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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있니?] "이제 마지막 기회라 생각…죽기 전 단 한번이라도"

53년전 실종 딸 찾는 차순금씨 "이제 마지막 기회"
당시 5세 전영숙양, 1966년 원주역 앞에서 실종

(서울=뉴스1) 온다예 기자 | 2019-08-23 07:00 송고 | 2019-08-26 16:32 최종수정
실종아동 전영숙씨의 어머니 차순금씨가 딸의 실종 전 사진을 들고 있다. 전영숙씨는 1966년 초 강원도 원주역 앞에서 실종됐다. © 뉴스1 온다예 기자
실종아동 전영숙씨의 어머니 차순금씨가 딸의 실종 전 사진을 들고 있다. 전영숙씨는 1966년 초 강원도 원주역 앞에서 실종됐다. © 뉴스1 온다예 기자

"그동안 '내 사주엔 딸이 없다'고 생각하고 마음에 묻고 살았어요. 이제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죽기 전에 찾고 싶어요."

1937년생 올해로 만 82세가 된 차순금씨는 53년 전 홀연히 사라진 딸 전영숙씨(1961년생·당시 5세)의 사진을 붙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딸이 사라졌던 1966년 그해 차씨는 강원도 원주에서 남편 고(故) 전성운씨와 아들 전영준씨 그리고 딸 전영숙씨와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었다.

고 전성운씨는 원주시 학동 21사단에 속해 있는 3군단 병참부에 다니는 군인이었다.

차씨는 "어렸을 때부터 (전)영숙이가 노래와 춤을 좋아했다. 양구에 있는 군인 극장을 놀러간다고 하면 신이 나서 스스로 옷도 입고 외출할 준비도 했다. 똑똑한 아이였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영특했던 아이는 밖에서 놀다가 길을 잃어버리면 인근 파출소에 들어가 엄마가 자신을 찾아오길 기다렸다.

어느 날 집 밖을 나간 아이가 돌아오지 않자 차씨는 여느 때처럼 파출소를 찾아갔다. 그러나 아이가 항상 앉아있던 자리는 텅 비어있었다.

차씨는 놀란 마음에 거리로 뛰쳐나와 아이를 찾았다. 당시엔 경찰에 실종 신고할 생각도 못하고 아이를 찾을 생각에만 급급했다고 말했다.

한 아주머니가 '어떤 아이가 울면서 원주역 앞마당으로 가더라'는 증언을 듣고 실종 장소는 '원주역 앞'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종 날짜는 1966년 음력 정월대보름 즈음(1966년 2월 초로 추정)이다.

차씨는 "날씨가 추워서 아이가 목에 털이 달린 두툼한 코트를 입고 털신을 신고 있었다"며 "긴 머리는 하나로 묶고 있었고 동그란 얼굴에 붙임성이 좋았던 아이"라고 설명했다.

전영숙씨는 1966년 초 강원도 원주역 앞에서 실종됐다. © 뉴스1 온다예 기자
전영숙씨는 1966년 초 강원도 원주역 앞에서 실종됐다. © 뉴스1 온다예 기자

아이를 잃어버린 뒤 행복했던 가정은 파탄이 났다. 군인이던 남편은 아이를 찾기 위해 탈영까지 감행하며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다.

아이를 찾지 못한 남편은 수개월이 흘러 제 발로 자신이 소속돼 있던 군대로 돌아갔고 1년여간 교도소에서 죗값을 치렀다.

이후 차순금씨 가족은 강원도에서 서울로 터전을 옮겼다. 서울로 온 뒤에는 아이 찾기를 거의 포기하고 일만 하고 살았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차순금씨의 머리칼은 희끗해졌고 5살이었던 어린 딸은 어느덧 만 58세가 됐다.

"그때는 아이를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것도 너무 부끄러웠어요. 딸이 애초에 없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편했습니다. 아픈 기억을 잊으려고 하루하루 일만하며 악착같이 살았어요"

◇ '엄마, 내가 전영숙이에요'…억장 무너뜨린 거짓말

실종아동 전영숙씨의 어머니 차순금씨가 가족 사진을 들고 있다.  전영숙씨(왼쪽)는 1966년 초 강원도 원주역 앞에서 실종됐다. © 뉴스1 온다예 기자
실종아동 전영숙씨의 어머니 차순금씨가 가족 사진을 들고 있다.  전영숙씨(왼쪽)는 1966년 초 강원도 원주역 앞에서 실종됐다. © 뉴스1 온다예 기자

1992년, 아이를 찾을 수 있는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다. 한 방송국이 실종아동 찾기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를 잃어버린 가족의 사연을 접수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동안 딸을 가슴에 묻고 살았던 차순금씨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기로 하고 꾹꾹 눌러쓴 사연을 방송국에 제출했다.

차순금씨의 사연이 전파를 탄 뒤 방송국으로 자신이 전영숙이라고 주장하는 30대 초반 여성이 나타났다. 잃어버린 딸과 나이도 비슷했고 동그란 얼굴에, 팔 안쪽에 있는 하얀 흉터도 닮아 있었다. 

차순금씨는 "그땐 정말 내 딸인줄 알았다. 그땐 그 사람이 주민등록번호도 없는 무연고자라 내 딸인 전영숙으로 주민등록번호도 발급받게 하고 호적도 정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이 친딸이라고 주장했던 그 여성은 차순금씨 가족에게 지속적으로 돈을 요구하고 보증을 서달라는 등 무리한 부탁을 했고 몇 년이 흐르자 왕래조차 뜸해졌다.

친자 관계가 의심이 된 차순금씨는 결국 2007년 당사자 동의를 받고 DNA 검사를 진행했다. 검사 결과, 차순금씨와 가짜 전영숙씨 사이에는 친생자 관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호적에서 분리하기 위해 법원 소송까지 거친 차순금씨의 마음은 더 엉망진창이 됐다.

"방송이 나갔을 때 자신이 전영숙이라고 주장한 사람이 더 있었어요. 그 사람들 중에 진짜 내 딸인 전영숙이 있지 않았을까…. 나의 어리석음 때문에 딸 아이를 눈앞에서 놓친 것 같아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남편 고 전성운씨는 딸을 찾았다고 믿었던 그해, 1992년 말 세상을 떠났다.

차순금씨는 "남편은 그래도 행복하게 하늘나라로 갔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이 친딸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됐고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죽기 전엔 꼭 찾고 싶다"고 말했다.


hahaha828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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