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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도발 맞서 싸워야하는데…韓 재계 3-4위 배터리 내분

SK, LG 제소에 맞불 소송 방침, 화해 관측 빗나가
LG '사과부터' 입장차, 특허 침해 내용에도 관심

(서울=뉴스1) 류정민 기자 | 2019-08-31 09:00 송고 | 2019-08-31 09:01 최종수정
지난해 9월 평양 목란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환영 만찬에 참석한 구광모 LG회장(사진 좌측)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사진 우측)이 한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있다.© 뉴스1
지난해 9월 평양 목란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환영 만찬에 참석한 구광모 LG회장(사진 좌측)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사진 우측)이 한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있다.© 뉴스1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2차 전지' 소송전이 그룹 간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와 미·중 무역전쟁 등으로 산업계 전반에 위기감이 커지면서 두 기업이 곧 다툼을 멈출 것이란 예상도 있었지만, SK이노베이션도 소송 방침을 밝히면서 오히려 다툼이 커졌다.
31일 재계에 따르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두 회사 간 전기차 배터리 소송과 관련, 산업통상자원부와 청와대 등의 중재 움직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LG화학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및 델라웨어 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영업비밀 침해 혐의로 제소했다.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 인력을 70여 명을 빼가고 이를 통해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게 LG화학의 주장이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 제소에 대해 불필요한 문제제기이며, LG화학 직원들의 처우가 열악한 때문에 이직자가 많은 것은 아닌지 짚어보라고 맞섰다.
두 기업 간 화해 가능성이 제기된 건 일본이 한국을 수출 간소화 절차 우대국인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면서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면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인 분리막의 대일본 수입이 원활치 않을 것이 전망이 있었다. 분리막은 배터리에서 전기를 만드는 양극재와 음극재를 분리해 이온만 통과시키는 소재로, 배터리의 안전성을 결정짓는다. 배터리 재료비 원가의 20%를 차지해 양극재 다음으로 고가다. SK이노베이션은 이 분리막을 생산하지만 LG화학은 일본 업체들로부터 이를 수입해 왔다.

화이트리스트 배제로 일본산 수입이 원활치 않을 수 있다는 전망에 SK이노베이션은 '국내 경쟁사(LG화학)에 분리막을 공급할 수 있다'며 화해의 제스처를 보냈다.

LG화학이 이와 관련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가운데, 분리막 수입은 일본의 자율준수무역거래자(ICP기업·Internal Compliance Program)' 인증을 활용하면 화이트국가 배제 전처럼 수입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ICP제도 취지대로 수입에 차질이 없게 되면, LG화학이 굳이 SK이노베이션에 손을 벌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배터리 소송전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에게도 보고되는 사안으로 안다"며 "먼저 제소를 당한 SK가 정부 관계자를 앞세워 중재를 요청했고, 최근에는 SK그룹 윗선까지 나섰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고 전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지난 29일 미래 소재∙부품 개발 현황을 살피기 위해 대전 LG화학 기술연구원을 찾아 내연기관과 대등한 주행거리를 갖춰 전기차 시대를 본격 앞당길 게임 체인저로 개발중인 '3세대 전기차용 배터리'(한 번 충전으로 500Km 이상 주행 가능)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노기수 LG화학 CTO, 김명환 LG화학 배터리연구소장, 구광모 LG 대표.© 뉴스1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지난 29일 미래 소재∙부품 개발 현황을 살피기 위해 대전 LG화학 기술연구원을 찾아 내연기관과 대등한 주행거리를 갖춰 전기차 시대를 본격 앞당길 게임 체인저로 개발중인 '3세대 전기차용 배터리'(한 번 충전으로 500Km 이상 주행 가능)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노기수 LG화학 CTO, 김명환 LG화학 배터리연구소장, 구광모 LG 대표.© 뉴스1
대화에 진전이 없자 SK이노베이션은 강공으로 돌아섰다. SK이노베이션은 전날인 30일 LG화학과 LG화학의 미국 현지 법인인 LG화학 미시간(LG Chem Michigan Inc.)이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며 ITC와 연방법원에 제소한다고 밝혔다.

LG화학의 배터리 셀을 공급받아 배터리 모듈과 팩을 생산해 특정 자동차 회사 등에 판매하고 있는 LG전자도 연방법원에 제소한다.

SK이노베이션은 "국내 기업 간 선의의 경쟁을 통한 경제발전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국민적인 바람과 산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 보류해 오다 더 지체할 수 없어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공식적, 직접적으로 대화를 요청해 온 적이 없었다"며 SK이노베이션의 직접적인 사과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LG 측에서는 SK의 이 같은 강공전략에는 여전히 제삼자가 중재에 나서주기를 바라는 숨은 의도가 있다고 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LG전자까지 소송 대상에 포함해 확전 범위를 넓힌 것이나,  '국익' 등을 거론하며 원만한 해결을 모색해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LG와의 대화가 쉽지 않자 어쩔 수 없이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는 점을 부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의 주장에 편드는 입장에서는 '어려운 때인 만큼 싸우지 말고 잘 해결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지금이라도 전향적으로 대화와 협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라고 판단해 대화의 문은 항상 열고 있다"고 밝혔지만, 기대와 달리 LG는 완강하다.

LG전자는 "대응할 가치를 전혀 못 느낀다"고 일축했고, LG화학은 "경쟁사에서 소송에 대한 불안감 및 국면 전환을 노리고 불필요한 특허 침해 제소를 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SK이노베이션의 사과부터 요구했다.

LG화학 관계자는 "SK가 제삼자를 통해서 우회적으로 대화를 시도해 온 것으로 안다"며 "우리 입장은 SK의 진정성 있는 사과 및 재발 방지 약속이 선행되어야 대화에도 나설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LG의 요구는,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는 잘못을 인정하는 셈이어서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결국 양사가 미국 법원에서 진흙탕 싸움을 벌일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높은 상황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19일 오전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SK이천포럼'에 참석하고 있다. 2019.8.19/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19일 오전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SK이천포럼'에 참석하고 있다. 2019.8.19/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양사가 서로 침해했다는 특허 내용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 및 LG전자가 현재 생산, 공급하고 있거나 미래에 공급하게 되는 배터리가 SK이노베이션 특허를 침해하고 있어, 그 생산 방식을 바꾸기 전에는 대체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번 특허 침해 행위가 LG화학의 생산방식에 있다는 것으로, SK이노베이션이 영업기밀에 해당하는 LG화학의 핵심 생산공정을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우리가 LG화학의 생산공정을 들여다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LG화학이 생산한 제품을 통해 생산공정 과정에서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것을 파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A사가 만든 선풍기를 B사가 유사하게 만들었을 때, A사가 B사 제품을 뜯어보면 어떤 특허를 사용해 제품을 사용했는지 알 수 있는 것과 같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에 LG화학에서 이직해 온 직원들로부터 생산과정과 관련한 정보를 토대로 소송을 추진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LG화학 역시 마찬가지로 자사 특허 침해 행위에 대해서도 더는 묵과하지 않고 조만간 법적 조치까지 검토하겠다고 맞불을 놓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수일 내 소송을 제기하면서 LG화학이 침해했다는 특허 내용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재계 관계자는 "특허라는 게 영업기밀과 달리 좋은 기술을 널리 알려 사용하게 하되, 단 비용을 내라는 취지인데 양사가 특허를 침해했다며 상대방의 제품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운운하는 것을 보면 씁쓸하다"고 말했다.


ryupd01@new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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