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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 몰두" 이런 스포츠는 없다…게임중독 이유는

"승부욕 자극·성취감"…행동 억제하는 뇌 성숙 더뎌
사용시간 정하는 '가족사용원칙' 중독 예방하는 효과

(서울=뉴스1) 음상준 기자 | 2019-05-27 17:23 송고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정상적인 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게임에 몰두하는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세계보건기구(WHO) 결정을 국내 의학계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인간의 뇌는 충동을 조절하는 전전두엽이 가장 늦게 성숙하기 때문에 청소년기 중독에 빠질 위험이 높다.

27일 정영철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게임중독에 빠진 청소년들은 주중 3시간 이상, 주말에는 6~12시간 이상 게임에 몰두하는 경우를 흔하게 발견한다"며 "엄청난 학업 부담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게임을 통해 현실에서 느끼는 좌절감을 만회하고 행동 주체로서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20~30년 전만 해도 부모들의 걱정은 텔레비전을 과도하게 시청하는 것이었다"며 "게임은 이를 뛰어넘는 재미를 주고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청소년과 젊은 대학생들이 게임중독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들은 게임중독에 빠지는 원인을 뇌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인간의 뇌는 태어난 이후부터 계속해서 성숙하는 과정을 거친다. 성장 대신 성숙이란 표현을 쓰는 이유는 단순히 뇌의 크기만 커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흔히 뇌가 성숙하는 과정을 '가지치기'(pruning)에 비유한다. 가지치기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정보 처리와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지만, 반대로 너무 많이 일어나면 연결망이 약해져서 정보를 처리할 때 오류가 발생한다.

인간의 뇌는 사람마다 가장 적합한 신경연결망을 만드는 성숙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고속전철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이를테면 국내 고속열차는 서울과 대전, 대구, 부산 순으로 연결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어떤 사람의 뇌는 일부 지역을 건너뛰고 다른 지역으로 연결될 수 있다. 뇌 성숙은 이처럼 개인 차이가 존재한다.

유전적인 요인도 중요하지만, 소아청소년 시절에 어떤 환경에서 어떤 양육을 받고 무엇을 경험하느냐에 따라 뇌 연결망은 조금씩 차이가 생긴다. 주목할 점은 충동조절을 담당하는 뇌의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성숙 속도가 제일 느리다는 것이다.

사람은 사춘기에 접어들면 뇌가 다양한 자극을 추구하고 학습하려는 충동이 강해진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예측하고 억제하는 전전두엽 기능이 약한 시기가 바로 청소년기다. 초등학생 때까지 온순했던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갑자기 충동적으로 돌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영철 교수는 "게임은 사용자가 계속해서 집중하고 긴장감을 잃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며 "너무 어렵거나 쉬워서도 안 되고, 실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대결을 유도해 승부욕을 자극하고 실력이 점차 향상돼 성취감을 준다"고 분석했다.

그는 "게임을 하다 보면 어느 정도 운이 따르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이는 큰 즐거움으로 느껴진다"며 "인간의 뇌가 최대한 즐거움을 느끼도록 설계돼 있다"고 강조했다.

게임중독을 예방하려면 자녀가 어릴 때부터 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일명 '가족사용원칙'을 만들어야 한다. 게임을 하더라도 하루에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을 정하고, 부모도 이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 부모의 일관성 있는 훈육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이가 게임이 빠져 집중력이 떨어지고 우울감과 충동성을 보인다면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 후 진료를 받는 것을 권한다.

게임중독을 단순히 청소년 문제로 보는 것은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게임중독에 빠진 청소년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20~30대 젊은 성인들도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며 "특정 연령대 문제로 보는 것은 근거가 약한 만큼 역학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정신의학회는 게임중독 진단 기준으로 게임을 끊었을 때 금단증상이 있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지를 꼼꼼히 따진다"며 "국내에 새로운 진단체계를 만들 때 미국 사례를 고려하는 등 엄격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국내에서 게임중독이 공식 질병으로 분류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관련 현황 조사를 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5년마다 개정하는 KCD에 게임을 포함하려면 내년은 촉박하다. 적어도 5년 주기 개정 시점인 2025년 이후에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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