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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도 99.99%, 화성 연쇄살인범 DNA 틀릴 확률 없다"

서중석 전 국과수원장 "DNA법·경찰 끈기까지 삼박자 맞아"
혈액형 정도 구분하던 과학수사, 1나노그램으로 범인 특정

(서울=뉴스1) 황덕현 기자, 민선희 기자 | 2019-09-20 06:00 송고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살인의 추억'에는 박두만 형사(배우 송강호)가 현장 주변에서 발견된 발자국에 나무 막대기로 동그라미를 치고 이후 그 위를 경운기가 지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 장면이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는 당시 현장 보존과 증거물 수집 등에서 열악했던 수사현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의 몸속에서 정액이 발견되고 사건현장 주변에서 여러 증거가 발견됐지만 사건이 발생한 1990대 초만 해도 진술과 잠복, 탐문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 우리나라 수사의 현실이었다.
33년 동안 미제로 남아있던 화성 연쇄살인이 살인의 추억으로 남지 않게 된 건 흘러간 세월 동안 진화해온 과학 수사 덕분이었다. 경찰은 사건 당시 수집해 영구보존하던 증거물에서 나온 DNA 정보를 이용해 50대 남성 이모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했다.

서중석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은 이번 성과에 대해 "세계 정상의 우리 유전자 분석 기법, DNA법, 경찰의 노력…삼박자가 맞은 덕분에 용의자를 정조준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서 전 원장은 '살인의 추억' 현장이 한창이던 1990년대초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전신)에 들어와 35년여 시간을 우리나라 과학수사 전선에서 일해오다 2016년 원장을 끝으로 현직에서 물러났다. 
그가 과학수사에 처음 발을 디딘 1990년대는 과학수사에 대한 기대나 관심이 전무하던 시대였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봉준호 감독 작품 '살인의 추억'에서처럼 현장이 훼손되거나 증거물이 뒤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일선 현장의 형사들이 과학수사를 무시하는 경향도 존재했다.

그도 그럴것이 1990년 초중반까지 과학수사는 ABO 혈액형 정도를 분석하는 게 혈액을 이용한 과학수사의 전부였다. 서 원장은 "1991년 벌어진 10차 살인의 경우 당시 유전자(DNA) 분석 선진국이던 일본에 표본을 보냈으나 시도 정도에 그친 셈이 됐다"고 회상했다.

이후 국내에 도입된 DNA 검사 기법은 범죄수사의 일대 '혁신'이 됐다. 현장이 훼손되거나 전소되더라도 피 한방울이면 사람을 특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국과수에서는 현장에서 채취된 극히 적은 양의 시료에서도 DNA를 검출할 수 있다. 중합효소 연쇄반응 기법(PCR)을 이용해 1ng(나노그램)의 시료로 DNA를 증폭해 감정하는 기법을 쓰고 있다. 1ng은 1g의 10억분의 1로 극미량으로도 사람을 특정할 수 있는 것이다. 서 전 원장은 "초기 DNA 감정 기술은 혈액이 많이 필요하고, 부패해서는 안되며 증폭 기술도 수준이 낮았는데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대구 지하철 사건 등을 겪으면서 우리 기술은 세계 최정상에 올라선 상태"라고 말했다.

영화 '살인의 추억' © 뉴스1 DB
영화 '살인의 추억' © 뉴스1 DB

이중 이번에 사용된 분석 기법은 STR 감정이다. 시약을 가위 삼아서 DNA를 잘라낸 다음에 전기를 줘서 얼마나 끌려가느냐를 보고 숫자값을 정하는 감정 기법으로, 서 전 원장은 "일반적인 상황에서 틀릴 확률은 거의 없다"고 단언했다.

DNA의 신뢰도는 '99.99%'로까지 표현된다. 사실상 100% 모든 사람의 DNA는 서로 다르고, 돌연변이가 없는 한 죽는 날까지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DNA 신원확인 기법을 정립한 알렉 제프리 영국 레스터대 유전학 교수는 이를 '유전자 지문'(DNA Finger printing)이라고 명명했다.

유전자 지문은 우리 손의 지문에서 한 단계 더 나간 정보도 제공한다. 혈액형과 성별, 친자 관계 등 개인을 특질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장점 때문에 DNA 분석은 국과수에서만 2018년 17만6404건이 이뤄졌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는 지난해 국과수 감정처리 유형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독물 분석(6만9479건), 마약분석(4만4374건), 교통사고 분석(1만7500건), 시신 검안(9131건) 등을 합친 것보다 많은 수치로 수사의 증거능력을 가늠케 한다.

그러나 이런 첨단 기술도 2010년 '디엔에이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속칭 DNA법)이 없었다면 이번 난제 해결을 비롯한 범죄 현장 적용이 어려웠다. DNA법 시행으로 구속 피의자, 수형인, 범죄 현장 DNA 증거 등을 데이터베이스(DB)로 축적할 법적 근거가 마련됐기 때문에 비교 대상이 생긴 것이다.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른 범인을 신속하게 검거하기 위해 제정된 DNA법은 주요 범죄 피의자의 DNA를 채취해 신원확인정보로 변환해 영구 보관한다. 화성사건 용의자 50대 이씨 DNA도 이 데이터베이스에 있었다.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관계자는 "이씨의 DNA는 2011년 수형자 일괄 채취 당시 검찰에서 획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수사기관은 2018년 기준 23만3221명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확보 중이다.

서 전 원장은 한편 사건을 끝까지 붙잡고 수사해온 경찰에 대해서도 경의를 표했다.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의 증거물을 잘 보존했기 때문에 과학 수사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1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반기수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장(경기남부청 2부장)이 사건 개요를 설명하고 있다. 사상 최악의 미제사건으로 알려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지역에서 발생한 연쇄살인 사건으로 경찰은 수감자인 A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고 밝히고, 전담반을 꾸려 용의자를 상대로 본격 수사에 돌입했다. 2019.9.19/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1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반기수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장(경기남부청 2부장)이 사건 개요를 설명하고 있다. 사상 최악의 미제사건으로 알려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지역에서 발생한 연쇄살인 사건으로 경찰은 수감자인 A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고 밝히고, 전담반을 꾸려 용의자를 상대로 본격 수사에 돌입했다. 2019.9.19/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앞서 경기남부경찰청은 19일 반기수 2부장 주재로 수사진행 브리핑을 열고 "국과수와 협조하여 DNA 감정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며, 전 국민의 공분을 샀던 사건을 공소시효 만료됐더라도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현재까지 3건의 현장증거물에서 검출된 DNA와 일치하는 대상자가 있다는 통보를 받고 수사 중이다. 배용주 남부지방경찰청장은 "(방대한 수사)자료를 분석해서 충분히 진범을 가려 내겠다"고 이날 밝혔다.


ac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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