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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공기로 빵 만든' 그들…이젠 '벌레 먹는' 플라스틱

[기업, 사회와 함께①] '환경 최우선' 獨 화학기업 바스프
합성비료 대신 자연친화 생분해 제품 집중…연 8%씩 성장

(루트비히스하펜=뉴스1) 문창석 기자 | 2019-11-28 07:00 송고 | 2019-11-28 09:24 최종수정
편집자주 자본주의 사회를 움직이는 건 소비이고, 이를 제공하는 건 기업이다. 경제적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기업의 활동으로 우리의 삶은 부유해졌다. 그러나 기업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동안 발생한 사회문제는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환경은 파괴되고 자원은 고갈됐다. 빈곤의 격차는 더욱 심해졌다. 이제는 기업이 경제적 가치만 창출하던 시대가 끝났다. 이에 뉴스1은 기업이 영속하기 위해 시대적 요구에 어떻게 부응해야 할지 국내외 사례를 통해 짚어보고자 한다.
독일 라인란트팔트주(州) 루트비히스하펜의 한 공원에 1920년대 암모니아를 생산했던 고압 강철 반응기가 전시돼있다. © 뉴스1
독일 라인란트팔트주(州) 루트비히스하펜의 한 공원에 1920년대 암모니아를 생산했던 고압 강철 반응기가 전시돼있다. © 뉴스1

지난달 8일 오전 독일 남서부 라인란트팔트주(州) 루트비히스하펜의 한 공원. 잘 정리된 잔디 한복판에는 세월을 견딘 15미터의 철제 구조물이 높게 솟아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지만 한 무리의 사람들이 견학하고 가는 등 간간이 손님을 맞았다.

"왜 공원 한복판에 굴뚝이 있죠?" 기자의 질문에 동행한 독일 화학기업 바스프(BASF)의 직원이 설명했다. "시작점이거든요." 의아해하는 기자를 돌아보며 그는 미소 짓는 얼굴로 말했다. "화학 비료의 시작점이요. 세계 인구(증가)의 시작점이기도 하죠."
'바스프 암모니아 난로 기념비(BASF Denkmal Ammoniak Ofen)'로 불리는 이 구조물은 100년 전인 1920년 '하버-보슈' 공정으로 암모니아를 생산하는데 사용했던 고압 강철 반응기다. 1913년 바스프 소속 연구원이었던 카를 보슈는 화학자 프리츠 하버의 기초 연구를 바탕으로, 공기 중에 존재하는 질소와 수소를 고압·고온 상태에서 결합해 인공 암모니아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공정을 개발했다.

바스프가 개발한 이 공정은 인류 역사를 바꿔놓은 위대한 발명 중 하나로 꼽힌다. 인공 암모니아로 합성비료를 대량 생산하면서 식량 생산을 비약적으로 늘릴 수 있게 되자 폭발적인 인구 증가로 이어졌다.

'공기로 빵을 만들었다'는 극찬을 받은 하버와 보슈는 각각 1918년·1931년 노벨화학상을 받았고, 이 공정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75억명인 인류가 자연 퇴비로만 식량을 생산했을 때 40억명만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고려하면, 인류의 절반인 35억명은 이 공정 덕분에 살아있는 셈이다.
카를 보슈(왼쪽)와 프리츠 하버. © 뉴스1
카를 보슈(왼쪽)와 프리츠 하버. © 뉴스1

하지만 화학의 발전에는 밝은 면만 있는 건 아니다. 토양에 흡수되지 못한 합성비료는 호수·강·바다로 흘러가 수중 생태계를 파괴하고, 공기로 방출되면 산성비의 원인이 됐다. 비료의 사용이 많아질수록 인류의 식량은 늘어나겠지만 그만큼 삶도 위협받게 된 것이다. 지역에서 염료를 만들던 화학기업 바스프는 합성비료를 생산하며 인류의 삶을 바꿨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바스프는 세계 인구 100억명을 앞둔 지금 시대에선, 과거와 달리 한정된 자원과 환경 보호를 조화시켜야 한다고 본다. 이게 21세기의 화학기업이 생존하는 길이다. 현재 바스프는 환경보호를 주도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화학제품이 꼽힌다는 점을 떠올리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오히려 화학으로 생긴 환경문제는 화학이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이들은 모든 사업 목적에 반영하는 핵심 목표를 다음과 같이 정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화학을 창조한다(We create chemistry for a sustainable future)."

온실가스 배출량 예상 그래프(한국바스프 제공). © 뉴스1
온실가스 배출량 예상 그래프(한국바스프 제공). © 뉴스1

◇ 화학으로 생긴 문제, 화학이 '결자해지'…지속가능 위해

이런 이념에 부합하는 대표적인 정책이 '이산화탄소 중립 성장'이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사업 성장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이미 1990년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였는데, 같은 기간 생산량은 두 배로 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야심찬 계획이다.

여러 공장을 파이프로 연결한 '페어분트(Verbund)' 시스템도 같은 맥락이다. 한 공장에서 나온 폐열·원료 찌꺼기 등 부산물을 다른 공장에서 에너지와 연료로 재활용하는 바스프 특유의 생산 네트워크다. 이로 인한 에너지 효율은 90%가량으로 측정된다. 투입한 자원·에너지 중 10%만 버린다는 이야기다.

실제 제품에도 반영됐다. 대표적인 게 땅에 버려도 미생물과 결합해 썩는 생분해성 플라스틱(Compostable plastic)이다. 농업용 비닐로 쓸 경우 수거하지 않아도 필름이 땅속에서 분해돼 퇴비가 되기에 토양을 오염시키지 않는다. 물속에서도 분해돼 해양 미생물의 양분이 될 수 있다.

지난달 8일 바스프 바이오폴리머 연구소에 해양 환경 실험으로 분해된 플라스틱 샘플들이 전시돼있다. © 뉴스1
지난달 8일 바스프 바이오폴리머 연구소에 해양 환경 실험으로 분해된 플라스틱 샘플들이 전시돼있다. © 뉴스1

이날 기자가 방문한 바이오폴리머 연구소에선 실제 토양·해양 환경에서 분해된 플라스틱 샘플들이 놓여 있었다. 노출 기간이 지날수록 작아지고 색이 변하면서 분해되는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바스프 연구원인 글라우코 바타글리어린 박사는 "이 물질이 우리가 미래에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할 것이라고 강하게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런 바이오 플라스틱 시장은 환경보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정교한 제품들이 계속 등장하면서 성장하는 추세다. 유럽 바이오플라스틱 협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 바이오 플라스틱 생산 능력은 지난해 211만톤에서 2023년 262만톤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바스프는 이렇게 지속가능 성장에 기여하는 '액셀러레이터 제품군'의 매출을 2025년까지 220억유로(약 28조6500억원)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바스프의 지속가능성 전략 책임자인 안드레아스 키허러 박사는 "지속가능성은 바스프의 핵심적인 성장 영역"이라며 "우리에게 성공적인 사업은 이것뿐"이라고 강조했다.

토양에서 분해된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흙과 함께 쏟는 모습(바스프 제공). © 뉴스1
토양에서 분해된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흙과 함께 쏟는 모습(바스프 제공). © 뉴스1

◇"지속가능성이 성장 핵심"…사회적 책임 → 기업 성공

이런 전략은 경제적 성공으로 이어졌다. 바스프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영업이익은 연평균 8%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연간 3% 상승한 바스프의 고정비용과 비교하면 높은 추세로, 연 3.7%로 추산되는 전 세계 화학 생산의 증가율을 앞질렀다.

모든 밸류 체인에서 환경보호와 사회적 책임을 기업의 최우선 목표로 하자, 그 자체가 성장동력이 돼 경제적 가치 창출로 이어진 것이다. 키허러 박사는 "만약 우리가 단기적인 이익을 위한 제품에만 투자했다면, 지속해서 성장할 수 있는 기업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바스프의 앞에 놓인 도전은 '켐사이클링(Chemical+Recycling)'이다. 화석연료가 아니라, 폐플라스틱을 진공 상태에서 가열해 오일을 추출하고, 이를 다른 제품 생산 공정에서 석유 대신 원료로 사용해 새 플라스틱을 만드는 공정이다.

아직은 시범 단계지만 조만간 상용화되면 버리는 플라스틱에서 오일을 무한히 얻을 수 있는 만큼, 인류의 삶을 또 한 번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바스프는 이런 미래혁신 관련 연구·개발에 지난해 20억유로(2조6000억원)라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다.

지난달 8일 독일 루트비히스하펜에 위치한 바스프 본사에서 지속가능성 전략 책임자인 안드레아스 키허러 박사가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뉴스1
지난달 8일 독일 루트비히스하펜에 위치한 바스프 본사에서 지속가능성 전략 책임자인 안드레아스 키허러 박사가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뉴스1

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고 해서 경제적 가치가 위축되지 않는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소비자들이 친환경적이며 지속가능한 제품을 점점 더 요구하는 만큼, 미래의 기업은 이렇게 환경·사회에 대한 가치를 창출해야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지적이다.

키허러 박사는 "기업은 오직 고객과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가치를 더할 때 성장할 수 있다"며 "기업의 경제적 성공과 사회적 책임은 상호 배타적인 게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장기적으로 성공하려면 환경보호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themo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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