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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학살' 증거 넘치는데…전두환 "광주와 상관없다" 발뺌

대법원 내란목적살인죄로 인정…회고록 표현 삭제 결정도
정보요원 "5월21일 전두환 광주 와서 사살 명령" 증언도

(광주=뉴스1) 전원 기자 | 2019-11-10 08:15 송고 | 2019-11-11 08:32 최종수정
전두환 전 대통령이 7일 오전 강원도 홍천의 한 골프장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묻는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 질문에 "광주하고 내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나는 광주 학살에 대해서 모른다"며 답변하고 있다.(임 부대표 제공) 2019.11.7 /뉴스1

1980년 5월 광주를 피로 물들이게 한 전두환씨(88)가 골프장에서 "광주와 상관이 없다. 나는 학살에 대해 모른다"는 발언을 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전씨가 계엄군을 동원해 총칼로 광주를 진압한 5·18 학살의 주범이라는 사실은 이미 대법원 판결을 통해 확인됐고, 당시 광주에 직접 내려왔다는 증언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씨는 지난 7일 강원도 홍천 한 골프장에서 '광주학살에 대한 책임'을 묻는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의 질문에 "광주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나는 학살에 대해 모른다" "나는 광주시민 학살하고 관계 없다" "발포명령을 내릴 위치에 있지도 않은데 군에서 명령권 없는 사람이 명령을 하느냐"고 발뺌했다.

법조계나 5월 단체 등에서는 지난 1997년 대법원 확정 판결 등 숱한 증거에도 전씨가 이를 부인하며 '역사의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1997년 4월17일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보면 전씨의 주장은 거짓임이 드러난다.

당시 전씨는 내란수괴·내란·내란목적살인 등 13가지의 죄목에 대해 유죄를 확정받았다.내란목적살인죄는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사람을 살해해 성립하는 범죄다.

대법원은 1980년 5월27일 광주재진입작전(상무충정작전)의 살상 행위를 유죄의 근거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전씨 등 5명이 5월27일 0시1분 이후에 재진입을 실시하기로 최종 결정해 부대원들이 총격을 가해 18명을 사망하게 한 살상행위를 저질렀다고 봤다.

대법원은 "전남도청 등을 장악하려면 무장시위대를 제압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교전이 불가피해 사상자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작전을 강행하도록 명령했다"며 "이와 같은 살인 행위 지시 내지 용인하는 의사가 있었음이 분명하고, 그 실시 명령에는 그 작전의 범위 내에서는 사람을 살해해도 좋다는 '발포 명령'이 들어있었음이 분명하다"고 판시했다.

다만 1980년 5월21일 전남도청 앞에서 발생한 집단발포로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누가 지시를 내렸는지 등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는 상황이다.

하지만 전씨는 자신의 회고록에 '당시 보안사령관에 불과했기 때문에 계엄군의 시위진압활동에는 관여한 사실이 없어 5·18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5·18은 다수의 북한군 특수군이 개입해 계엄군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이로 인해 계엄군은 자위권 발동 차원에서 총기를 사용한 것일 뿐이라는 주장과 함께 무차별적인 총기발포나 헬기사격은 없었다고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관련 피고인으로 지난 3월11일 광주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전씨는 2017년 4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2019.3.11/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5월 단체 등은 2017년 6월28일 전씨의 회고록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광주지법 민사14부는 전씨에게 5월 단체 등에게 총 7000만원을 배상하라면서 전씨의 회고록에 대해 5월 단체 등이 요구한 표현 중 69개 표현을 삭제하지 않고는 출판과 배포 등을 금지한다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전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주장한 '북한군이 개입한 반란이자 폭동이다', '헬기사격이 없었다', '광주시민을 향해 총을 겨누지 않았다', '전두환이 5·18사태의 발단부터 종결까지의 과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등 23개 쟁점에 대한 객관적이고 타당한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5월21일 집단발포에 전씨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증언도 나왔다.

전 미군 501여단 방첩 정보요원인 김용장씨는 '1980년 5월21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헬기로 광주를 방문했고 서울로 돌아간 이후 광주도청 앞에서 집단 발포, 사살 행위가 이뤄졌다'고 증언했다.

허장완 전 505보안부대 수사관도 "1980년 5월21일 전씨가 광주에 다녀갔다. 사전에 '사령관이 오실 것 같다'는 말이 있었다"며 "그 말은 일선 수사관에게 '하사금'이 내려진다는 것으로 상당히 좋아하고 기대하고 있었다. 전씨가 내려온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14일 오후 광주 서구 치평동 5·18기념문화센터 대동홀에서 열린 '5·18 증언회'에서 허장환 전 505보안대 요원이 발언하고 있다. 이번 증언회에서는 김용장 전 미군 501정보단 요원과 허 전 요원이 발언을 통해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사살명령을 내렸다고 증언했다. 2019.5.14/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이들은 그동안 '전두환의 발포명령'이라고 칭했던 것을 바로 잡으며 분명한 '사살명령'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전씨를 헬기가 탑승하는 곳에 데려다줬다는 운전병의 증언과 헬기에 총탄을 실었고, 헬기가 돌아왔을 때 실탄이 줄어있었다는 군 관계자의 증언까지 이어지면서 전씨의 5월21일 발포명령에 대한 신빙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전씨는 현재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광주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재판에서는 5월21일에 대한 헬기사격과 집단발포명령자 규명 등이 이뤄질 것으로 5월 관계자 등은 기대하고 있다.

원고 측 소송을 맡고 있는 김정호 변호사는 "5월27일 내란목적살인으로 광주 학살에 가담한 것이 대법원 확정 판결로 끝난 상황이다"며 "전씨는 이를 부인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더 진상규명 하고자 하는 것은 5월21일 도청 앞 집단발포와 발포명령자 등이다"며 "지금와서 광주와 관련이 없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고 강조했다.

또 "전두환 회고록에서도 자신이 관여하지 않았다고 적었지만 법원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jun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