성'보다 '충분성' 중요…개인연금시장 키워야

(서울=뉴스1) 민정혜 기자 | 2019-12-29 06:40 송고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저금리
'뉴노멀' 저금리에 직격탄…역마진에 휘청
'반면교사' 日 보험사 파산 …생존전략은
금융재보험 도입 등 과감한 대책 '절실'
②IFRS17
새 회계기준에 저금리 직격탄 '이중고'
수익성 중심 새 회계기준 진짜 실력 드러난다
③車보험·실손보험
11개사 실손보험 포기…보험료 차등제 해법?
'팔수록 손해' 車보험 '디마케팅'까지 등장
④전문가 진단
안철경 "저금리 공습 이제 시작…과거 버려야"
안철경 보험연구원장이 26일 서울 여의도 보험연구원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26/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안철경 보험연구원장이 26일 서울 여의도 보험연구원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26/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저출산과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는 와중에 저금리가 공습해 보험산업이 경험해 본적 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보험산업의 성장성과 수익성이 동시에 떨어지며 과거 간과했던 곪은 부위가 부각되고 있다. 문제는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보험사, 금융당국, 소비자 모두 저금리에 적응하기 위한 새로운 마인드셋(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위기에 빠진 보험산업의 현주소와 해결방안을 들어보기 위해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보험연구원에서 안철경 보험연구원장을 만났다. 안 원장은 지난 30년간 보험연구에 매진한 보험 전문가다. 2008년 보험연구원 설립 이후 첫 내부 출신 원장이기도 하다.

◇"'반전' 없으면 위기 표면화…당국, 수익성 확보 고민 필요"

안 원장은 "보험업계에 '반전'의 계기가 없으면 일부 회사를 중심으로 재무건전성 위기가 표면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위기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일본은 1991년 자산 버블 붕괴 후 5년간 저금리에 따른 이차역마진으로 8개 보험사가 연이어 문을 닫았다. 우리나라도 저금리 등 달라진 환경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한국 보험산업은 1990년대 고성장 덕에 세계 7위로 뛰어올랐지만 시장 포화와 저출산·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2016년부터 저성장기에 진입했다. 생명보험사의 수입보험료는 올해 -2.5%, 내년 -2.2%로 4년 연속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손해보험 수입보험료 증가율도 2019년 3.8%, 2020년 2.6%로 둔화할 것으로 추정된다.
기업가치를 반영하는 보험사 주가는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보험료 평균 적립이율(상반기 기준 4.25%)은 운용자산이익률(3.70%)보다 높아 이차역마진이 계속되고 있다. 삼성생명 이차역마진 규모는 1조8000억원, 한화생명은 1조원, 교보생명은 5000억원 등으로 추정된다.

이런 상황의 반전을 만들어야하는 주체는 당연히 보험사다. 규제 권한을 갖고 있는금융당국의 친시장적 역할도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안 원장은 "보험사는 새로운 환경을 반영한 상품개발, 비용 구조, 경영 전략 등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금리 시대 사용했던 점유율 중심의 성장 모델은 부실을 쌓아 결국 위기의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험연구원은 보험사의 질적 성장을 돕기 위해 내년에 유럽, 일본 등 저금리를 이미 경험한 보험사의 생존전략을 집중 연구할 계획이다.

같은 맥락에서 안 원장은 보험사 CEO(최고경영자)의 가치경영이 실행돼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단기 매출과 손익, 주가 등에 따라 CEO의 보수와 임기가 좌우되는 것은 보험사에는 비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장기 비즈니스인 보험사의 경영전략이 단기 성과에 초점이 맞춰질 때 빚어지는 모순이 결국 보험사의 건전성을 해친다. 안 원장은 "CEO 성과평가 방식이 개선되고, CEO 역시 장기적 수익성에 방점을 두고 경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철경 보험연구원장이 26일 서울 여의도 보험연구원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26/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안철경 보험연구원장이 26일 서울 여의도 보험연구원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26/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안 원장은 금융당국의 규제정책도 '혁신' 대상이라고 지목했다. 오는 2022년 새로운 보험 회계기준(IFRS17)과 지급여력제도(킥스·K-ICS)가 도입되면 보험사의 재무건전성 관리를 위한 수익성 확보가 더욱 중요해지는데, 이에 대한 정책적 고민이 부재하다는 지적이다. 보험사의 수익성이 떨어지면 재무건전성 하락은 불 보듯 뻔하다.

안 원장은 "IFRS17과 킥스가 도입되면 보다 엄격한 위험관리와 자본 확충 요구로 재정건전성 관리가 강화될 것"이라며 "재정건전성을 끌어올리려면 금융당국이 실손의료보험 등의 가격자율화, 상품자율화 등으로 수익 창출 통로를 터 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은 정책당국이 20여 년간 대규모 위험률차손익(사차익), 사업비차손익(비차익)을 확보해 줘 이차역마진을 극복했다"며 "지금은 보험료를 기준치 이상 받지 말라는 보험료 적정성이 아니라 적어도 기준치는 받아야 한다는 충분성을 고려할 때"라고 강조했다.  

◇"외국계 보험사 철수 이어질 수도…개인연금시장 키워야"
 
안 원장은 우리나라 보험산업이 명확한 수익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푸르덴셜생명에 이어 다른 외국계 보험사 철수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쏟아지는 보험사 매물 탓에 보험시장의 불안감은 이미 팽배한 상황이다. 그는 "푸르덴셜생명 미국 본사는 성장성이 높은 이머징 시장에 집중하기 위해 한국 시장 철수를 결정했다"며 "지속적인 규제완화 등이 이뤄지지 않으면 보험시장 기반이 약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IFRS17 도입으로 노후준비를 위한 마지막 보루인 개인연금시장이 쪼그라드는 것을 우려했다. 좋은 의도로 만든 규제가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전형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이다. IFRS17이 도입되면 보험사는 저축성인 연금보험을 팔수록 자본금을 더 쌓아야 한다. 보험사는 연금 지급 기간이 길어지는 장수 리스크도 진다. 안 원장은 "개인연금시장은 일반 저축성 상품과 분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험산업을 좀먹는 소비자, 보험설계사, 보험사 등의 도덕적 해이는 모두가 나서 도려내야 하는 과제다. 안 원장은 "과거 성장기 때는 도덕적 해이 등 곪은 부분을 안고 가도 큰 문제가 없었는데 지금은 수익성을 갉아먹는 게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는 "보험은 가입자가 손실을 분담하는 이타성에 기초한다"며 "의료쇼핑, 보험사기 등 도덕적 해이는 보험산업 존립 자체를 위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 원장이 꼽은 2020년 보험산업의 키워드는 '건강한 보험 생태계 구축'이다. 보험생태계를 교란시키는 곪은 부분의 치료가 내년 보험산업의 핵심 과제라는 판단이다. 안 원장은 "우리 사회에서 보험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보험생태계가 신뢰를 쌓아 더 건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mj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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