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 산업 >

[뉴스톡톡]'기생충' 대박난 CJ ENM, 영화 같은 투자스토리

과거 '진보 정치인' 연상 영화에 투자 이유로 '고초' 겪어
그럼에도 영화 자체만 보고 '투자 기조' 유지…'기생충' 결실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2019-06-14 08:00 송고 | 2019-06-14 09:37 최종수정
'기생충' 스틸 컷 © 뉴스1
'기생충' 스틸 컷 © 뉴스1

영화 엔딩 자막이 오르고 있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는 관객은 거의 없었습니다. 상영관 모든 좌석이 꽉 찬 상태였죠. 상당수 관객은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극장 밖으로 빠져나온 일부 관객은 담배 연기를 뿌옇게 내뿜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상영 직후 극장가 풍경입니다.

'기생충'은 올 상반기 한국 영화계 최대 화제작입니다. 올해 세계 최대 예술영화제 '칸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다만 영화는 관객에게 친절한 영화는 아닌 듯합니다. 이해하기 어렵거나 완성도가 낮다는 게 아닙니다. 가볍게 볼 영화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영화 외적으로도 '기생충'은 영화계에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바로 CJ ENM의 투자스타일인데요. 과거 CJ ENM은 진보적 가치를 염원했던 어느 한 정치인을 연상시키는 영화에 투자했다는 이유로 지난 정권 때 고초를 겪었습니다. '작품성'만 보고 투자한 것일 뿐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항변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기생충' 역시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스토리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작품성'만을 보고 투자를 결정했고 소위 '대박'을 터트렸습니다. '새옹지마'라는 한자성어가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CJ ENM의 투자 스토리도 어찌보면 한편의 영화 같은 느낌입니다. 
 
◇'선'을 지키라는 부자, 넘어서려는 빈자…결국 '파국'

'기생충'은 부자 가족과 가난한 가족이 한 공간에서 만나면서 발생하는 '비극적인 우화'입니다. 부자 가족인 박사장(이선균 분)네는 '선'을 지키기를 요구합니다. 가난한 가족인 기택(송강호 분)네는 그 선을 넘어서려고 합니다. 팽팽한 활시위처럼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줄다리기에 관객은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영화는 무엇보다 '가난한 자는 선하고, 많이 가진 자는 악하다'는 통념을 비틉니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속 대사를 통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던집니다. "(부자들은) 순진하고 사람을 잘 믿고, 꼬인 데가 없다."

관객은 영화 막바지에 이르러 결론을 마주합니다. "부자들이 꼬이지 않은 것은 좋은 것만 보고 험한 꼴을 겪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관객은 가난한 가족이 하루하루 '생존 투쟁'을 벌이는 현실을 직면합니다. 우아한 부자와 추레한 빈자는 한 공간에서 기어이 화합하지 못하고 파국을 맞습니다.

5월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CGV용산에 영화 '기생충' 포스터가 걸려있다. 2019.5.30/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5월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CGV용산에 영화 '기생충' 포스터가 걸려있다. 2019.5.30/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기생충 투자때 '이념' 고려안해…"대중성·작품성 보고 판단"


봉준호 감독은 전작인 '옥자' '설국열차'에 이어 '기생충'에서도 계급 갈등을 다룹니다. 그러나 '희망'의 끈을 놓지 않던 전작과 달리 이 영화 속 '계급 사회'는 결국에도 개선되지 않습니다. 계급은 이념적으로 왼쪽에 계신 분들이 적극적으로 개선을 요구하는 문제이죠. 계급 갈등은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 대목에서 '기생충' 배급사인 CJ ENM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대기업인 CJ ENM이 진보적인 의제(議題)를 다룬 영화에 투자한 게 역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닙니다. CJ ENM은 진보적 가치를 염원했던 어느 한 정치인을 연상시키는 영화에 투자했다는 이유로 지난 정권 때 고초를 겪었습니다. 당시 정부 고위 관계자는 CJ ENM 주요 임원에게 "물러났으면 좋겠다"는 압박성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필요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기생충' 감독인 봉준호 감독도 당시 정부의 '블랙리스트' 명단에 포함됐습니다.

CJ ENM 영화부문 관계자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일각의 시선처럼 진보적인 성향의 영화를 선호하느냐'고. 이 관계자는 딱 잘라 답했습니다.

"투자 검토 과정에서 영화의 이념적 방향이나 지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갖춘 작품인지 살펴본 뒤 투자를 결정할 뿐이다. 현 정권이든, 전 정권이든, 전전 정권이든 마찬가지다. 연출을 맡은 봉준호 감독, 출연을 결정한 배우들에 대한 믿음과 기대감도 이번에 '기생충' 투자를 선택한 배경이다.”

◇창작자 자유·권리 보장…'모두'가 기억하는 영화로 남을 듯

영화 그 자체만 보고 투자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전 정부를 지나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이 같은 투자 기조를 바꾸지 않은 셈입니다. 꾸준하면 결실을 보는 법입니다. '기생충'이 그 열매입니다. '기생충'은 개봉 11일 만에 700만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1000만 관객 돌파는 시간문제입니다.

대기업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는 영화계 일각에서도 "CJ ENM이 영화 산업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물론 특정 부분에 대해 CJ ENM에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무시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럼에도 이 기업이 대규모 투자사 가운데 창작자의 권리와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려는 노력은 평가할 만합니다. '기생충'은 영화 투자사도, 감독도, 배우도, 관객도 모두 기억하는 영화로 남을 듯합니다.

봉준호 감독이 5월25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고 배우 송강호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봉준호 감독이 5월25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고 배우 송강호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mrlee@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