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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판 없앴더니 지방부장판사 부족"…근무기간 늘리자 판사들 '술렁'

행정처, 2년→3년 확대·'지방근무 유예 불수용' 공지
향판제 폐지·신임법관 감소 원인…"거시대책 마련해야"

(서울=뉴스1) 이장호 기자 | 2019-10-24 10:54 송고 | 2019-10-24 13:06 최종수정
대법원 전경.© 뉴스1
대법원 전경.© 뉴스1

법원행정처가 지방부장판사들의 지방 근무 기간을 확대하고, 지방 근무가 선택이 아닌 필수로 강제하는 방안을 공지하면서 법원 내부가 술렁이고 있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조재연 법원행정처 처장은 지난 18일 법원내부전산망 '코트넷'에 '지방권 근무에 관한 안내 말씀'이라는 제목의 공지를 올렸다.

조 처장은 "근래 지방권 근무법관의 부족 현상이 심화되어 왔다"며 "2020년 정기인사에서는 부족 상태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돼 종래의 인사패턴을 기초로 한 미세조정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20년 법관정기인사에서 현실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방안들은 어느 것에 의하더라도 일부 법관들에 대하여 종래의 인사패턴과 달리 수도권 근무희망을 충족시킬 수가 없다"고 했다.

법원행정처는 2020년 정기인사에서 지방권 근무에 영향을 미치는 지방법원 부장판사의 보임 불희망은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기존에는 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처음 보임되더라도 이를 희망하지 않으면 서울에 단독판사로 남을 수가 있었다.

또 기존 2년이었던 초임 부장판사들의 지방 근무 기간을 3년으로 늘리기로 했다. 통상적으로 초임 부장판사들은 수도권 외 지방의 법원에 2년 동안 근무한 뒤 이후 2년은 수도권, 이후 2년은 서울 동·남·북·서 지방법원에서 근무한 뒤 서울중앙지법에서 근무했다.

20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가 막을 올린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법원행정처)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이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2019.10.2/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20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가 막을 올린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법원행정처)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이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2019.10.2/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판사들 내부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생활권이 대부분 서울 내지 수도권으로 이미 형성된 판사들로서는 지방 근무 기간이 늘어나는 것이 달갑지만은 않다.

한 부장판사는 "예상은 했지만 현실로 다가오니 다들 혼란스러워 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또 다른 판사는 "초임 부장으로 나갈 때 가족들과 함께 지방에 내려가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은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지방 생활을 하곤 한다"며 "지방근무 기간이 늘어난다는 건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지방의 부장판사 숫자가 줄어든 것은 2014년 '황제노역' 판결로 논란이 되면서 대법원이 '지역법관(일명 향판)제'를 폐지하기로 한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2004년 도입된 '지역법관제'는 판사가 희망하면 특정 지방에서 10년 동안 근무할 수 있었다. 당초 지역법관제는 잦은 전보인사로 재판이 지연되는 것을 최소화하고 판사의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려는 목적으로 대전·대구·부산·광주고법 관할 4개 지역에서 시행됐다.

그러나 지역법관들이 근무지의 유지나 변호사들과 유착하는 등 각종 비리에 연루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수백억의 벌금 미납 후 일당 5억원의 '황제노역'으로 논란이 된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2014년 4월4일 오후 광주지검앞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후 광주지검을 빠져나가려 하자 대주 관련 피해자들이 허회장의 차를 막아섰다. 허 전회장이 차안에서 차를 막아선 피해자들을 침묵으로 지켜보고 있다.2014.4.4/뉴스1
수백억의 벌금 미납 후 일당 5억원의 '황제노역'으로 논란이 된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2014년 4월4일 오후 광주지검앞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후 광주지검을 빠져나가려 하자 대주 관련 피해자들이 허회장의 차를 막아섰다. 허 전회장이 차안에서 차를 막아선 피해자들을 침묵으로 지켜보고 있다.2014.4.4/뉴스1

특히 500억원대 세금을 탈루한 혐의로 기소된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지난 3월 항소심 재판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여원을 선고받으면서 이 같은 논란은 더욱 증폭됐다.

항소심 재판부가 허 전회장이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 1일에 5억원으로 환산해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환형유치금액을 책정해 '황제노역'이라는 비판을 불렀다. 당시 판결을 한 장병우 광주지법원장이 판사 생활 대부분을 광주에서 보낸 '향판'으로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더욱 거셌다.

이에 대법원은 2014년 8월 지역법관제도를 폐지하고 모든 법관에 대해 경향교류 전보인사 원칙을 세웠다. 예외적인 경우에만 특정 지역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고 그 기간의 상한을 7년으로 제한했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법조일원화에 따른 법관 임용을 위해 요구되는 법조경력의 상향으로 신규 임용 법관이 줄어들어 지방의 판사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현재 법조경력 5년 이상의 일반 법조경력자와 법조경력 20년 이상의 전담법관 임용 절차로 나눠 법관을 임용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36명이 임명됐고, 올해에는 80명이 일반 법조경력자로 법관에 임용됐다.

한 판사는 "법조경력 요건이 상향되면서 신임 법관 숫자가 많이 줄어들어 지방에 판사를 충원하기 힘들어진 듯 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지방의 법원 판사 부족을 해결할 묘안이 마땅히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법조일원화로 인한 판사 임관 요건으로 요구되는 법조경력이 10년 이상으로 늘어나게 되면 신임 판사 수급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조 처장도 공지에서 "여러 이해관계를 조정해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세부방안까지 도출하기 위해서는 많은 쟁점들에 관한 심도 깊은 연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해결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고, 해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지방법원 부장판사만 내려보낸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당장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기적 방안으로써는 이해가 되지만, 좀 더 거시적 안목에서 지방법관 수급문제를 연구했어야 하는 아쉬움이 든다"


ho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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