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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수화기 너머 목소리만으로도 알겠는데…40년 걸렸다

1979년 실종아동 서경희씨…가족들 끈질긴 수색에 '집으로'
"다른 실종아동 가족들도 찾을 수 있다는 희망 잃지 않기를"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2019-05-03 06:30 송고 | 2019-05-03 09:18 최종수정
지난 1979년 경기도 부천시에서 실종됐던 서경희씨(가운데)가 지난 29일 서울 성동구의 부모님 집에서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9.4.30/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지난 1979년 경기도 부천시에서 실종됐던 서경희씨(가운데)가 지난 29일 서울 성동구의 부모님 집에서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9.4.30/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언니야…언니 맞지?"
"그래. 맞아 언니야. 왜 나 안 찾았어. 왜?"
"아니야. 엄마랑 얼마나, 얼마나 찾았는데…"

언니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동생의 목소리에 한동안 말을 이을 수 없었다. 40년 만에 듣는 목소리였지만 어릴 적 손을 맞잡고 동네를 함께 뛰어다닌 동생의 목소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원망과 함께 죄스러운 마음에 눈물이 계속해 흘러나왔다.
장기실종자 서경희씨(49·여)가 행방불명된 지 40년 만에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의 품에 안겼다. 상봉식은 지난달 29일 인천지방경찰청에서 진행됐다. 뉴스1은 상봉식을 마치고 서울시 성동구에 있는 부모님 댁으로 돌아온 경희씨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평생을 기다려왔던 가족들과 만난 경희씨는 죄인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인터뷰 중간, 중간 답답했던 마음에 가슴에 손을 올리고 말을 채 마치지 못할 때도 있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 가족들을 찾을 생각을 못 했다"는 경희씨의 말에 가족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묻어났다.

1979년 11월5일 학교에 가기 싫다며 떼를 쓰던 경희씨는 어머니 이연자씨(74) 손에 이끌려 등교했다. 어려운 형편에 일을 쉴 수 없었던 연자씨는 '엄마랑 더 있고 싶다'는 딸을 억지로 등 떠밀어 학교 정문으로 들여보내고 나서야 일터로 향했다. 하지만 그날 딸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 경희씨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었다고 했다. 친구들의 괴롭힘에도 경희씨는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이를 털어놓지 못했다. 40년이 지난 지금은 잘 기억할 수 없지만 경희씨는 학교를 마치고 무작정 주변을 지나는 버스를 탔다. 정신을 차려보니 대구시 인근의 한 시골 마을이었다.

당황해하고 있는 경희씨를 발견한 주변 어른이 경찰서까지 데려다주었지만 경찰들은 부모를 찾아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다. 경희씨는 경찰관들이 부모님의 이름도 전화번호도 묻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아동 유기가 만연했던 시절 경찰은 경희씨도 부모에게 버려진 아동으로 치부해버렸다.

경희씨는 인천에 있던 보육원으로 옮겨졌다.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치고 보육원을 나온 경희씨는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과 마주했다. 공장일을 시작해 안 해본 일이 없었다. "하루하루 사는 게 너무 힘들어 가족들 생각하기도 어려웠다"고 경희씨는 말했다. 과거를 이야기하던 경희씨는 "그때를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며 말을 끊기도 했다.

나이가 들고 철이 들어서도 경희씨는 부모님들 찾을 엄두가 안 났다. 하루하루 먹고사느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른이 되고 보니 돈도 벌고 성공을 해야지 부모님을 찾아갈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딸이 집에 돌아오지 않았지만 누군가 맡아서 잘 키워주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던 연자씨는 고생만 했다고 이야기하는 딸의 얼굴을 바라보다 "너무,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서경희씨의 어머니 이연자씨(왼쪽)가 딸의 실종 당시의 사진을 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아버지 서재옥씨(오른쪽)가 딸을 손을 꼭 쥐고 있다. 2019.4.30/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경희씨의 어머니 이연자씨(왼쪽)가 딸의 실종 당시의 사진을 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아버지 서재옥씨(오른쪽)가 딸을 손을 꼭 쥐고 있다. 2019.4.30/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딸을 기다리고 있는 연자씨의 마음도 타들어 있었다. 애간장이 녹는 듯한 고통이었다. 어느새 몸에서는 암세포가 자라났고, 연자씨는 두번의 위암 수술을 받았다. 딸을 찾으러 전국을 돌아다니고 방송에도 출연해봤지만 딸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연자씨는 "애타게 찾았는데 결국 찾지 못해 포기했었다"고 말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던 둘째딸 서경선씨(47)가 언니를 찾는 일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러다 올해 경찰의 '장기실종자 집중 수사 기간'을 이용해 인천·부천 지역의 아동 보호 기관을 집중적으로 수색한 결과 언니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8개의 기관 중 마지막 기관을 방문했을 때 경선씨는 언니의 이름과 같은 이름을 쓰고 있는 아동의 기록 카드를 발견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한을 풀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언니를 찾는 활동에 나선 경선씨는 기록 카드의 사진을 봤을 때 혈육으로서의 끌림 같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수소문을 거쳐 언니의 전화번호를 알아낸 경선씨는 전화기를 들었다 "서경희씨 맞으시죠?" 어색한 물음에 긍정의 답변이 나오자마자 언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언니!"라는 호칭이 40년 만에 경선씨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결국 끈질긴 노력이 가족을 다시 하나로 만들었다. "이제 딸을 만났으니 같이 하고 싶은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연자씨는 딸을 찾은 것만으로도 더는 바라는 게 없다고 했다. 동생인 경선씨는 "언니랑 해 보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다"고 말하곤 경희씨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어보였다.

마지막으로 경희씨 가족들은 지금도 잃어버린 아이를 찾고 있는 가족들이 희망을 잃지 말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연자씨는 "경희가 돌아왔듯이 모두가 부모들의 품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potg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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