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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14년만에 공무직 전환…달라진 점이요? 없죠"

[공공비정규직 동행③] 차별 여전…부처별 대우도 제각각
턱 없이 낮은 임금…"정책 과도기, 공무직 관리시스템 필요"

(서울=뉴스1) 민선희 기자 | 2019-08-04 07:00 송고
국립중앙박물관 입구.  국내외 관람객들이 줄을 늘어선 가운데 오른쪽에는 중앙안내데스크가 위치해있다. 안내데스크에서는 수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안내서비스를 제공한다. © 뉴스1 민선희 기자
국립중앙박물관 입구.  국내외 관람객들이 줄을 늘어선 가운데 오른쪽에는 중앙안내데스크가 위치해있다. 안내데스크에서는 수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안내서비스를 제공한다. © 뉴스1 민선희 기자

"공무직 전환 후에 달라진 점이요? 너희 이미 다 (정규직이) 된 거 아니냐는 사람들의 시선 정도요. 사실 처우도, 월급도 달라진 건 없어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박물관 공무직 A씨(38)는 '공무직 전환 후 달라진 게 있느냐'는 질문에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 같이 말했다. 

A씨는 특수계약직으로 입사해 2009년 무기계약직이 됐으며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맞춰 지난해 공무직으로 전환됐다.

지난달 22일 찾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국내외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였지만 지난달 초 진행된 공공부문 비정규직 총파업의 여파도 느낄 수 있었다.

4호선 이촌역부터 박물관까지 이어지는 길에는 민주노총 문화체육관광부 교섭노조연대가 내건 현수막들이 걸려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책임지고 비정규직 차별 철폐하라' '공무직의 아이도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자녀돌봄시간 보장하라!' 등의 내용이다.
정부에서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90%를 달성했다며 성과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전환된 공무직들은 달라진 게 없다며 거리로 나선 상황. A씨를 만나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것을 요구하는지 들어봤다. 

4호선 이촌역에서 국립중앙박물관 쪽으로 나오면 민주노총 문화체육관광부 교섭노조연대에서 내건 현수막들이 줄지어 걸려있다. © 뉴스1 민선희 기자
4호선 이촌역에서 국립중앙박물관 쪽으로 나오면 민주노총 문화체육관광부 교섭노조연대에서 내건 현수막들이 줄지어 걸려있다. © 뉴스1 민선희 기자

◇앉을 새 없는 '국립중앙박물관' 통역 안내데스크…'폭언·욕설'에 상처도

A씨는 국립중앙박물관 안내데스크의 외국어 통역 안내원이다. 대학에서 외국어를 전공했으며 어학연수도 다녀왔다. 이력을 살려 지난 2005년 용산으로 옮긴 박물관 개관 당시 특수분야 비정규직으로 입사했고, 올해로 14년차다.

안내데스크에는 수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를 담당하는 안내원들이 함께 근무한다. 이들은 관람객들이 보일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서서 안내했다. 외국인 관람객들은 물론, 우리나라 관람객들을 안내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탓에 대부분 10분도 편히 앉아있지 못했는데, A씨는 "오늘 정도면 사람이 많지 않은 편"이라며 웃었다.

관람객들의 질문은 입장료나 해설에 관한 것부터 "매난국죽은 어디 가면 볼 수 있느냐"는 것까지 천차만별이다. 이 때문에 안내데스크 직원들은 기본 안내 사항 및 박물관 일정을 숙지하는 것은 물론, 박물관 소장 유물에 대해서도 꼼꼼히 알고 있어야 한다. 안내데스크 직원들은 자체적으로 유물전시상황과 소장물자료를 대조해 변동사항이 있는지 확인한다.

A씨도 오후 2시쯤 전시물 확인에 나섰다. 유물과 자료를 하나하나 확인하던 A씨는 '허리띠'와 '금관' 앞에 멈춰섰다. '허리띠'와 '금관'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출품'이라는 안내판이 놓여있었다. 

A씨는 "이렇게 다른 박물관 전시에 출품돼 있는 경우에는 이 유물을 찾아온 관람객들에게 이야기 해줘야 하는데 이런 사항이 소장물 자료에는 바로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 하나하나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업무 중 가장 힘든 부분이 있다면 악성 민원에 시달릴 때다. A씨는 "개인적인 자료를 가져와 번역을 해달라고 하고, 난색을 표하자 폭언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면서 "사실 그냥 이유없이 욕을 하고 가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토로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박물관'인 국립중앙박물관 직원이라는 자부심으로 일하지만,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받으면서, XXX" 같은 폭언이나 욕설을 들을 때면 이들의 가슴에도 멍이 든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공공 비정규 노동자 총파업·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7.3/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공공 비정규 노동자 총파업·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7.3/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공무원들과도, 공무직끼리도 차별…"인사혁신처가 공무직 관리시스템 마련해야"

"지난달 초 총파업에서는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었어요. 공무원들은 일찍 퇴근해서 자식들 보러가는데, 우리 자식들은 집에 혼자 있어야 한다고요."

A씨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무직들이 같은 직장 내 공무원과도 차별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기관 공무직과도 차별을 받고 있다고 했다.

공무원과의 차별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육아휴직과 자녀돌봄휴가다. 박물관 공무원들은 육아휴직을 3년 쓸 수 있지만, 공무직들은 1년 밖에 쓰지 못한다. 또 5세 이하의 자녀를 둔 박물관 직원의 경우 2시간 단축근무를 하고 있는데, 공무직들은 그렇지 않다. 공무직들도 단축근무를 가능하게 해달라는 요구에 돌아온 대답은 "장관이 허락하면 쓰게 해주겠다"는 말 뿐이었다. 1년에 이틀 쓸 수 있는 자녀돌봄휴가 역시 박물관 공무직들에겐 남의 일이다.

다른 공무직과의 차별도 문제다. 예산 담당 부처인 기획재정부의 경우 소속 공무직들이 가족수당, 직무관련수당을 받는 반면, 문체부 공무직들은 이런 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다. 명절휴가비 역시 기재부 공무직은 기본급의 120%를 받았는데, 박물관 공무직은 설과 추석 40만원씩 총 80만원뿐이었다. 

박병헌 공공운수노조 간사는 "행정부의 경우 기재부에서 예산을 정해주기 때문에, 예산운영 자율성이 없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A씨도 "문체부에 문제 제기를 하면 예산을 올리겠다고하는데, 이것도 기재부가 안 된다고 하면 그만"이라며 "공무직 임금 등이 따로 책정된 게 아니라 사업비 안에 포함되기 때문에 부처 예산 상황별로 공무직 간 차별이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임금 수준도 터무니 없이 낮다. 2005년 입사 당시 월 150만원을 받았던 A씨. 14년이 지났지만 A씨의 기본급은 월 197만원이다. 지난해에는 식비 13만원을 지급한다는 이유로 기본급이 동결되기까지 했다. 같은 문체부 산하기관인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을 비교하더라도 지난해 문화재청 신입 안내원 기본급은 194만원, 국립중앙박물관 신입 기본급은 160만원으로 차이가 났다. 

또 이 월급마저 담당 공무원의 성품에 따라 휘둘릴 수 밖에 없는 구조다. A씨는 "예전에 한 담당자는 자기한테 잘 하는 공무직의 연봉을 크게 올려주고, 나머지는 동결시키는 경우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행정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공무직이 도입된 건데, 지금 일괄적으로 공무직전환을 하면서 이런 공무원과의 차별, 공무직 간 차별 등 여러 갈등양상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지금은 과도기적 상황이라 본다"고 평가했다. 

노 소장은 "1차적으로는 공무원과 공무직의 일을 분명히 구분해야 하고, 공무직들에 대한 직무평가를 통해 보상제도를 확립해야한다"며 "현재는 부처마다 알아서 하다보니 개별 상황이 달라지고, 이에 따른 여러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는 공무직들에 대한 관리를 각 부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공무원 인사관리를 담당하는 인사혁신처에서 공무직에 대한 직무, 임금수준, 체계관리 등 전반적인 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mins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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