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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리뷰] '나랏말싸미', '늙은 임금'과 '발칙한 승려'…그리고 우아한 파격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2019-07-16 14:27 송고
'나랏말싸미' 스틸 컷 © 뉴스1
'늙은 임금'과 '발칙한 승려'가 손을 잡았다. 문자를 창제하기 위해서다. 늙은 임금은 기득권의 권력 유지에만 쓰이는 지식이 백성들에게까지 전달되는 공평한 사회를, 발칙한 스님은 불법(佛法)이 새로운 문자를 통해 온 천하에 설파되는 불교 국가를 꿈꾼다. 동상이몽인 둘이 낸 시너지는 우아하고 파격적이다.  

16일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처음 공개된 '나랏말싸미'는 한글 창제 과정 속 드러나는 세종대왕의 솔직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따뜻하게 그려낸 휴먼 드라마다. 훈민정음을 창제했던 세종대왕의 마지막 8년을 통해 위대한 '천년 문자' 한글의 탄생기를 엿볼 수 있다.

유교의 기반 위에 세워진 조선은 불교를 배척하는 국가였다. 임금(송강호 분)은 권력을 차지한 자들이 정보를 독점해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을 옳지 않다 여기며 모든 백성이 이를 공유하는 세상을 꿈꾼다. 그래서 계획한 일이 문자의 창제다.

문자 창제에 큰 발전 없이 시간이 흐르던 중, 세종대왕은 왜국의 팔만대장경 요구를 해결한 승려 신미(박해일 분)가 쓰던 산스크리트어에 관심을 갖게 된다. 산스크리트 문자는 소리 글자라 배우는 것이 쉬워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곧 자신의 두 아들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에게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게 하고, 이내 신미와 그의 제자들을 몰래 궁으로 불러 문자를 만들도록 한다.

'나랏말싸미'가 그리는 조선 초기 왕실은 평소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그려지던 딱딱하고 위압적이던 모습과 달라 흥미롭다. 술 한 잔을 마셔도 아내의 눈치를 보는 임금, 걸핏하면 왕의 일에 반대하고 나서며 '보이콧'을 감행하는 신하들, 왕에게 "그 자리에 앉았으면 왕 노릇 똑바로 하라"고 바른 말을 하는 승려까지. '나랏말싸미'가 감행한 이 파격적인 묘사는 신생 국가 조선의 자유로웠던 분위기를 반영하는 동시에 너그럽고 그릇이 컸던 성군, 세종대왕의 인간적 면모를 드러낸다.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전미선 분)의 관계 또한 한없이 인간적이다. 어린 시절부터 고락을 함께 해온 두 사람은 일국의 왕과 왕비이나, 여염집 부부만큼이나 격없고 정답다. 한편으로 가족이 모두 역적으로 몰려 몰살 당한 상처가 있는 소헌왕후와 그런 아내에게 빚진 마음을 품고 있는 세종대왕의 삶은 권력의 비정한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송강호의 캐릭터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에게 연민을 품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마력이 있다. 세종대왕 역시 그렇다. 송강호는 주변인들에게는 허허실실 너그러워 보이나 한 발 너머를 볼 수 있는 천재 리더 세종대왕의 말년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또 송강호가 탄생시킨 정감가는 임금의 매력은 반골 기질 가득한 승려 신미의 캐릭터와 부딪치며 더욱 빛난다. 왕 앞에서도 "개가 절 하는 것을 봤나. 나라가 중을 개 취급하니 국법을 따른다"면서 절을 하지 않는 신미는 의뭉스러운 분위기의 배우 박해일과 묘하게 어울린다.

'나랏말싸미'가 고(故) 전미선의 유작인 점은 비극이다. 소헌왕후의 캐릭터는 기존 사극 속 수동적이기만 했던 왕후의 캐릭터들과 다르다. '여자도 글을 알아야 한다'면서 먼저 나서 궁녀들에게 '언문'을 가르치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길을 가는 세종대왕에게 화가 나 궁을 떠나기도 한다. 전미선은 강인하면서도 여성적인 이 소헌왕후의 캐릭터를 특유의 온기 가득한 눈빛과 연기로 훌륭하게 표현했다.

영화는 '사극투'의 대사를 기본 틀로 삼되 결정적인 순간 현대어를 써 관객들과 영화 속 인물들 사이의 간격을 좁힌다. 이는 어색하다기 보다는 유연하고 동양적 멋이 가득한 영화의 톤과 어울린다. 이순의 나이에 입봉작을 냈지만, 30년간 영화계에서 시나리오 작가와 제작자 등으로 활동한 조철현 감독의 오랜 내공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24일 개봉.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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