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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록의 욜로은퇴] 내 인생의 빠떼루

(서울=뉴스1)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 2019-06-14 18:47 송고
편집자주 100세 시대, 누구나 그리는 행복한 노후! 베이비 부머들을 위한 욜로은퇴 노하우를 전합니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 뉴스1
‘빠떼루를 줘야 합니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레슬링 경기에서 해설자 김영준 씨가 한 말입니다. 이 한 마디로 비인기종목이었던 레슬링 인기가 올라갔고 김영준 씨는 ‘빠떼루 아저씨’로 유명세를 탔습니다. 일상 생활에서 뭘 잘 못 하거나 하면 다들 ‘빠떼루를 줘야 해’라는 말을 했습니다.
빠떼루는 ‘파테르(paterrer)’라는 레슬링 용어로 수동적으로 경기에 임하는 선수에게 주는 벌칙입니다. 매트의 중앙에 엎드린 자세로 있게 하고 무방비 상태인 뒤를 상대방이 공격합니다. 공격과 동시에 벌칙을 받는 사람은 납작 엎드려서 뒤집히지 않으려 버둥거립니다. 손으로 잡을 곳 하나 없는 곳에서 사지를 벌리고 땅과의 공간을 최대한 좁히면서 사력을 다해 버팁니다. 무조건 버텨야 합니다. 별다른 전략이 없습니다. 여기에 실패하면 거북이 뒤집히듯 벌렁 뒤집혀버립니다.

살면서 우리는 때때로 빠떼루를 받습니다. 이유가 있을 때도 있지만 이유도 모르고 받는 빠떼루도 많습니다. 마치 독수리 발톱에 찍혀서 꼼짝 못하는 토끼처럼 인간은 빠떼루 자세를 취하고 뒤에서 치고 들어오는 공격을 견뎌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업이라고 하고 기독교에서는 신의 섭리라고 합니다. 이런 고뇌는 옛날부터 있었습니다. 그리스의 비극이 이 주제를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성경의 욥기(記)도 어느 날 빠떼루를 받게 된 욥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우스라는 땅에 욥(Job)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신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선하고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사탄이 하나님에게 가서 욥은 축복을 받았으니 당신을 섬기는 것이지 그 축복을 거둬 들이면 저주할 것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은 욥의 생명만은 건들지 말며 그 외는 무엇이든지 사탄에게 해도 좋다고 말합니다. 사탄은 욥의 모든 것을 빼앗습니다. 가축과 종들을 잃어버리고 자식도 모두 죽습니다. 자신은 온 몸에 악성 종기가 나서 잿더미에 앉아 옹기 조각으로 몸을 벅벅 긁고 있습니다. 아내조차 당신을 이렇게 만든 하나님을 저주하라고 말합니다. 욥은 견딥니다.

빠떼루에 대해 종교는 어떤 말을 할까요? 불교에서는 모든 현상은 어떤 주체가 있어서 행하는 게 아니라 조건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봅니다. 조건(연, 緣)에 의해 일어난다(기, 起)고 해서 연기(緣起)라고 합니다. 불교의 핵심을 구성하는 원리입니다. 연기에 의해 일어날 따름인데, 내가 있다는 생각이 집착을 가져오고 인과의 윤회를 계속해서 생로병사를 벗어나지 못하고 고집멸도(苦集滅道)라는 사성제(四聖諦)에 빠지게 됩니다.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실체가 없음에도 있다고 생각하는 무명(無明)에서 벗어나 무아(無我)를 깨달으면 됩니다. 선가(禪家)에서는 ‘입만 열었다 하면 틀린다’라는 개구즉착(開口卽錯)이란 말이 있는데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기독교의 세계관은 인과율이라기보다는 섭리(攝理)입니다. 신이 예정했던 계획이라고 보면 됩니다. 인간이 신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은 이상 그 계획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신은 선(善)하기 때문에 그 계획도 선하며 그래서 내가 받는 고통도 섭리 안에 있는 선한 과정의 일부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욥 이야기 결말은 이렇습니다. 욥은 자신의 고난에 대해 친구들과 치열한 토론을 합니다. 친구들은 욥이 죄를 지었거나 잘못한 게 있어서 그러니 잘 못을 빌고 회개하라고 합니다. 욥은 자신은 잘 못한 게 없다고 항변합니다. 신을 충실히 섬겼을 뿐 아니라 인간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정직하고 착하게 살아왔으니까요. 결국 욥은 하나님과 직접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하나님은 쏟아 붓듯 질문을 던지지만 욥이 답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신의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인생에서 빠떼루를 받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빠떼루를 받고 거친 공격에 뒤집혀버리기도 합니다. 저의 삶을 되돌아보면 빠떼루를 여러 차례 받은 것 같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을 해봅니다. 인과율이든지 신의 섭리이든지 원인은 있을 겁니다. 문제는 원인을 모르기에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과율과 섭리에 있는 게 인간의 운명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생로병사와 같은 인간의 실존입니다.

노후에는 직장을 떠나는 등 많은 것들이 나를 떠납니다. 변화가 많은 때입니다. 고독사 중 남자가 73%를 차지했다고 하니 유의할 일입니다. 버티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체력도 있어야 하고 정신력도 있어야 하며 인생의 사건에 대해 무뎌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추운 겨울의 온천 같은 존재가 옆에 있어야 합니다. 온천은 나를 좌절과 상처에서 회복시켜주는 곳입니다.

하와이 카우아이 섬의 연구결과가 이를 보여줍니다. 에미 워너 교수는 1955년에 태어난 신생아 중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난 201명을 추려 성장과정을 추적 조사했습니다. 예상한 바대로 대부분 불우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통념과 달리 이 중 3분의 1이 문제아가 되지 않고 밝은 성격으로 자라났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를 살펴 보니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이들을 받아 주었던 존재가 집안에나 주변에 있었다고 합니다.

밖은 추워도 몸을 담그면 따뜻한 곳. 되돌아보면 우리가 빠떼루를 견뎌왔던 것도 온천 같은 존재가 옆에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신, 친구, 아내 뭐든 좋습니다. 나를 사랑으로 따뜻하게 받아 줄 존재가 노후에 있어야 합니다. 감정적으로 약한 남자들에게는 더욱 필요합니다. 인생의 빠떼루, 나 만의 온천으로 버티는 힘을 기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 이 글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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