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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있니?] "내 몸뚱이랑 바꿔서라도 찾을게"…눈물의 28년

11살 때 유괴된 딸 찾는 정원식씨 "살아만 있어주길'
"같은 하늘 아래 살아있을 거라 믿어…포기 못한다"

(서울=뉴스1) 이진호 기자 | 2019-08-02 07:01 송고 | 2019-08-02 09:45 최종수정
실종아동 정유리양의 부친 정원식씨가 딸의 실종당시 이야기를 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정유리양은 1991년 8월5일 안산 원곡성당 앞길에서 놀다 실종됐다. © 뉴스1 이진호 기자

"같은 하늘에서 숨 쉬고 있는 것 맞지? 애비는 포기 못할 것 같다. 내 몸뚱이랑 바꿔서라도 꼭 찾을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정원식(69·남)씨는 1991년 8월5일을 잊지 못한다. 집 앞에 잠시 놀러나간 딸이 불과 100m도 되지 않는 곳에서 사라졌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당시 11살이었던 딸 정유리양은 어려운 가장 형편 탓에 시골 할머니댁에서 생활하다 부모님이 있는 안산에 올라온 터였다. 사촌동생들과 놀고 온다던 목소리가 생생하지만 유리양은 28년째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정씨를 가슴 아프게 하는 건 단순 실종이 아닌 유괴라는 점이다. 그날 유리양과 같이 놀던 사촌동생은 "어떤 아줌마랑 아저씨가 언니를 데리고 갔다"고 말했다. 정씨는 맨발로 뛰쳐나갔지만 이미 애지중지하던 딸은 사라진 뒤였다.

바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아이를 봤다는 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지역방송에 광고를 내고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돈을 요구하거나 주변을 기웃거리는 이조차 없었다. 실마리가 없다는 것이 정씨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는 "주변 사람이 모두 범인인 것 같아 몇 년간은 다른 사람과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고 했다.

정씨는 생업을 뒤로한 채 딸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다. 혹시 몰라 사창가까지 뒤졌다. 사창가 포주에게 위협받기 일쑤였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정씨는 "손님인 척하고 들어가 아이 사진을 꺼내놓았다 쫓겨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찾을 수만 있다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용하다는 무당도 찾아가 봤지만 허사였다. 한달치 월세만큼의 돈을 내고 찾아간 무당집에서 "아이 물건을 모두 태워야 찾을 수 있다"는 말에 딸의 흔적을 불길에 날려보냈다. 하지만 오늘까지 딸의 소식은 들을 수 없다.


정유리양의 유치원 졸업사진. 정씨는 매일 딸아이의 얼굴을 보며 다시 만날 날을 기원하고 있다. © 뉴스1 이진호 기자

정씨는 지하철에서 전단지를 돌린다. '눈썹 짙음' '다리에 털이 많음' 등 아이의 실종당시 특징과 차림새가 담긴 전단지다. 하지만 눈앞에서 전단지가 꼬깃꼬깃 접힐 때 생기는 마음의 생채기는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다. 칠순이 다 된 노구(老軀)를 이끌고 한 장 한 장 돌리는 전단지가 버려질 때면 그의 가슴도 함께 구겨지는 듯하다.

정씨는 "지난해에도 수만장의 전단지를 돌린 것 같다"며 "서울과 수원 등 사람이 많이 타는 노선을 주로 찾아다닌다"고 했다.

애끓는 마음과는 반대로 정씨의 몸은 망가져 갔다.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사람들에 치이느라 만신창이가 된 탓이다. 허리가 성치 못하고 한쪽 눈도 잘 보이지 않지만 희망의 끈을 놓은 적은 없다.

"몇 번 제보가 들어오기도 하고, DNA 검사까지 받았는데 모두 유리가 아니었어요. 그래도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을거라고 믿습니다. 포기하라는 사람도 많지만 제 몸이 망가지는 한이 있어도 꼭 찾아낼 겁니다."

정씨의 부인 김순옥씨는 그런 남편이 안쓰럽기만 하다. 딸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남편의 건강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정원식씨는 "찾아야 한다는 일념 밖에는 없다"면서 "그저 같은 하늘 아래 숨쉬고 있을 거라 믿는다"며 몇 장 남지 않은 딸의 사진을 어루만졌다.

정유리양의 11살 때 모습과 얼굴나이변환기술로 구현한 현재 추정 모습(아동권리보장원 실종아동전문기관 제공) © 뉴스1

유리양은 어느덧 39세 성인이 됐다. 결혼을 했다면 실종 당시 본인만한 아이가 있을지 모른다. 강산이 두 번 넘게 변하는 동안 정씨는 아이의 얼굴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개발한 '얼굴나이 변환기술'로 구현한 유리양의 얼굴도 그에게는 희망이다. 그가 돌리는 전단지에는 유리양의 얼굴이 39살 현재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살아만 있어다오. 우리 꼭 만나자. 만날 수 있는 거지. 그렇지?"  딸 아이의 사진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서는 마를 새 없는 눈물이 또 흘러내렸다. 


© 뉴스1 이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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