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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상한 북한…이기고 싶어 그랬을까 지기 싫어서 그랬을까

인판티노 회장도 대한축구협회도 AFC도 몰랐던 '무관중 경기'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2019-10-16 16:00 송고
15일 북한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한국과 북한의 경기가 끝난 뒤 전광판이 보이고 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은 이번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거뒀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2019.10.15/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15일 밤,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축구 팬들은 아주 요상한 경기를 보았다. 중계방송이 되지 않았으니 정확히 말하면 요상한 경기를 '글'로 읽었다. 가뜩이나 눈으로 확인할 수 없어 불빛 없는 터널 속을 더듬거리듯 지켜봤던 경기였는데 이해하기 힘든 배경이 나와 상상력을 더 자극시키고 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지난 15일 오후 북한 평양의 김일성 경기장에서 열린 북한과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조별리그 H조 3차전에서 0-0으로 비겼다. 한국은 북한과 함께 나란히 2승1무를 기록했으나 골득실 +10으로 +3의 북한을 제치고 1위를 유지하게 됐다.

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이 직접 전세기를 타고 평양으로 날아올 정도로 안팎의 관심이 뜨거웠던 경기다. 그런데 정작 경기장은 썰렁했다. 형식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 적막했다.

예고된 대로 이날 경기는 전파를 타지 못했다. 한국 취재진과 중계팀의 방북을 불허했던 북한은 외신 기자들의 출입도 막았다. 때문에 한국 팬들은 복잡한 단계를 거친 '문자'에 의존해야했다. 평양에 있는 AFC의 경기감독관이 AFC 본부가 있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상황을 전달하면 말레이시아에서 서울의 축구협회 직원에게 전달하고 그것을 출입기자단에게 다시 알려주는 식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도 있었다. 이날 김일성 경기장에는 일반 관중이 전혀 없었다. 공식 기록지에는 관중 100명이 적혔으나 VIP들과 진행요원, 안전요원 등만 합쳐도 그 정도는 나온다. 대한축구협회 측도 알지 못했던 사실이다.

협회 관계자는 "경기 전날 양팀 매니저 미팅 때 남북전 때 김일성 경기장을 찾을 현장관중을 약 4만명 선으로 예상했었다"며 돌발 상황이었다는 뜻을 전했다.

인판티노 FIFA 회장도 16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역사적인 경기에 팬들이 경기장을 가득 메우는 모습을 보고 싶었으나 팬들이 없어 실망했다"면서 "생방송과 관련한 문제 그리고 해외 언론에 대한 접근 방식 등도 놀라웠다"고 지적했다.

AFC도 "사전에 조율된 사항이 아니다"면서 "입장권 판매를 포함한 홈 경기의 마케팅권리는 주최국 축구협회에서 가지고 있다. AFC에서는 문제 삼을 이유가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여러모로 북한축구협회의 독단적 결정으로 보이는데, 이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15일 북한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한국과 북한의 경기에서 황의조가 볼다툼을 하고 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은 이번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거뒀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2019.10.15/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다수의 접근은, 북한이 한국에 패하는 것을 우려해 방송 노출을 차단하고 경기장 관중 출입을 막았다는 쪽이다. 폐쇄성 강한 나라가, 김일성 경기장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에서, 한국에게 패하는 것이 널리 공개되는 것을 두려워해 아예 미리 손을 썼다는 것이다. 한국을 꺾는다면야 큰 효과를 얻을 수 있겠으나 안방에서 패하면 손해가 더 크니 아예 문을 닫았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반대 쪽 목소리도 있다. 한 축구 관계자는 "진짜 이기고 싶어서 부담스러운 조건은 만든 것일 수도 있다"면서 "우리 선수들이 무관중 경기장에서 경기할 것이라 생각했겠는가. 가뜩이나 어느 정도의 두려움 같은 것이 있었을 평양 방문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환경을 제공했다는 접근도 가능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물론 어느 쪽이든 지금 상황에서는 넘겨짚을 수밖에 없는 수준이다. 자신들이 계획한 '셀프 무관중 경기'. 북한은 패하는 것이 두려워서 그랬을까 꼭 이기고 싶어서 그랬을까. 어쨌든 한국이라는 조 최강을 상대로 무승부를 거뒀으니, 그들의 득이 더 많았던 남북대결이다.


lastuncl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