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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전 가격 그대로" 1100㎞ 밖 손님도 찾는 시골가게

[기업, 사회와 함께④] '오하기 맛집' 명성 일본 사이치 슈퍼
"농가가 살아야" 최상의 재료 지역 조달…하루 1200명 방문·연매출 75억원

(센다이=뉴스1) 김동규 기자 | 2019-12-03 07:00 송고 | 2019-12-03 09:57 최종수정
편집자주 자본주의 사회를 움직이는 건 소비이고, 이를 제공하는 건 기업이다. 경제적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기업의 활동으로 우리의 삶은 부유해졌다. 그러나 기업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동안 발생한 사회문제는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환경은 파괴되고 자원은 고갈됐다. 빈곤의 격차는 더욱 심해졌다. 이제는 기업이 경제적 가치만 창출하던 시대가 끝났다. 이에 뉴스1은 기업이 영속하기 위해 시대적 요구에 어떻게 부응해야 할지 국내외 사례를 통해 짚어보고자 한다.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시 아키호초에 있는 사이치(さいち) 슈퍼마켓. © 뉴스1 김동규 기자

"가격을 올리지 않는 건 신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역 주민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지역 주민들의 수입이 올라가지 않으면 가격을 올리지 않습니다. 오하기(おはぎ·찹쌀경단)는 40년 동안 가격을 올리지 않았어요. 내년 1월에 올리는데 그게 처음입니다. 전체 지역 주민의 수입이 20% 정도 올랐고 그동안 원자재 가격이 엄청나게 올라 (다른 반찬은 제외하고) 오하기만 올릴 예정입니다."

사토 게이지(佐藤啓二) 대표가 운영하는 사이치(さいち) 슈퍼마켓은 일본 동북부 센다이(仙台)시에서 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아키호초(あきほ町)에 있다. 인구가 5000여명에 불과한 작은 온천마을로, 사이치 슈퍼도 75평 규모의 시골 가게다. 하지만 지난 1일 설립 40주년을 맞았을 정도로 긴 기간 동안 지역민들의 생활을 책임졌다.

◇원재료 대부분 지역에서 조달…농가에도 가격 깎지 않아

기자가 방문한 지난 10월22일 빗속에서도 슈퍼의 오소자이(お惣菜·반찬) 코너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진열된 제품은 쉴 새 없이 팔려나갔다. 하지만 사토 대표가 부모님에게 처음 가게를 물려받은 40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매출은 하루마다 줄기만 했고 자금난은 해소되지 않았다. 주변에는 대형 슈퍼마켓이 생겨나 영업이 더욱 악화됐다. 절망에 빠진 사토 대표는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였다.

사토 게이지(佐藤啓二) 사이치 슈퍼마켓 대표. © 뉴스1 김동규 기자

반전은 집에서 먹던 주먹밥이라도 만들어 팔아보자고 한 게 의외의 인기를 끌면서 찾아왔다. 그래서 반찬 판매를 시작했는데, 방부제나 첨가물을 넣지 않고도 맛있는 반찬을 만들자 전국적으로 유명한 가게가 됐다. 다른 가게는 원가율이 45% 정도지만, 사이치 슈퍼는 60%일 정도로 좋은 재료를 쓴다. 그래야 좋은 맛을 낸다는 생각에서다.

사이치 슈퍼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원재료 대부분을 해당 지역에서 구매하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원료를 조달해 물류비용을 줄이고 대량 구매로 원가를 낮췄다. 실제로 사이치의 대표 상품인 오하기에 사용되는 찹쌀은 모두 센다이시가 위치한 미야기(宮城)현에서 충당한다. 원래는 지역 농민들이 생산을 꺼리는 찹쌀이었다.

사토 대표는 "오하기에 사용되는 찹쌀은 밥으로는 안 먹고, 이 지역(미야기현)에서 나는 찹쌀 품종은 바람 등에 잘 쓰러져서 농가에선 재배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그래서 지역 농가에 '이 종을 버리지 말고 전량 구입할 테니 안정적으로 공급해 달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사이치 슈퍼마켓 내부에서 종업원들이 반찬을 만들고 있다. © 뉴스1 김동규 기자

이렇게 들여오는 원재료는 다른 슈퍼마켓처럼 값을 후려치지 않는다. 오히려 농가나 도매상에서 원재료를 들여올 때는 절대로 가격을 깎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그러면 사이치에는 최상의 재료를 납품해주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가격을 깎아준다는 설명이다. 사토 대표는 "안정적인 공급을 위한 방법을 찾다 보니 사회적 가치까지 추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지역과 상생' 전략…폐업 위기서 연 매출액 75억원 성장

이렇게 지역 사회와 공존공영(共存共榮)하는 경영 방식은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사회적 가치 창출로 이어졌다. 농사가 잘되든 되지 않든 슈퍼는 일정한 가격으로 손님에게 반찬을 판매할 수 있고, 농가는 장기간 안정된 소득을 얻을 수 있다. 사이치의 매출액이 높아질수록 지역 농가와 도매상도 이익을 얻는 셈이다.

또 다른 지역의 주체인 '소비자'와도 상생하고 있다. 사이치 슈퍼에선 매일 오후 5시30분에 반찬을 반값 세일한다. 손님들이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에 맞춰 할인하는 것이다. 손님이 몰리는 시간에는 정상가로 팔고, 폐점 시간이 될 때 할인하는 일반적인 마트와 반대다. 사토 대표는 "남는 반찬을 정리하는 목적도 있지만, 고객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자 고객에 대한 답례"라고 말했다.

사이치 슈퍼마켓에서 손님들이 매대에 놓인 상품을 고르고 있다. © 뉴스1 김동규 기자

그 결과 40년 전 폐업 위기였던 사이치는 현재 연 매출 7억엔(약 75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하루에 방문하는 고객은 1200명으로, 이들이 사가는 반찬은 500여종에 이른다. 대표 상품인 오하기는 하루에 2만개(주말 기준) 이상 팔리는 등 경제적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반전을 맞은 시골 슈퍼의 이야기는 일본 전역으로 퍼졌다. 일본의 유명 편의점 체인인 세븐일레븐의 창업자를 비롯해 800여개 회사가 방문해 사이치의 성공 비법을 전수받기도 했다. 방문하는 고객 중 98%는 지역 밖에서 오는 손님으로 집계된다. 1100㎞ 떨어진 고치(高知)현에서 왔다는 손님 간노는 "입소문을 듣고 오하기를 맛보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며 "책에서만 보던 오하기를 직접 살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를 진행한 사토 대표의 방에는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인터뷰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지역 경제와의 상생을 회사 성장의 동력으로 만든 비결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문장이었다. '어쨌든 좋은 것을 만들고, 이익은 그 뒤다. 그것을 반드시 실행하겠다.'

사토 대표의 사무실에 '어쨌든 좋은 것을 만들고, 이익은 그 뒤다. 그것을 반드시 실행하겠다'고 적힌 종이가 붙어있다. © 뉴스1 김동규 기자



themo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