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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칸현장] '12살 어리숙한 영화광' 거장이 되다…봉준호의 영화 인생 26년

(칸(프랑스)=뉴스1) 정유진 기자 | 2019-05-26 11:37 송고 | 2019-05-26 19:21 최종수정
FRANCE-CANNES-FILM-FESTIVAL © AFP=뉴스1
"저는 12살의 나이에 영화 감독이 되기로 마음 먹은 소심하고 어리숙한 영화광이었고, 이 트로피를 손에 만지게 될 날이 올 줄 몰랐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 소감이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기생충'으로 제72회 칸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안았다. 한국 영화 100주년사에 처음 있는 낭보다. 한국 영화 감독으로 최초의 황금종려상 수상이며 우리나라 영화 역사상 6번째 칸영화제 본상 수상이다.

'기생충'은 21개 경쟁 부문 작품들과 경쟁을 펼친 끝에 9명의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지난해 제71회 칸영화제에서는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이 황금종려상을 받았는데, 연이어 아시아 감독이 상을 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1969년생인 봉준호 감독은 대구 출신으로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으며 한국 영화아카데미 11기 출신이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한국 근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 가 중 한 명인 박태원씨다. 박태원씨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천변풍경' 등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더불어 아버지인 고 봉상균 영남대학교 미대 교수는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로 국립영화제작소에서 미술실장으로 근무하며 초창기 한국 영화계에서 의미있는 역할을 했다.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포스터 © 뉴스1

봉준호 감독은 만 24살이었던 1993년 단편 영화 '백색인'으로 데뷔했다. 이후 '지리멸렬' '프레임 속의 기억들' 등 단편 영화들과 몇편 영화의 각본 등을 거쳐 2000년 상업 장편 영화인 '플란다스의 개'로 입봉했다. '플란다스의 개'는 흥행면에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비평적으로는 좋은 평을 얻었다.

출세작은 '살인의 추억'(2003)이었다. 화성연쇄살인 사건이라는 실제 사건을 재해석한 이 영화는 그해 영화 시상식을 휩쓸었을 뿐 아니라 5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며 크게 흥행했다. 이어 봉 감독은 3년 후 '괴물'(2006)을 선보였고, '괴물'이 천만 영화에 이름을 올리면서 세계적으로도 관심을 받는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마더' '설국열차' '옥자' 포스터 © 뉴스1

이후에도 봉준호 감독은 '도쿄!'(2008) '마더'(2009) '설국열차'(2013) '옥자'(2017) 등을 선보였다. '마더'를 제외하면 세 영화 모두 글로벌 프로젝트였다. 이 영화들은 보편적 메시지를 자신만의 색채로 만들어내는 봉준호 감독의 천재적인 감각이 전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봉준호 감독이 선보였던 7편의 장편 영화 중 초기 2편을 제외한 5편은 모두 칸영화제와 깊은 인연이 있다. '괴물'은 제59회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을 받았고, '도쿄!'는 제61회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마더'는 제62회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을 받았다.

몇 년간 칸영화제의 유망주로 활약했던 그는 드디어 2017년 '옥자'로 생애 처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이후 2년 후 두번째로 진출한 경쟁 부문에서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 수상에 성공하며 '한국 영화 마스터'로 인정을 받게 됐다. 

봉준호 감독은 이명박 전 대통령 정권 시절 블랙리스트 명단에 이름이 오른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이름은 이창동 박찬욱 감독 등 영화감독 52명과 함께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라 당시 국정원의 퇴출활동 대상이 되기도 했다.


eujene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