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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줄줄이 죽어나가도 공무원들은 팔짱" 분노의 장점마을

"물고기 떼죽음 당했을 때도 근처 논에 묻고는 이상없다 발표"
"22명 아니라 33명, 옆마을까지 60명 암 걸려…대통령 나서라"

(익산=뉴스1) 김춘상 기자 | 2019-11-16 08:00 송고
15일 전북 익산시 함라면 장점마을 주민 신옥희씨가 옥상에 올라 감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금강농산 건물(검은색 원)을 가리키고 있다. 2019.11.15 © News1 김춘상 기자
15일 전북 익산시 함라면 장점마을 주민 신옥희씨가 옥상에 올라 감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금강농산 건물(검은색 원)을 가리키고 있다. 2019.11.15 © News1 김춘상 기자

"방죽에서 물고기가 떼로 죽었을 때 비료공장 가동을 말렸으면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이 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그때 제대로만 했더라면…."

15일 전북 익산시 함라면 장점마을에서 만난 신옥희씨(74·여)는 '장점마을 환경오염 및 주민건강 실태조사'라는 환경부 자료를 보며 옛일을 이야기하다 말을 잊지 못했다.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했을 때 그는 장점마을 이장이었다. 그래서 당시 일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제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이장을 했어요. 그런데 2009년인가 2010년인가 비료공장 바로 아래 방죽에서 물고기들이 떼로 죽은 거예요. 물은 새카맣게 변해 있었죠. 신고를 하니 공무원들이 오긴 왔는데, 죽은 물고기들을 근처 논에 묻고 가더라고요. 그러더니 나중에 '이상이 없다'는 발표가 나왔어요."

돌이켜보면 당시 비료공장에 제대로 된 조치를 취했더라면 집단 암 발병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그는 가슴을 쳤다.

환경부는 전날 실태조사 최종발표회에서 "장점마을 주민들의 암 발생과 금강농산 사이에 역학적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금강농산이 퇴비로 사용돼야 할 연초박(담뱃잎 찌꺼기)을 유기질비료 원료(건조 공정)로 불법으로 사용한 데다 공해 방지시설마저 제대로 갖추지 않아 연초박 내 발암물질이 대기 중으로 배출되면서 장점마을 주민들에게 나쁜 영향을 줬다는 것이었다.

장점마을에서 약 500m 거리인 곳에서 비료공장이 가동을 시작한 것은 2001년의 일이었다. 이 공장은 2009년부터 2015년까지 KT&G 신탄진 공장에서 2242톤의 연초박을 가져와 비료 원료로 썼다. 그 이전에 어느 정도 연초박을 썼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았다.

주민들은 어느날 갑자기 마을 옆에 공장이 들어선 것 자체에 대해 마뜩찮게 여기던 차에 이상한 냄새까지 나자 민원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옥상에서 보면 공장이 바로 보여요. 공장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았고, 송장 타는 것 같은 냄새가 나서 모두들 가만히 있을 수 없었죠."

신씨는 "그런데도 공무원들은 '이상이 없다'고만 해 이 지경에 이르게 됐다"면서 "물고기들이 죽었을 때만이라도 제대로 대처를 했다면 최악은 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15일 전북 익산시 함라면 장점마을 경로당 앞에서 최재철 장점마을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이 집단 암 발병 사태에 대해 말을 하고 있다. 2019.11.15 /뉴스1 © News1 김춘상 기자
15일 전북 익산시 함라면 장점마을 경로당 앞에서 최재철 장점마을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이 집단 암 발병 사태에 대해 말을 하고 있다. 2019.11.15 /뉴스1 © News1 김춘상 기자

신씨는 5년 전인 2014년 췌장암에 걸린 남편을 잃고 자신도 '갑상선이 이상하다'는 병원 진단 이후 하루하루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옆집에서는 부인이 죽자 1년 뒤 남편이 죽었고, 또 다른 집에서는 하루에 내외가 다 죽었어요.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공무원들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은 극에 달해 있었다.

전날 환경부 최종발표회 자리에서 주민들은 "전북도와 익산시는 비료생산업을 허가한 기관으로서 적법하게 비료를 생산하지 않고 있는지 관리감독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역할을 다하지 않았다"면서 전북도와 익산시에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이날 마을 경로당 앞에서 만난 최재철 장점마을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59)은 "환경부는 22명이 암에 걸렸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33명이 암에 걸렸고, 바로 옆 마을까지 포함하면 60명까지 늘어난다"면서 "여기가 무슨 체르노빌이냐"고 했다.

그러면서 "공무원들이 손을 놓고 있다보니 이렇게 된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은 연초박을 판 KT&G도 비난했다. 신씨는 "결국 돈을 더 벌려다 이런 일이 생긴 것"이라면서 "연초박을 팔았으면 적법하게 처리되는지 현장을 확인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폐허로 변한 금강농산 공장 /© News1 김춘상 기자
폐허로 변한 금강농산 공장 /© News1 김춘상 기자

환경부 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2001년 비료공장 설립 이후 2017년 12월31일까지 장점마을 주민 99명 중 22명에게 암이 발생했고, 이 가운데 14명이 사망했다. 비료공장 사장도 암으로 사망했고, 공장 근로자 5명도 암에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비료공장 하나가 공장 근로자도 죽이고 인근 마을 주민도 죽인 셈이다.

환경부는 "이번 조사 결과는 환경오염 피해로 인한 비특이성 질환(특정 요인이 아닌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 가능한 질병)의 역학적 관련성을 정부가 확인한 첫 번째 사례로서 의미가 있다"면서 "익산시와 협의해 주민건강 관찰 및 환경개선 등 사후관리 계획을 수립하고 차질 없이 추진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주민들을 위한 피해 구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했다.

익산시는 공식 사과를 했다. 중국 출장 중인 정헌율 시장은 자료를 통해 "환경부의 최종 발표에 따라 주민들에게 공식 사과를 전한다"고 밝히고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온 주민들의 피해회복을 위한 지원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만족스러운 피새 보상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공장은 문을 닫았고, 공장 사장은 사망했다.

최재철 위원장은 "환경부의 피해 구제는 큰 도움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변호사와 상의해 소송 등 여러 방법을 찾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북 익산시 함라면 장점마을에서 금강농산으로 가는 길에 붙어 있는 현수막. /© News1 김춘상 기자
전북 익산시 함라면 장점마을에서 금강농산으로 가는 길에 붙어 있는 현수막. /© News1 김춘상 기자

신씨는 "대통령이라도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환경부가 '이번 조사 결과는 환경오염 피해로 인한 비특이성 질환의 역학적 관련성을 정부가 확인한 첫 번째 사례로서 의미가 있다'고 한 만큼 대통령이 나설 명분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이날 비료공장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공장 부지는 금이 간 시멘트 사이로 풀이 나 있었고, 곳곳에 쓰레기 더미들이 있었다. 익산시는 최근 이 공장을 9억3000만원에 사들였다. 주민들과 협의해 공장 활용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한다.

신씨는 "늦었지만 환경부로부터 피해 사실을 인정받아 그나마 다행"이라면서 "이제라도 공무원들이 제대로 일을 해서 우리 주민들이 숨을 쉴 수 있도록, 그리고 제2의 장점마을이 나오지 않도록 열심히 일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mellotr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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