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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One]스파의 나라 오스트리아…남녀 공용 사우나 체험기

베토벤이 15년간 요양했던 바덴 스파
19세기말 자연주의 문화에서 비롯된 남녀공용 사우나

(빈=뉴스1) 강희정 통신원 | 2019-09-11 11:10 송고 | 2019-09-11 13:59 최종수정
편집자주 정통 민영 뉴스통신사 뉴스1이 세계 구석구석의 모습을 현장감 넘치게 전달하기 위해 해외통신원 코너를 새롭게 기획했습니다. [통신One]은 기존 뉴스1 국제부의 정통한 해외뉴스 분석에 더해 미국과 유럽 등 각국에 포진한 해외 통신원의 '살맛'나는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현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생생한 이야기, 현지 매체에서 다룬 좋은 기사 소개, 현지 한인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이슈 등을 다양한 형식의 글로 소개합니다.
오스트리아 스파 사우나 <펠벤(felben) 스파 홈페이지 사진 갈무리>
오스트리아 스파 사우나 <펠벤(felben) 스파 홈페이지 사진 갈무리>

오스트리아 하면 보통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보석 업체 스와로브스키가 떠오르지만 관광할 때 절대 빼 놓을 수 없는 하나가 더 있다. 바로 풍부한 미네랄 온천을 이용한 스파다.

알프스의 깨끗한 자연환경과 더불어 과거 화산 지대였던 오스트리아는 유황과 미네랄 성분이 풍부한 온천이 형성되기에 최적인 곳이다. 이에 따라 1990년대부터 오스트리아 전 지역에 걸쳐 질 높은 스파 산업이 발달했다. 신선한 공기와 경치, 천연 온천수를 내세운 스파 리조트는 유럽 전역과 일본 등지에서 특히 인기가 많아 오스트리아 관광 산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스파 리조트에는 독일어로 스파를 의미하는 '테르메'(Therme)란 단어가 뒤에 붙어 있다. 미네랄 성분이 풍부한 물이라는 뜻으로, 이곳에서 목욕을 하면 건강에 좋다는 믿음이 고대부터 전해져왔다. 실제로 많은 유명 스파들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 인기가 많았던 자리라고 하니 역사적으로도 유서가 깊다.

한국을 떠나 오스트리아에서 맞는 첫 겨울은 만만치 않았다. 습한 겨울 칼바람은 머리칼 깊이 파고들어 두통을 일으키기 일쑤였고 추위로 잔뜩 움츠린 몸은 어디 하나 안 쑤시는 곳이 없을 지경이었다. 찜질방에 가서 몸을 '지지며' 피로를 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던 필자에게 오스트리아 스파의 존재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다.

필자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멀지 않은 바덴(Baden bei Wien)이라는 도시의 스파에서 사우나 체험을 해보기로 했다. 이곳은 베토벤이 15년 동안 여름마다 요양을 온 곳으로 유명하다. 더군다나 바덴은 독일어로 '목욕하다'라는 뜻이니 온천의 본고장에서 제대로 된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입장료를 내고 온천 안으로 들어가서 탈의실에 들어간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남녀 구분이 없는 탈의실이었기 때문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자유로운 속옷 차림으로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으며 돌아다녔다는 사실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공공 탈의가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탈의실 중간에 옷만 갈아입고 나올 수 있는 부스가 따로 있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너무 당황한 필자는 사물함에 짐을 넣어두고 화장실로 가서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온천 내부는 실내탕과 실외탕으로 나눠져 있었다. 한겨울에 펄펄 내리는 눈 속에서 영하의 차가운 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따끈따끈한 실외 온천탕에 몸을 담그고 있자니 완벽한 시간이었다. 모락모락 서린 김은 하늘나라 체험을 하는 것 같은 신비한 기분까지 들게 했다.

필자가 가장 기대했던 하이라이트는 역시 사우나였다. 사우나 이용객은 입장을 할 때 별도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 사우나를 하는 공간은 따로 분리돼 있었는데, 개찰구 같은 입구에서 팔찌를 스캐너에 대고 들어간다. 그 때까지만 해도 사우나 입구에 16살 이상만 입장 가능하다고 적혀 있던 문구는 그저 고열에서 기절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라고만 생각했다.

방 여러 개 중 하나를 골라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 사우나 안에서 무심하게 "안녕하세요(Grüß Gott)!"라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모두 나체였기 때문이다. 모두가 수건을 가지고 있었지만 의자 위에 깔고 앉는 용도로만 쓸 뿐 몸을 가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불안하게 움직이는 눈은 어디에도 고정되지 못했고 애써 태연하게 여기저기 방향을 바꿀 뿐이었다. 여덟 명 남짓한 사람들은 나이도 성별도 제각각이었지만 그 사람들의 몸을 감히 재빠르게라도 훑는 여유는 생기지 않았고 야하다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홀로 수영복을 입은 스스로가 외계인 같다는 기분을 느끼고 너무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그렇게 혼자 내적 갈등을 하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다정스럽게 다가와 옷을 벗고 들어오라고 말했다. 마음속으로는 필사적으로 "이건 내 자유"라고 외쳤지만 겉으로는 성숙하고 문화적으로 개방적인 사람처럼 "알았습니다"라고 답하고 조용히 그 방을 나왔다.

짧지만 길게만 느껴졌던 사우나 체험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문화를 극복하고 나체로 당당히 들어갈 용기를 못냈기 때문이다. 그 날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의 벗은 몸을 제일 많이 보았던 날이었다.

남녀 공용 사우나는 19세기 말 독일 베를린에서 시작된 자연주의(Freikörperkultur·FKK) 문화에서 비롯됐다. FKK는 레저와 스포츠를 비롯한 일상생활에서 나체주의를 추구하며, 성적인 의미는 전혀 없이 자연 그대로의 즐거움과 자유를 누리는 문화다.

유럽 전역에 많은 스파들이 있지만, 독일과 오스트리아만 남녀가 함께 나체 사우나를 한다. 현재 전 세계에서 나체주의가 가장 활발한 나라가 오스트리아라고 한다.

스스로의 껍데기를 깨고 FKK문화에 따라 나체 사우나를 즐길 때 비로소 이런 저런 세상사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오스트리아에서 사우나를 가실 때는 마음의 준비를 꼭 잘하시길. 문화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어려운 분들은 흔치는 않지만 여성 전용 시간 등을 따로 마련한 곳을 찾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hy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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