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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밥통은 칼퇴, 꿈돌이는 몰래 야근…속타는 회사는 근무감시 '혈안'

[게임업계 주52시간제 명암]②생산성 저하에 게임사 신작 '흥행불' 꺼져
근로시간 감독시스템 속속 도입…집에서 몰래 야근하는 촌극도

(서울=뉴스1) 이수호 기자, 박병진 기자 | 2019-10-10 07:00 송고 | 2019-10-10 10:13 최종수정
편집자주 지난해 7월부터 주52시간 근무제가 첫 시행되면서 게임업계는 근무 환경에 일대 변화를 겪고 있다. 야근 및 밤샘근무를 뜻하는 '크런치모드' 등의 관행이 사라지며 근무여건이 개선됐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한편 생산성 저하로 중국산 게임에 매출 상위권을 내주는 등 경쟁력 저하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선진국처럼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업종의 특성을 무시한 획일적인 근무단축으로 자칫 성장기반마저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교차하는 셈이다. 게임산업을 필두로 IT업계에 주52시간제 시행의 '명암'을 진단해본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 일대의 풍경.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 일대의 풍경. 

주 52시간제 도입과 포괄임금제 폐지로 '공짜 야근'이 사라지면서 판교 테크노밸리에 위치한 국내 게임업계에 '워라밸 시대'가 찾아왔지만 사측과 직원 간의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과로사 등 악화일로로 치닫던 개발환경은 크게 개선됐지만 정작 실적이 주춤하면서 인력재편이 늘어난 데다 개인의 성장을 위한 추가업무도 인위적으로 차단돼 몰래 야근하는 촌극이 일상화된 탓이다.

◇중국산 게임 전성시대…'워라밸 시대' 왔지만 고용불안 커졌다

지난해 7월 주 52시간제가 전격 시행되면서 가장 먼저 나타난 현상은 국내 게임사들의 신작 '흥행불'이 꺼졌다는 점이다. 실제 업계가 주 52시간제 시행준비에 돌입한 지난해 1월부터 현재까지 국내에 출시된 모바일 게임 중 일매출 80억원을 넘어선 흥행작은 1종도 등장하지 않았다. 주 52시간제가 도입되기 이전인 2017년 출시작 '리니지M'과 '리니지2 레볼루션'은 모두 일매출 80억원을 넘긴 바 있다.

현재도 펄어비스의 '검은사막 모바일'을 제외하면 주 52시간 시대에 출시된 마땅한 흥행작이 없다. 오히려 크런치모드 시대의 산물인 '리니지M'과 '리니지2 레볼루션'이 여전히 구글플레이 기준 매출 1위, 3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17년 상반기에만 20여종의 신작을 쏟아냈던 넥슨과 넷마블은 2018년 들어 신작 출시량을 30% 이상 줄였다. 올해는 이보다 신작 출시량을 다소 늘리고 있지만 흥행작 발굴에 실패하며 성장 모멘텀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올 하반기 대작 '리니지2M' 출시를 앞둔 엔씨소프트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게임사들이 반전카드를 갖고 있지 못한 상태다. 반면 매출 순위 20위권 내 무려 9종이 중국산 게임으로 채워졌고, 심지어 신작도 꾸준히 출시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게임업계는 '인력재편'에 나서고 있다. 최근 모든 신작 개발의 사업성 검토에 나선 넥슨을 시작으로 스마일게이트와 넷마블 역시 미출시 게임 개발을 중단하거나, 방향성 재검토를 진행 중이다. 매년 수십여 종의 신작을 쏟아내던 액션스퀘어와 액토즈소프트 등 중견게임사의 구조조정도 잇따르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직원들이 기존에 하던 일이 바뀌거나, 경우에 따라 한직으로 밀려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게임 기획자를 검수 또는 유통 분야로 보내면 사실상 퇴사 종용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영진은 "사업성이 적은 프로젝트가 중단되면서 보직이 중복될 경우, 새로운 일을 맡길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언제 자신의 프로젝트가 중단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게임업계도 '때아닌 노조' 열풍이 부는 실정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1위 게임사인 넥슨의 경우, 잦은 조직 해체로 인해 100여명에 달하는 직원이 전환배치를 기다리는 중"이라며 "300인 이하 사업장에도 주 52시간제가 의무도입되는 내년 1월이 되면 더 많은 직원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옷을 벗어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열린 고용안정 보장 촉구 집회 현장. © 뉴스1 박병진 기자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열린 고용안정 보장 촉구 집회 현장. © 뉴스1 박병진 기자

◇"IT는 창의적인 업무인데…" 철밥통은 집으로, 꿈돌이는 몰래 야근

최근 1년간 국내 게임업계가 마땅한 흥행작을 배출하지 못하면서 철야를 감내하며 인센티브나 상장 후 주식부여 등 큰 보상을 얻기보다 안정적인 고용환경을 원하는 '철밥통' 유형의 개발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업계 관계자는 "근무시간이 줄어들면서 중국게임사를 이겨낼 품질을 만드는 것이 어려워진 것도 있지만 요즘은 큰 보상을 기대하며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던 직원들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도 최근 자사를 찾은 국회의원들에게 획일적인 주52시간제 시행 이후 게임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호소했다. 그는 "중국은 6개월이면 만들 게임을 한국은 1년이 걸려도 만들어낼 수 없을 정도로 생산성이 뒤처져 있다"고 토로했다.

줄어든 근무시간 탓에 생산성이 크게 줄면서 업계는 근무시간을 분단위로 측정하는 등 기계적으로 체크하는 시스템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승진이나 고과평가보다 빠른 퇴근, 취미생활을 원하는 직원을 감시하기 위해 별도의 예산까지 들여 감시시스템을 도입하는 '웃픈'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

특히 이 같은 강제적 노동시간 설정으로 인해 성공을 꿈꾸는 개인의 선택마저 차단됐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일에 욕심이 있는 '꿈돌이' 직원도 강제 퇴근해야하니 성과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대형게임사에 근무하는 한 30대 개발자는 "최근 정해진 근무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업무환경이 종료되는 '스위치'라는 시스템으로 인해 추가근무를 하려면 일일이 상급자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서 "이마저도 눈치가 보여 고과평가를 좋게 받기 위해 결국 집에서 몰래 야근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유연한 고용문화 안착이 기업과 근로자 상생의 열쇠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문제는 탄력근로제 관련 법안이 반년 넘게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여야가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태가 길어지면서 내년 1월 중소기업까지 주52시간제가 적용되면 큰 혼란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중견게임사의 한 고위관계자는 "안정을 최우선으로 택하는 새로운 세대의 진입으로 내홍이 격화되고 있지만 업계의 성장이 정체된 점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대통령이 얼굴 비치는 데 급급하지 말고 당면한 게임질병화 시도, 중국 수출차단 등 외부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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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599868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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