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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스토리]③"남들은 힘들다지만 내겐 '평생' 하고 싶은 일" 왜?

편의점에서 일하는 40~60대 점장·점주 이야기
일 고단하지만 '일 할수 있어서' 행복…기술·자본 없는 퇴직자 현실

(서울=뉴스1) 정혜민 기자 | 2019-06-01 07:30 송고
편집자주 편의점은 '2019년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최저임금 인상, 소상공인 폐업, 청년 실업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모순이 집약된 공간이다. 취업하지 못한 20대 청년도, 실직한 50대 가장도 편의점에서 '알바'를 한다. 올해도 최저임금 인상 수준을 놓고 '자영업자'인 편의점주와 아르바이트생 간 대립이 예고돼 있다. 24시간 환하게 빛나는 편의점 안에도, 물론 희망은 있다. <뉴스1>은 편의점 아르바이트 직원과 점장, 점주들을 만나 이들이 남몰래 품은 '희망'을 들어봤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2018.12.24/뉴스1 © News1 오장환 기자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2018.12.24/뉴스1 © News1 오장환 기자

"제발 좀 맞춰봐. 돈 바꾸러 온 역사가 없어. 내가 이렇게 돈 준비해 놨잖아."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의 한 편의점 점장 이형환씨(가명·49)는 손님에게 호통을 쳤다. 손님은 프로토(경기 결과를 적중시킨 사람에게 배당금이 돌아가는 복권의 일종)를 사던 참이었다. 프로토는 500만원 미만 당첨금은 구매처에서 바로 지급한다. 편의점 인근에서 일을 하는 손님은 이 씨의 오랜 단골이다. 복권을 자주 사는데 당최 당첨된 적이 없다고 한다.
◇장사한지 어느덧 9년…마을에 녹아든 편의점

취미가 뭐냐는 물음에 이 씨는 "취미생활을 절대 가질 수 없는 게 편의점 일"이라며 "이런 진상손님들하고 농담 따먹기 하면서 싸우는 거, 그게 취미생활이고 삶의 낙이에요"라고 말했다. 이 씨가 언급한 '진상손님'은 진짜 진상손님이 아니라 이 씨와 친한 동네 단골들을 뜻한다.

단골들이 편의점에 들어설 때마다 이 씨는 빈정이고 투닥거렸다. 한 단골이 "담배 200원어치만 줘"라고 하자, 이 씨는 담배 한개비에 침을 발라 건넸다. 아이 같은 장난이었다. 손님은 "담배 200원어치만 달라고 해도 안 주고…, 나쁜 사람이야"라고 기자에게 고자질하듯 말했다. 이 씨는 "나라가 그렇게 하지 말라는데, 나라를 탓해!" 웃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이 편의점에서 점장으로 일한 지 어느덧 9년째. 낡은 마을에 들어선 신식 편의점도 마을에 녹아들기에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 이 씨는 "단골 장사죠, 뭐"라고 말했다. 기자가 본 단골들은 근처에서 택배를 배달하거나 음식점을 운영했다. 인근에서 일하다 잠깐 들린 그들도 편의점에서 이 씨와 투닥이는게 휴식이었다. 편의점이라는 공간에서 동네 주민이 모여 일상을 나누고 웃음꽃을 피우는 캐나다 시트콤 드라마 '김씨네 편의점'이 떠올랐다.

이 씨가 일하는 편의점에는 특별한 것이 하나 있다. 매일 저녁 이 씨가 일하는 편의점 앞에는 한 할머니가 좌판을 펼친다. 주로 떡과 제철 과일, 채소를 판다. 할머니의 영업방식은 시골 장터와 다르지 않다. 선심 쓰듯 한두 개만 사려고 접근했다간 '싹쓸이'를 강요받기 일쑤다. 할머니는 몹시 추운 겨울날에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리를 지킨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정체(?)를 알고 나면 더 이해하기 어렵다. 이 할머니는 동네에 건물을 두 채나 보유한 '알부자'다. 경기도 인근에 땅을 몇 만평 가지고 있다는 소문도 나돈다. 이렇게나 돈이 많은 할머니가 세도 안 내고 남의 가게 앞에 노점을 한다니, '고생스럽겠다' 싶으면서도 '얄밉다'는 마음도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 씨는 할머니가 훨씬 부자인 것을 알면서도 편의점 앞에서 노점하는 할머니를 안타까워했다.

이 씨는 "저희 매장에 지장있는걸 파시는 것도 아니고 저희 영업에 지장이 없으니까 (할머니의 노점에 관여하지 않는다)"며 "(할머니가 노점을) 안해도 되는데 추운날에도 나오시고 추워서 박스 덮고 졸고 계신걸 보면 많이 안타까워요"라고 말했다.

할머니에게도 사연은 있었다. 근처에서 방앗간을 운영하며 떡을 파는 아들네 장사가 신통치 않다는 것. 떡은 하루만 지나도 딱딱해져 상품성이 사라진다. 할머니는 저녁이 되어도 팔리지 않는 아들네 떡을 가지고 나와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편의점 앞 큰 길에서 팔았다. 매일 노점을 나오는 할머니는 마을의 유명인사다. 동네 주민들이 "오늘은 다 못팔아서 어떻게 해"라며 한 마디씩 거들고 지나갔다.

할머니는 "이렇게 나와있는게 '챙피해'"라고 했다가도 "돈 한 푼 없을 때부터 이렇게 고생해서 '챙피하지 않아'"라고 말했다. 말이 앞뒤가 맞지 않았지만 무슨 뜻인지 충분히 와닿았다. 할머니는 "아들을 도와줄 수 있으면 돕고 싶다"며 "다리 아프고 허리 아프면 도와주고 싶어도 못도운다"고 웃어보였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남들은 힘들다지만…편의점 일 '평생' 하고 싶어"

"아프지만 않고 오래도록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거 말고 욕심은 없어요"

지난 28일 늦은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만난 편의점주 권숙자(가명·64)씨는 무릎이 아파 일을 못 할까 봐 걱정이다. 기자가 이때까지 만난 편의점주들은 '쉬고 싶다. 잠을 좀 자고 싶다'고 말했는데 권 씨는 일하지 못하게 될 그 날을 미리 걱정했다.

보니까 앉아서 일하기도 마땅치 않았다. 손님이 쉼 없이 들어오고 자꾸 매대 뒤편에서 담배를 꺼내야 하기 때문이다. 권 씨는 "편의점 일을 '평생'하고 싶다"고 했다. "주말에 아들이 (편의점을) 봐준다고 하면 집에서 테레비 조금 보다가 (내가) 편의점에 나오게 되더라고요. 일을 안 하고 종일 집에 있으면 무료해서…"

권 씨는 원래 식당에서 서빙을 했다. 남편이 직장에서 은퇴하자 함께 옷 가게를 차리면서 자영업자가 됐다. 그 옷 가게는 4년 만에 실패했다. 지인의 추천으로 편의점을 열었고 지금까지 6년째 운영 중이다. 권 씨는 "옷가게로 손해를 너무 많이 봤다"며 "편의점은 크게는 못 벌어도 손실은 없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평생을 일했지만 권 씨는 계속 일하고 싶어 했다. 평생을 일해온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노동과 멀어지기도 쉽지 않다. 한국인 기대수명이 80세가 넘으니 권 씨도 앞으로 20년은 더 살아야 한다. 한편으로는 '한국인 DNA에 성실 두 글자가 콕 박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다.

물론 어려움도 있다. 권 씨는 "남편이랑 교대로 근무하니까 집에 경사가 있어서 예식장에 가더라도 남편이 가거나 제가 가거나, 혼자 가야죠. 그렇지만 편의점에 시간이 매여있다뿐이지 (편의점을) 평생 하고 싶어요. 직장인들도 마냥 평생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정년까지 못 가는 사람도 많고…"라고 말했다.

요즘은 편의점이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한다. 편의점 바로 옆에 편의점이 들어서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그래도 은퇴 후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크게 벌지는 못하더라도 적은 위험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가장 만만한 일이 편의점이라는 설명이다. 편의점주들은 주변 음식점이나 옷가게가 매일같이 폐업하는 사례를 너무나 많이 보면서 '그래도 편의점이 낫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대화가 끝날 때쯤 권 씨 남편이 편의점에 들어왔다. 식사 후 둘은 교대한다. 권 씨 남편도 "남들은 (편의점 일이) 힘들다, 하는데 마음먹기 달린 거죠"라고 전했다. 부부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묻어났지만 미소만큼은 떠나지 않았다.


hemingwa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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