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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현장] "94년, 성수대교"…'벌새', 세계가 열광한 보편적 성장담(종합)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2019-08-14 17:51 송고
'벌새' 스틸 컷 © 뉴스1
'벌새' 스틸 컷 © 뉴스1

전세계 영화제를 사로잡은 영화 '벌새'가 베일을 벗었다. 1994년 서울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94년의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담으면서도, 여러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그리며 공감을 자아냈다.
14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한 영화 '벌새'(김보라 감독)의 언론배급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김보라 감독과 박지후, 김새벽이 참석했다.

'벌새'는 1994년을 배경으로 거대한 세계와 마주한 열 네살 은희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이 영화는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18회 트라이베카국제영화제, 제45회 시애틀국제영화제 등 세계 유명 영화제에서 25개의 상을 받으며 개봉 전부터 관심을 받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주요 사건 중 하나로 성수대교 붕괴가 나온다. 김 감독은 이 소재에 대해 "우리나라가 그 시대 선진국이 되기를 열망하고, 88년 서울 올림픽이 끝나고 그 후 서구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분위기 속에서 다리가 무너졌다. 다리의 붕괴라는 물리적 붕괴가 영화에서 은희가 만나는 관계들 속에서의 붕괴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서 94년을 그렇게 정해봤다"고 설명했다.

김보라 감독은 '리코더 시험'(2011)이라는 단편으로 호평을 받은 후 7년만에 장편 데뷔작 '벌새'를 내놓았다. 장편 데뷔작으로 세계 영화제에서 여러 차례 수상했다.
김 감독은 이 같은 수상 세례에 대해 "상을 받게 돼 감사한 기분이었다. 계속 받게 돼서 좀 얼떨떨하고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좋은 게 올 때 불안한 것이 나에게 찾아오는구나 하는 것을 들여다보는 계기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이라는 게 항상 받을 수도 안 받을 수도 있는 거라서 너무 의미를 두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상에는 큰 의미를 두지 말자고 생각했는데 새벽씨와 촬영감독, 음악감독도 상을 받았다. 스태프와 배우들이 상을 받으니 너무 기뻤다. '벌새'로 뭔가를 보답할 수 있는 느낌이어서 행복한 느낌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보라 감독은 세계가 자신의 작품을 주목하게 된 이유로 '보편성'을 들었다. 그는 "(외국 관객 및 영화인들이)사람은 누구나 제대로 사랑받고 제대로 사랑하고 싶은데 그런 부분이 잘 드러나 있다고 하더라. 누구나 자유롭고 싶고 본질이 통하는 관계를 싶어하고, 가족관계, 유년시절 상처는 원형적인 것을 다루고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벌새' 메인 포스터 © 뉴스1<br><br>
'벌새' 메인 포스터 © 뉴스1


'벌새'라는 제목은 이 새가 갖고 있는 의미에서 착안했다. 김보라 감독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다. 1초에 날갯짓을 80번 이상 하는, 꿀을 찾아 먼 거리를 날아다니는 새다. 그래서 벌새는 희망, 포기하지 않는 사랑, 생명력, 좋은 상징들이 있더라"며 "은희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사람을 만나고 자기를 사랑하고 싶어하고, 제대로 사랑받는 여정을 간다. 그게 벌새의 여정과 닮아있어 그렇게 제목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김보라 감독은 주변사람들로부터 자신의 30대를 '벌새'에 쏟았다는 평을 듣는다고 했다. 그는 "원래3시간 30분짜리다. 옆에서 정신 차리라고 해서 2시간 18분으로 울면서 잘랐다"며 "6년 넘게 준비한 작품인데,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어었던 것은 사랑이었다. 시나리오를 정말 사랑했고, 이 시나리오를 정말 사랑하느냐고 누가 물으면 거기에 부끄러움이 없었다"고 말했다. 여러 번 투자사에 거절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에게 가 닿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더불어 김 감독은 자신이 그려낸 94년과 2019년 현재를 비교해달라는 말에 "세월호 사건이 났을 때 기시감을 느꼈다.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곪은 상처처럼 드러나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벌새' 스틸 컷 © 뉴스1
'벌새' 스틸 컷 © 뉴스1


'벌새' 스틸 컷 © 뉴스1
'벌새' 스틸 컷 © 뉴스1

또 "제가 드릴 수 있는 대답은 우리가 더디게 아무것도 안 변하는 것 같지만 조금씩 변하고 있다 생각하고, 조금씩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을 하는 바람이 있다. 94년 은희의 가족이나 학교의 공기 등 여전한 게 있다"며 "사회가 그런 과거의 자장에 머무른 느낌이 있어서 나부터 일상에서 사회에서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조금씩 변화가 있기를 소망하는 바다"라고 설명했다.

전작 '리코더 시험'이 초등학생 은희를 다뤘던 만큼, '벌새' 이후의 이야기에 대한 관객들의 요청도 있었다. 김 감독은 "'리코더 시험'은 '벌새'의 프리퀄 같다. 주인공이 은희고 9살짜리가 나오는 단편 영화인데, '은희는 이후에 어떻게 됐어'하는 그런 물음이 '벌새'를 하는 동력이 됐다"고 말헀다.

이어 "이 영화를 끝내고 안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제 박찬욱 감독님이 추천사 주셨는데 '속히 속편을 내놓으라' 하셨다. 이러다 하게 될까? 지금 마음은 은희 말고 다른 얘끼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는데 어떻게 될지 몰라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알 것 같다"고 답했다.

이번 영화에서는 배우 박지후가 14세 '조용한 날라리' 은희 역을, 김새벽이 은희에게 유일하게 어른이 돼 마음을 알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한문 선생님 영지 역을 맡았다. 정인기, 이승연, 박수연, 손상연, 박서윤, 설혜인, 정윤서 등이 출연한다.

2003년생인 박지후는 94년 중학생 소녀 은희를 연기하며 느꼈던 이질감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삐삐나 '사랑해'를 '486'으로 말하는 거 말고는 은희의 감정이나 지금 내 감정과 다를 바 없다"며 "친구, 부모, 이성친구와의 관계는 10대 사춘기 소녀인 나와 비슷하다고 느껴서 공감을 하면서 연기했다. 보편적인 은희라는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연기 때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벌새' GV © 뉴스1
'벌새' GV © 뉴스1


김새벽은 자신이 맡은 영지 선생님이라는 캐릭터가 "은희를 한 사람으로 대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부가적으로 한문 학원에서 한자 쓰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걸 잘 쓰고 싶었다. 그래서 다이소에 가서 작은 칠판을 사서 혼자 연습을 했다"고 밝혔다.

김보라 감독은 두 배우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박지후에 대해 "지후가 리딩을 하고 가는데 돌아보면서 '감독님 저는 '볼매'에요. 그러니까 꼭 다음 오디션에 불러주세요' 얘기하는데 그 순간이 감동적이었다"며 "우리 모두 욕망이 있다. 잘하고 싶은 마음, 그걸 숨기는 게 아니라 맑고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또 김새벽에 대해서는 "'콜미 바이 유어 네임' 작가를 만났다. 그에게 배우 캐스팅 팁을 물었더니 약간 '오프'한 사람을 찾으라고 하더라. 너무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람 말고, 실제 생활에서도 매력이 있는 사람을 캐스팅하라고 했다. 그러면 스크린 밖에서 그 사람 매력이 튀어나온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벽씨야 말로 그 문장에 부합한다. 새벽씨는 정상성의 범주, 틀에 박힌 범주에 있지 않고, 실제 매력이 스크린 밖으로 잘 뿜어나오는 배우"라고 칭찬했다.

한편 '벌새'는 오는 29일 개봉한다.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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