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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머리 못 깎는' 출연연…"정부가 예산 고삐 쥐고 회초리 휘둘러"

[위기의 출연연]<中>출연연 내년 예산 삭감 예고에 '허탈'
정부의 구조조정 압박에 연구현장 혼란

(서울=뉴스1) 남도영 기자, 최소망 기자 | 2019-05-07 07:00 송고
편집자주 1960년대부터 대한민국 경제성장을 견인해 온 '출연연'이 벼랑 끝에 섰다. 지난 20여년 연구과제중심제도(PBS)에 갇혀 눈앞에 놓인 과제에만 급급해 온 사이 국가 핵심 연구기관의 역할은 기업과 대학으로 넘어갔고 이젠 존재감마저 희박해지고 있다. 한 해가 멀다하고 출연연 개혁을 위한 각종 '처방전'이 쏟아졌지만 개선의 조짐이 없자 정부는 결국 '예산지원 축소'라는 극약처방을 꺼내들었다. 왜 출연연은 '천덕꾸러기'가 됐을까. 출연연이 처한 현실과 극복 방안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그동안 정부가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이제 와서 이런 대접을 받으니 억울하다."

2020년 정부출연금이 삭감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은 한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 관계자는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현재 25개 출연연 중 많게는 20곳 이상이 내년 예산이 삭감될 위기에 놓여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각 출연연으로부터 기관 고유사업을 중심으로 '정부출연금'과 '자체수입' 비중을 조정한 자체 예산안(수익구조 포트폴리오)을 제출 받아 적정성을 검토하고 있다. 이 포트폴리오가 '합격' 판정을 받으면 필요한 만큼 예산을 확보할 수 있지만, '불합격'을 받으면 삭감 페널티를 받는다. 이미 불합격을 받은 출연연들은 예산이 삭감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은 상태다.

◇출연연 문제의 시작과 끝 'PBS'

정부는 지난해부터 '역할과 책임'(R&R)이란 이름의 출연연 개선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변화한 연구환경에 발맞춰 출연연이 각자 자신들의 역할과 책임을 재정립하고, 이에 맞춘 예산 포트폴리오까지 직접 작성하는 게 골자다. 이 정책은 결국 '연구과제중심제도'(PBS) 개선과 맞닿아 있다.

그동안 정권마다 출연연 개혁은 과학기술 정책의 뜨거운 화두였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거의 매해 원인진단과 처방이 나왔지만, 결론은 항상 PBS 개선 문제로 수렴돼왔다.
1996년 도입된 PBS는 출연연 고유임무 수행을 위한 연구비 등을 '정부출연금'으로 지원하고, 나머지 인건비 등의 운영 예산은 외부 과제 수탁 등을 통해 벌어들인 '자체수입'을 통해 충당하는 시스템이다. 출연금에만 의존하던 출연연 운영의 비효율을 줄이고, 기업·대학과의 경쟁을 통해 연구 역량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오히려 과제 수주와 단기 과제 수행에 매몰됐다. PBS 제도가 오히려 출연연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주범으로 지목됐다. PBS 제도 하에 출연연 연구자들은 과제를 수주하는 '영업맨'으로 전락했고 인건비조차 보장되지 않는 운영 환경 탓에 출연연은 고유한 임무보단 눈앞에 떨어진 단기 과제에만 치중하게 됐다. 이 때문에 출연연 연구자들은 PBS를 폐지하거나 축소하고, 정부출연금을 확대해 안정적인 연구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현 정부 역시 PBS의 폐지를 비롯한 가능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개선 방안을 검토했다. 그 결과 PBS는 유지하면서 R&R을 중심으로 출연연 스스로 PBS 비중을 조절하는 안을 내놨다.

◇출연연, "PBS 그대로인데…강요된 '구조조정' 반발"

정부의 출연연에 대한 R&R 요구는 수년간 제자리인 출연연 개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그동안 참여정부 시절 '정부출연연 연구활성화 방안'부터 '정부출연연 운영효율화 추진방안', '출연연 선진화 추진방안'(이명박정부), '출연연 고유임무 재정립', '정부 R&D 혁신방안'(박근혜정부) 등 출연연 개혁 방안이 쏟아졌지만 여전히 답보상태다. 결국 정부는 각 출연연이 자율적으로 개선 방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공'을 넘긴 셈이다.

하지만 출연연 입장에서는 정부가 예산 고삐를 쥐고 회초리를 휘두르고 있다며 반발한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혁신의지'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상 출연연에게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까지 R&R 맞춰 예산안을 제출한 출연연은 대부분 출연금을 늘려달라고 요구했다가 과기정통부의 '퇴짜'를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출연연은 각 정부마다 쏟아진 정책적 피로도 누적된 상태다. '녹색성장', '창조경제', '일자리 창출' 등 각 정부의 정책기조에 따라 던져진 '미션'을 수행하느라 고유임무에 집중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이번 정권에서도 '탈핵정책'에 따라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주요임무가 원전 개발에서 해체로 순식간에 바뀌는 등 '외풍'에 흔들리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 정부가 전반적인 시스템의 개선없이 곳간 문을 걸어 잠그고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처사'라는 지적이다.

공공연구노동조합 관계자는 "현 정부의 R&R은 출연연의 자율적인 역할과 임무 설정이 아니라 부처의 강제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며 "출연연 내부 또는 출연연 간의 역할과 책임이 제대로 논의되기도 전에 정부가 R&R을 과도하게 강요하고 예산통제를 병행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somang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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