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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北 자식 생각"…고(苦)고(孤)한 탈북민, 힘겨운 정착

생활고·외로움…봉천동 모자·안양 남성 등 잇단 사망 소식
"기초생활수급자 처지, 창피…무시당하는 경우도 있어"

(서울=뉴스1) 김도용 기자 | 2019-09-13 07:00 송고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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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오지 못한 자식만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이 반갑지 않은 이들이 있다. 대부분 풍족한 음식에 가족들과 함께 웃으면서 시간을 보낼 때 생활고에 시달리고, 홀로 낯선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부 탈북민들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8월 기준 국내에 거주하는 탈북민은 3만700명이다. 이 중 한부모 가정이나 장애인, 노령층 등 취약계층은 2000~3000명으로 추정된다.  

A씨는 낯선 한국에서 홀로지낸지 벌써 12년째다. A씨의 탈북은 생각지 못한 상황에서 발생했다. 북한을 떠나는 사람들을 도우면서 수입을 챙겼던 A씨는 2007년 금전 문제 때문에 중국을 찾았다가 여권 검사 도중 중국 공안에 잡혔다. A씨는 이대로 북송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판단해 탈출, 중국을 떠나 라오스, 태국을 거쳐 2008년 한국을 찾았다. 갑작스런 탈북으로 가족 모두를 떠나게 됐다.  

탈북 과정에서 A씨는 무릎을 다쳐 한국에서 기초생활수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는 A씨에게 넉넉하지 않다. A씨는 "기초생활수급으로 47만원을 받는데 이중 무릎 치료비가 15만원 이상 들어간다. 관리비 등을 내면 생활하기 넉넉하지 않다. 그나마 교회, 동사무소, 적십자사 등에서 조금씩 도와줘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생활한지 벌써 12년이 된 A씨는 생활고뿐만 아니라 낯선 곳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심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A씨는 "내가 탈북해서 북에 있는 가족들이 잘 살고 있을지 걱정이 된다. 또한 명절이나 특별한 날마다 가족들 생각이 난다. 그나마 나를 관리해주는 경찰관이 전화로 안부를 물어봐서 위안을 얻는다. 이제는 그 경찰관이 내 친척같다"고 말했다.
탈북민이 경제적,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건 A씨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 7월 31일 서울 관악구의 봉천동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되 한모씨(42‧여)와 아들 김모군도 비슷한 사례다. 사망 당시 이들이 죽은 집에는 고춧가루 말고 먹을 것이 없었고 수도 요금을 미납했으며 통장에 잔고 0원이 찍혔던 것으로 알려져 '아사한 것이 아니냐' '우울증을 겪은 것이 아니냐' 라는 주장이 많이 나왔다.

8월 31일에는 경기도 안양의 한 고시원에 살던 탈북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이 남성은 죽기 전 기초생활수급자 지원을 받아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 남성은 우울증에 시달리다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은 전력도 알려졌다.

생활고와 정신적인 외로움이 결국에는 죽음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진 사례다.

탈북민의 정착을 지원하는 남북하나재단이 지난해 탈북민 3000명을 대상으로 한 '2018년 북한이탈주민 정착실태조사'에 따르면 '남한생활 불만족 이유' 중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해서'가 27.4%로 가장 높았다. 그 뒤를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18.6%)', '탈북자에 대한 남한사회의 차별‧편견 때문에(18.3%)', '경제적으로 어려워서(14.9%)'가 따랐다.  

지난 1997년 북한을 떠나 중국에서 10년 동안 생활하다 지난 2007년 한국을 찾은 B씨 역시 생활고와 정신적인 고통 때문에 아직도 한국 생활이 쉽지 않다.

B씨는 지난 1997년 친구를 만나러 중국에 갔다가 인신매매를 당한 첫째 딸을 찾기 위해 탈북했다. 3개월 만에 딸을 찾았지만 B씨는 더 이상 북한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결국 B씨는 중국에 머물면서 한식당에서 돈을 벌어 북에 있던 아이 둘을 중국으로 데려왔다. B씨는 2007년 두 자녀와 함께 한국 땅을 밟았다.

B씨의 한국 생활은 처음에 장밋빛이었다. B씨는 "처음 한국에 들어온 뒤 1년 동안은 자유가 생겼다는 마음에 일도 열심히 하고 즐겁게 생활했다. 하지만 2008년 한국에 들어오려던 또 다른 딸이 북송됐다는 소식을 듣고 삶을 포기하게 됐다. 한국에 오면 좋은 일만 생기겠거니 했는데 현실은 달랐다. 3~4년 동안 포기하고 살다보니 병이 들었고 지금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생활하고 있다. 이런 내 처지가 너무 창피하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이어 "북송된 딸이 잘 살고 있는지, 함께 오지 못한 둘째 아들이 잘 지내는지 너무 궁금하면서 걱정된다. 둘 생각에 잠이 안올 때도 많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1년 아들과 함께 한국을 찾은 C씨는 "한국은 내가 얼마나 근면하게 생활하느냐에 따라 수익이 달라질 수 있다. 이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나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에게 들으면 알게 모르게 한국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고 고개를 숙였다.

C씨는 "아무래도 나이가 많은 탈북민들은 영어가 익숙하지 않다. 만약 일할 때 영어를 못 알아들으면 나가라고 말할 때도 있다. 또한 대화를 할 때 북한 말투를 쓰면 이상하게 쳐다보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다행히 탈북민들에게 최근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지난 2일 통일부는 탈북민의 기초생활 보장 특례 대상 및 기간을 확대하기로 밝혔다. 더불어 북한이탈주민 종합관리시스템과 사회보장 정보시스템을 연계해 탈북민 중 생활 위기 의심자를 적극 발굴 복지, 교육, 취업 등 필요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후 관리에도 만전을 기하겠다는 계획을 전한 바 있다.


dyk060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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