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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LG 안 부러운 中企, '주35시간' 일하고 칼퇴·40일 방학도

'퇴근 후 업무지시' 옛말…방학·지연출근제 도입하는 중소기업
中企에 정착한 '워라밸'…중기중앙회, '일하고 싶은 기업' 발굴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2019-09-13 10:00 송고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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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여행 가방만 챙겼어요"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박모씨(29·여)는 올해 추석 연휴를 맞아 베트남 여행을 계획했다. 명절과 연차를 불문하고 필수품처럼 챙겼던 업무용 노트북은 집에 두고 나왔다.

박씨는 "올해 여름부터 회사에 '퇴근 후 업무금지' 규정이 생겼다"며 "업무지시 카톡이 올 걱정이 없으니 제대로 연휴를 맞는 기분"이라고 웃어 보였다.

13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열악한 근무환경'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중소기업이 과거의 오명을 벗어던지고 있다. 경영 초점이 '생산량'에서 '인재', '복지'로 옮겨가면서 자발적으로 야근이나 퇴근 후 업무지시를 금지하는 중소기업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주52시간? 우리는 주35시간인데"…中企에 부는 '워라밸' 바람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광고 플래닛 전문기업 ㈜인라이플은 사내 구성원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근무시간을 파격적으로 줄였다.

매월 둘째·셋째주 금요일 '슈퍼프라이데이'로 정하고 전 사원이 오후 1시에 퇴근한다. 첫째·둘째주 화요일에는 점심시간을 두배로 연장하는 '더블런치타임'을 도입했다.

한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에는 한 시간 더 '꿀잠'을 잘 수 있다. 인라이플은 직장인 '월요병'을 고려해 매주 월요일 출근 시간을 한 시간 늦춘 '좀더자도된데이'를 시행하고 있다. 수요일은 근무시간이 끝나면 강제로 퇴근하는 '칼퇴근제'가 운영된다.

아예 근무시간을 '주35시간'으로 못박은 기업도 있다. 글로벌 미디어 커머스 기업 ㈜익스플즌은 주당 근무시간을 35시간으로 줄였다.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6시까지만 일하면 된다. 주말이나 공휴일 출근은 엄격하게 금지한다.

연휴 사이에 평일이 낀 '샌드위치데이'는 휴무가 원칙이다. 2년 연속 근무한 사원에게는 9일간의 재충전(Refresh) 휴가와 함께 250만원 상당의 지원금이 제공된다.

패션소재 전문기업 ㈜영우는 '여유로운 저녁'을 보장하기 위해 퇴근시간을 오후 4시로 당겼다. 평일 중 하루를 통째로 쉬는 '주4일 근무제'도 검토 중이다.

영우가 주목받은 이유는 '가족 친화형 기업'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영우는 연 최대 40일의 '방학제도'를 도입하고 사내 구성원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당연히 개인별 연차와는 별개로 주어지는 휴가다.

휴대전화 케이스 제조기업 디자인스킨㈜도 직원과 가족을 존중하는 사내문화로 유명하다. 매주 수요일에는 오전 10시에 출근해 조기퇴근한다. 야근과 술 강권 문화를 없애기 위해 '오후 회식' 제도를 정착시켰다.

디자인스킨에서 2년째 근무하고 있는 주시은씨는 "지난해 6개월간 휴직했다가 복귀했다"며 "해외에 이민을 가 있는 가족이 그립다고 털어놨더니 회사에서 '가족을 만나고 오라'며 흔쾌히 휴직을 권했다"고 말했다.

이어 "업계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뒷거래'를 전면 금지하는 회사 가치관이나 직원과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식이 가장 마음에 든다"며 "점심시간도 1시간30분으로 길어서 여유로운 근무환경이 보장된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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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자·재직자 "연봉보다 칼퇴근이 좋다"…'건강한 중소기업' 발굴

중소기업들이 대기업 부럽지 않은 '파격 복지'를 내걸기 시작한 배경 이면에는 '훌륭한 복지'가 '생산성 극대화'로 이어진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 가고 있어서다. 임금보다는 '덜 벌어도 행복하게 일하는 직장'을 원하는 구직자의 입맛도 한몫했다.

중소기업중앙회와 유병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가 공동으로 진행한 '직장 선택시 고려 요소 및 요소별 중요도' 연구에 따르면 '좋은 직장'의 조건은 '집에서 가깝고 야근 없이 주 40시간만 일하는 갑질 없는 회사'로 나타났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청년 구직자는 일자리를 고를 때 근로장소(31.63점)를 급여수준(31.43점)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했다. 또 회사의 성장성(16.1점)보다는 안정성(20.7점)을 더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임금보다 워라밸을 우선시하는 경향은 재직자 집단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재직자의 경우 근로시간(38점)이 급여수준(33.3점)보다 무려 5%포인트나 앞섰다. 3순위로는 조직문화(28.6점)가 꼽혔다. 구직자와 재직자 모두 돈보다는 개인의 여가와 편의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화하는 셈이다.

유 교수는 "구직자가 임금보다 근로장소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결과였다"며 "준거 장소(거주지) 기준 1시간 내에 위치하는 직장을 선호하는 것은 청년 구직자가 취업 활동에서도 개인의 삶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중기중앙회와 유 교수가 제시한 '건강한 일자리 가이드(안)'에 따르면 제조산업 대졸 사무직 기준 신입사원 적정 연봉은 2800만원 선이었다. 

대기업보다 다소 낮은 초봉이지만 △야근 없는 주40시간 근로시간 △조화로운 조직문화 △준거장소 기준 1시간 내 위치하는 직장 △높은 고용안정성과 산업성장성 등 사내복지와 근무환경은 청년·재직자 눈높이에 맞게 다소 까다롭게 설정됐다.

중기중앙회 청년희망일자리국과 오는 9월 말까지 '건강한 중소기업' 100여곳을 찾아 발표할 예정이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이번 프로젝트는 '청년들은 중소기업에 취업하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에서 시작해 '진짜 건강한 일자리의 조건'을 찾기 위한 모든 노력을 집중했다는데 기존 연구와 차별점이 있다"며 "임금·근로시간부터 직장 위치, 사내 문화를 다각도로 연구했다"고 말했다.

이어 "다양한 기관과 중소기업 관련 단체로부터 건강한 사내복지를 제공하는 후보기업들을 추천받아 현장실사를 벌이며 꼼꼼히 검증했다"며 "청년 구직자, 2년차 직장인, 중소기업 대표 등 계층별 관점과 선호도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해 대기업 부럽지 않은 중소기업을 소개할 것"이라고 전했다.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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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choi8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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