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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의 신' 작가 "소설이 길들여졌다, 상품처럼"

[세계의지성④]부커상 수상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 인터뷰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9-07-19 14:46 송고
편집자주 [세계의 지성]은 동서양 석학들의 이론이나 저서, 지성계의 흐름을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합니다. 네 번째는 '작은 것들의 신'으로 부커상을 수상하고 그 후 사회활동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인도 소설가 아룬다티 로이입니다.
아룬다티 로이 © AFP=뉴스1
아룬다티 로이 © AFP=뉴스1

"때로 나는 소설도 길들여지고 있다고 느낀다. 너무 아름답고, 너무 조심스럽고, 너무 잘 만들어졌다. 하지만 소설은 그들의 황야를 잃어서는 안 된다."
1997년 펴낸 등단작이자 첫 장편 소설인 '작은 것들의 신'으로 다음 해 부커상을 수상한 인도 소설가 아룬다티 로이(58)는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을 걸작을 썼지만 소설가 못지않게 사회 운동가로서 뜨거운 삶을 살았다. 2017년 두 번째 소설인 '행복한 성직자'를 내기까지 20년동안의 공백 동안 그는 카슈미르 독립운동, 환경을 파괴하는 댐 건설이나 보크사이트 채굴에 반대하는 시위, 미국의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반대 운동에 발벗고 나섰고 이를 논픽션에 담았다.

인도를 배경으로 한 '작은 것들의 신'에서 로이는 등장인물들이 작은 것들과 큰 것들을 만나서 그들의 삶이 어떤 운명으로 이어지는지 다루고 있다. '작은 것들의 신'은 쟁쟁한 부커상 수상작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행복한 성직자' 역시 토지개혁에서 2002년 카슈미르 독립운동까지 어둡고 폭력적인 인도 근대사를 담고 있다. 둘다 작가가 나고 자란 인도를 배경으로 했지만 근대포스트식민주의, 페미니즘, 정신분석학, 생태주의 등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분석되고 있다.

로이는 지난주 국제펜(PEN)클럽 미국 지부의 월드 보이스 페스티벌에서 작가인 싯다르타 뎁의 사회로 인터뷰를 가졌다. 사회자가 '픽션과 논픽션을 똑같이 넘나드는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호기심'이 작가나 이야기꾼의 기본적인 DNA라고 답했다. 또 대표작인 '작은 것들의 신'에 대해 말하면서 독자들은 사물을 읽고 추론할 수있기 때문에 서양에 동양을 설명해주는 '통역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 시대의 소설에 대해서는 "길들여져 있다"면서 "'황무지'를 잃어서는 안된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문학출판 전문 사이트인 리터러리허브에 실린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픽션과 논픽션을 똑같이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궁금증을 가지고, 이해를 구하는 것은 작가나 이야기꾼의 기본적인 DNA라고 생각한다, 인도 특유의 것 중 하나는 카스트, 언어, 종교, 민족성 등의 측면에서 아주 계층화된 사회라는 점이다. 나를 포함한 유명하고 잘 알려진 많은 작가들은 결국 덫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을 이해할 수 없다. 특히 카스트는 너무 계층화되어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작은 밀폐된 통에 갇혀 있다. 나는 카스트나 종교, 인종 등 매우 많은 면에서 '잡종'이기 때문에 내 경우는 자유가 조금은 있다.

(분쟁지역인) 카슈미르를 여행하거나, 논쟁하거나, 갔다고 해도 인도인들은 당신이 거기 있었던 것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내 글쓰기로 신뢰를 얻는다. (중략) '무엇이 나를 사물과 사람과 장소에 끌어들이는가'라는 당신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호기심'이다. '이해하고 싶은 갈망'이다. 나는 델리의 길을 걸어가며 내 주변 사람들을 보고, 이 사람은 우체부고, 이 사람은 경비원이고, 이 사람은 제빵사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모두 이야기를 갖고 있고, 어딘가에서 왔다.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왜 왔는지 알고 싶다. 

-한 강의에서 문학은 독자와 작가가 만드는 것이라고 한 적이 있다. 남아시아적인 깊은 주제에 관해 쓰지만 당신의 작품은 여기 미국에서 읽히고 있다. 이를 어떻게 연결하고 있는가.

▶'작은 것들의 신'은 내가 자란 남부 인도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나는 내 독자층이 지역적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나는 독자들이 레이더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작가)은 그들에 맞출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사물을 읽고 추론하고 이해한다. '작은 것들의 신'이 출판된 후 내가 결심한 것 중 하나는, 나는 동양에서 서양 쪽으로의 '통역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서양 독자들에게 어떤 사회학적 방법으로 사물을 설명하게 되길 원하지 않았다. 나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들(독자)이 더 추가로 걸어와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들에게 달려있다. 

-당신은 댐에 대한 이야기나 기후변화 등 작가나 소설 독자로서 생각하기 쉬운 소재가 아닌 것도 썼다. 당신은 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작가로서 이런 소재와 어떻게 맞서는가.

▶나는 어떤 원칙이 거기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남에게) 충고를 주는 것도 끔찍하다. 하지만 내 경우를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면 굴욕감을 느낀다. 종종, 갈등을 볼 때, 아마도 8년이나 9년 전에 내가 쓴 에세이에 나오는데, 그것은 동인도 오리사의 보크사이트 산에 대한 글이었다.

그 산의 가치는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것들을 의미한다. 광산업자에게는 그곳에서 채굴할 수 있는 보크사이트의 가치일 뿐이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 산은 구멍이 많은 암석인 보크사이트로 되어 있어 생명을 유지시키는 일종의 물탱크의 역할을 한다. 그 보크사이트는 산 밖에서는 가치가 없다.

그 에세이는 '산 속에 보크사이트를 남겨둘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끝이 났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우리가 보크사이트를 산에 남겨둘 수 있는 상상력을 개발하지 않으면, 우리는 멸망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상상력이 없다면, 적어도 그런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을 몰아내지는 말라. 인도가 계속 나를 매료시키는 것 중 하나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임에도 여전히 거기에 황무지가 남아 있고, 현재 공격받고 있지만 다른 식의 삶에 대한 이해인 상상력의 황야가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떤 강의에서 독자를 '방금 도착한 이민자'로 표현했다. 겁을 먹은, 많이 흥분한 이민자 말이다. '상상력의 황야'란 그것과 연관된 것인가. 

▶그 강의에서 말했듯이, 나는 건축을 공부했다. 나는 항상 도시와 도시 계획에 관심이 많았다. 도시를 소설의 구조에 비유해보자면 고대든, 허물어졌든, 현대적이든, 계획되든, 계획되지 않았든 도시들은 항상 그 (정해진) 형태를 가지고 있다. 때로 나는 소설도 길들여지고 있다고 느낀다. 너무 아름답고, 너무 조심스럽고, 너무 잘 만들어졌다. 상품처럼. 소설은 그들의 황야를 잃어서는 안 된다. 나는 내 소설이 내가 살고 있는 거칠고 길들여지지 않은 도시처럼 되기를 원한다.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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