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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 부친 윤석동씨 별세

(광주=뉴스1) 전원 기자 | 2019-06-16 13:30 송고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 열사의 부친 윤석동 전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이 16일 별세했다. 사진은 윤 전 회장의 모습. /© News1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 열사(1950~1980)의 부친 윤석동 전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이 16일 오전 9시51분 별세했다. 향년 93세. 

윤 전 회장은 5·18민주화유공자회 회장을 맡아 진상규명을 위해 헌신했다.  

아들 윤상원은 1980년 5월27일 새벽 옛 전남도청에서 계엄군과 맞서 싸우다 숨졌다. 1982년 4월 윤상원과 그의 들불야학 동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 넋풀이를 위해 만들어진 노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윤 전 회장은 아들이 숨진 슬픔을 딛고 아들의 죽음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특히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을 맡아 12·12군사반란과 5·18 학살의 주범인 전두환씨의 서울 연희동 자택 앞을 찾아가 농성을 하는 등 5·18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힘을 쏟았다. 

윤 전 회장은 16살에 송정리 농업실습학교 학생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해 평생 기록을 남겼다. 

윤 전 회장은 일기에 떠나간 아들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적었고, 5·18 관련 각종 신문 기사를 오려 첨부해 뒀다. 윤상원 열사도 고인의 영향을 받아 초등학교 때부터 생을 마치기 직전까지 일기를 써서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회장은 1997년 전씨가 사면복권됐을 때 "과거를 반성하고 국민 대통합에 협력해 주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하지만 전씨가 지난 3월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기 위해 온다는 소식을 들었던 고인은 "나쁜 놈은 나쁜 놈대로 벌을 받어. 죄를 안 짓고 살아야지"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윤 전 회장은 논농사와 감나무 재배, 축산·양봉을 하며 7남매를 가르쳤다. 다만 먼저 간 아들의 생각날 때면 혼자 무등산에 올라 광주를 바라보곤 했다. 

신장투석 등으로 수년동안 지병을 앓았던 고인은 지난해 5월 휠체어를 타고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았다. 먼저 떠난 아들의 비석을 애틋하게 쓰다듬으면서 "인자 곧 죽을 것 같아. 마지막으로 아들 비석을 만져보고 싶어 왔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윤 전 회장은 지난 15일 저녁 손글씨로 "내일 간다"고 적은 뒤, 자녀들에게 "고생했다.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 

유족은 배우자 김인숙씨, 아들 웅원(대원건업)·태원(㈜한양 전무)씨, 딸 정희·경희·덕희(봉주초 교사)·승희씨, 사위 전남구·이기홍·나창영(목포대)·송인엽(대구시청)씨 등이 있다. 

빈소는 광주 서구 VIP장례식장 301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18일 오전 9시다.


jun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