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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범죄 막을 시스템 부실…신고자들 불안에 떤다

‘보복당할 우려’ 판단기준·현장 대응 매뉴얼 없어
“형식적·단편적·행정 편의주의적 피해자 보호 안 돼”

(부산=뉴스1) 조아현 기자 | 2019-05-01 08:00 송고 | 2019-05-01 12:07 최종수정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News1 DB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News1 DB

최근 자신을 경찰에 신고하거나 법정에서 불리한 진술을 해서 중형을 받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해코지를 가하는 보복범죄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이 때문에 피해자 보호를 위한 시스템이 여전히 부실하다는 지적과 함께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보복을 당할 우려가 있는 경우'의 판단 기준과 피해자 보호에 대한 구체적인 매뉴얼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지난 15일 오후 6시50분쯤 피의자 임모씨(57)는 부산 사상구 삼락동의 한 아구찜 식당 입구 바닥에 휘발유를 쏟아붓고 라이터로 불을 질렀다. 임씨는 약 5분뒤쯤 인근 국밥집에도 페트병 속 남은 휘발유를 마저 붓고 불을 내 경찰에 구속됐다.

식당에서 난동을 부리고 업주를 상대로 폭력을 휘둘렀다가 자신을 112에 신고해 처벌을 받게되자 앙심을 품고 저지른 보복 범죄였다.

지난 10일에는 친딸을 흉기로 살해하고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전모씨(74)가 폭력배를 고용해서 아내와 며느리를 협박하다 검찰에 송치됐다.
전씨는 지난해 9월 15일부터 10월 30일까지 아내 소유의 건물 주점에 미성년자를 일부러 출입시켜 청소년보호법 위반으로 단속되도록 만들거나 며느리가 근무하는 직장에 폭력배들을 보내 욕설과 협박을 일삼도록 사주한 혐의를 받았다.

전씨는 함께 교도소에서 생활하던 무기수 김모씨(55)의 소개로 이모씨(26)와 접견한 뒤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했다. 경찰이 교도소를 압수수색해 발견한 편지 378통 가운데 100여통에는 구체적인 범행 지시가 적혀있었다. 현행법상 교도소 수용자에 대한 서신을 검열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한 보복 범죄였다. 

전씨는 살인 혐의로 법정에 섰으나 가족들의 진정서 제출로 재판에서 중형을 선고받자 앙갚음을 하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교도소는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고 재범 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경찰의 공문이 오자 부랴부랴 '형집행법 수용관리 및 계호업무 등에 관한 지침'에 따라 전씨를 서신검열 대상자로 지정하고 접견때 녹음·녹화를 진행하기로 했다.

현행 형사사법시스템 안에서는 신변안전조치 여부를 결정하는 경찰, 검사, 판사가 3원화로 나뉘기 때문에 혼선이 있을 수 있고 보복을 당할 우려에 대한 판단기준이 모호할 때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신변안전조치 실시여부를 제때 알려주지 않아 신고자나 피해자가 인지하지 못하거나 자신이 어떤 보호제도를 요청해야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도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재범 위험성이 높은 만기 출소자에 대한 관리도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평가하고 보복범죄를 막지 못한다면 사법정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2014년 발표된 형사정책연구원의 '범죄신고자 보호 현황과 과제' 연구논문을 살펴보면 피해자와 범죄 신고자의 실질적인 보호를 위해서는 '보복을 당할 우려가 있는 경우'의 판단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예를들어 △피의자가 보복범죄로 인한 법정형보다 형이 중한 범죄군에 속한 경우 △범인에게 이미 신원이 노출된 경우 △범죄 신고자(또는 피해자)가 신원관리카드 등 열람불허를 요청한 경우 등이다. 

하지만 피해자가 처음으로 마주하는 사법기관은 경찰이기에 현장에서 곧바로 재범과 보복범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과 매뉴얼 마련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인적사항 공개 금지 범위를 확대하고 수사단계에서 인적사항 기재을 생략하는 조치가 공판단계까지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최근 도시철도 에스컬레이터에서 불법 촬영물 피해를 당한 20대 여성은 뉴스1 취재진에게 "그 사건 이후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길을 지날 때마다 가해자와 마주칠까봐 겁이 난다"며 "SNS나 인터넷을 통해 나의 신원을 알아내지는 않을지, 보복행위가 있지는 않을지 불안감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피해자 보호와 관련된 강제규정이 없다는 것은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아무리 보호해도 지나침이 없다'는 의미"라며 "보복의 위험성에 노출되지 않도록 만드는게 형사 사법의 큰 축인데도 불구하고 현재 시스템 안에서는 가해자에 대한 형벌을 부과하는 쪽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범죄 피해자는 사건이 발생하면 당황스럽고 두려움을 가진 상태이기 때문에 서면으로 된 권리보호제도를 단순히 건네주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며 "심적으로 안정된 상황 속에서 피해자에게 어떤 혜택이 주어지는지 이만큼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충분히 설명하고 피해자가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과정이 거쳐져야 제대로된 고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형식적 또는 단편적이거나 행정 편의주의적인 피해자 보호제도는 개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choah4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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