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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사 CEO 인터뷰] 메리츠 존 리 "韓 노후준비, 완전히 무너졌다"

"금융문맹률 가장 높아…주식투자 조기교육 필요"
"우먼펀드 등 서비스 대중화 박차…은퇴는 없다"

(서울=뉴스1) 정연주 기자 | 2019-03-17 06:05 송고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6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있는 본사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3.6/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6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있는 본사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3.6/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최근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재미있게 봤다. 사교육이 화두였는데, 사교육비에 들일 돈을 주식에 투자해서 노후준비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안나오더라. 노후준비를 잘 해 나중에 더 부자가 돼서 아이들이 행복해졌다는 것으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웃음)."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의 농담 한마디에는 그간 한국에서 몸소 부딪혔던 주식 투자 편견에 대한 짙은 아쉬움이 묻어 나왔다. 리 대표의 한국 주식 투자 경력은 내년이면 30년 차에 접어든다. <뉴스1>은 지난 6일 서울 북창동 사무실에서 세계 최초 한국 투자 펀드인 '코리아펀드'의 주역이자 '가치투자 전도사'로 통하는 리 대표를 만났다. 

리 대표는 한국에 대해 "금융문맹률이 가장 높으며, 노후 준비가 가장 안 된 나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렸을 때부터 돈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다 보니 노후를 대비할 기회를 놓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노후준비 부재로 한국은 빈부격차가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라며 "투자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니 '왜 내가 금수저가 아닐까'라고 서로를 원망하는, 희망없는 사회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도 '업계 최초' 타이틀을 쓰고 있다. 국내 최초의 여성 친화기업 펀드인 '더우먼 펀드'를 출범시킨 데 이어, 펀드 '직접판매'와 '선물하기' 서비스를 도입했다. 틈날 때마다 전국 강연에 나서는 그는 최근 유튜버로도 변신했다. 직접 영상을 녹화하고 올리면서까지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그의 목표는 무엇일까.

-유튜버에 도전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한국의 노후 준비는 완전히 무너졌다. 노후 준비의 중요성을 호소할 방법이 없어서 직접 만나보려 했다. 투자를 알아야 하고, 주식은 해야만 하는 것인데 한국 사람들은 무조건 안된다고 얘기하니 '큰 일 났다'고 생각했다. 높은 벽을 실감하고 있다. 강연장에 가면 뒤늦게 노후에 관심이 생긴 40~60대 투자자들이 대부분이고 20~30대 사람들은 거의 없다. 

노후준비를 1살 때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에 주니어펀드를 만들었다. 펀드 홍보 겸 조기 교육 필요성을 전하기 위해서 산후조리원 강연을 시도했는데 다 거절당했다. 주변에 주식투자에 실패한 사례가 많다 보니 편견을 바꾸기 힘들다. 

-1990년대 미국에서 코리아펀드를 운용하다가, 한국으로 건너와 메리츠운용 대표를 맡은지 올해로 6년째다. 한국 시장을 직접 겪어보니 어떤 점이 인상 깊었나. 

▶금융기관이 많은데도 노후 준비가 너무 부족해서 놀랐다. 자녀 사교육비에 노후자금을 쏟아붓는 등 미래가 없는 사람처럼 소비하려 한다. 한국은 전체 회사 배당금의 95%를 10%의 국민이 가져간다. 즉 ' 아버지가 재벌 회장이면 계속 부자인 구조'다. 나머지 90% 국민은 마땅한 생산수단이 없으니 가난할 수밖에 없다. 희망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주식 투자인데 이에 대해 한국은 굉장히 부정적이다. 미국의 경우 '401K(확정기여형 기업연금제도)'의 제도 등으로 결국 많은 중산층이 생겼다. 한국에는 그런 것이 없다. 

-주식 투자 생활화나 조기 교육의 필요성을 늘 강조하고 있다. 리 대표가 생각하는 올바른 주식 투자는. 


▶1인당 국민소득 3만불 시대라고 하는데, 여기에 해당 안 되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 한국의 교육은 시험만 잘 보게 한다. 본인의 퇴직연금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블록체인에 손대는 사람도 많다. 미국은 최근 젊은 층이 부모보다 주식투자를 훨씬 많이 하고 있다. 나는 자녀에게 대학교 졸업선물 등을 펀드로 준다. 

돈을 좋아한다고 하면 속물이라고 보는 인식부터 문제다. 주식을 단순히 재테크가 아닌,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주식이라는 것은 어느 회사에 대한 오너십이 생기는 것이다. 그 회사 종업원들이 나의 노후를 위해 일을 하고 내가 그 회사를 믿고 30년을 투자하면 은퇴할 무렵 회사 가치가 올라가니 탁월한 노후 준비가 가능하다. 주식은 기다려야 한다.  

-노후대비 부재에 대해 제도적·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보는가. 

▶수수료가 높은 상품을 주로 팔면서 주식 투자에 부정적인 인식을 주는 일부 금융기관도 책임이 있다. 매체에서 주식을 단기투자에 몰두해 이야기하니 주식이 도박이란 그릇된 개념을 심는다. 한국에는 미국처럼 국가 차원의 마스터플랜이 없다. 무조건 주식하면 안된다고 가르치는 교수들도 있어 놀랐다.

금융기관 입장에서 수수료 측면에서 일반 사람들의 소액 투자는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그래서 메리츠는 펀드 직접판매를 시작해 수수료를 절반 이하로 낮췄다. 전화번호와 이름만 알면 펀드를 선물하는 서비스도 개시했다. 서비스가 보편화하면 사회가 굉장히 변할 수 있다고 본다. 

- 메리츠의 '더우먼펀드'는 '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ESG)' 관점에서 투자하는 사회책임투자펀드(SRI 펀드)라 불린다. 최근 한진그룹 이슈로 ESG투자에 관심이 커졌는데. 

▶선진국은 ESG투자를 중요하게 여긴다. 수익률을 떠나 우먼펀드로 인해 여성이 좀 더 대우를 받고 사회가 변한다면 보이지 않는 이익이 많이 생길 것이다. 일본의 경우 여성 문제에서는 선진국 중에서 꼴등이었는데, ESG투자를 잘 활용해 크게 바뀌었다. 국내 업계 변화는 아직 크지 않다. 국내에서 연기금이 이런 펀드에 투자하는 것에 비판적인 여론이 생긴다는 점에 놀랐다. 고작 1년 수익률로 판단한다. 선진국처럼 국민연금도 당연히 이런 펀드에 투자해야 한다. 

-한국 최초 기업 지배구조 펀드를 운용했다. 오랜 경험에 비춰봤을 때, 막 태동한 한국형 주주행동주의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는가. 

▶한국에서는 자본주의적 이슈를 상당히 사회적인 시선으로 본다. 주주간의 대결은 지극히 민간적인 이슈다. 미국은 주주간 분쟁이 잦으나 한국은 관련 경험이 적다. 한진칼이 상장 회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철저히 주주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 다만 제도 정립의 문제는 있다. 미국은 법적으로 완전히 소액주주편이다. 경영진이 잘못하면 구속되는 사례가 매우 많다. 미국의 경영진은 법을 안지키면 어떻게 되는지 아니까, 법을 잘 지킨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6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있는 본사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3.6/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6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있는 본사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3.6/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뮤추얼펀드에 미국처럼 개별 이사회를 두고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데.

▶우먼펀드가 그런 개념이다. 메리츠가 만들긴 했지만 외부 인사로 구성된 이사들이 의사결정을 한다. 메리츠가 이 펀드를 마음대로 없앨 수도 없다.10년 전만 해도 국내에 이런 개념의 펀드가 있었는데, 운용하기 불편하니까 슬그머니 없어졌다. 그런데 그때 펀드도 대부분 엉터리였다. 펀드 기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메리츠의 목표는. 10년 뒤 메리츠는 어떤 모습일까.

▶미래에셋 등 대형사와 경쟁할 생각은 없다. 우리는 상위 10% 보다 나머지 90%의 노후준비가 안 된 사람들을 위해서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미국의 찰스스왑이란 투자 회사가 30년 전에 이런 개념의 경영을 시도했는데, 주류들의 공격에도 버텨냈고, 지금은 미국 내 주도권을 잡고 있다. 결국 스피릿(spirit, 정신)이 중요하다.

메리츠의 행보에도 저항이 있을 것이다. 당장은 개발 비용 등을 쓰니까 순익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다. 주니어펀드도 규모 자체가 크게 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는데, 소액이 주로 모이게 되니 어쩔 수 없다. 미국 최초의 칠드런(children) 펀드는 80년 전에 만들어졌다. 이후 가입자들은 대부분 노후에 큰 이익을 거뒀다.

-자산운용업계 발전을 위한 과제는 무엇일까. 

▶정부가 세금 문제 등에 대해 방향을 잘 잡은 것 같다. 여러 과제가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퇴직연금 제도가 잘못돼 있다. 선진국은 퇴직연금을 모두 자산운용사가 관리한다. 그런데 한국은 자산운용사가 거의 하청 역할을 하고 있다. 자산운용사가 전적으로 해야 한다. 한국이 원금보장형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버린 점도 문제다. 원금보장형은 최악의 단어다.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연금이 일을 안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리 대표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 개인적인 목표는.

▶한 명이라도 더 노후준비를 하도록 이끌어갔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메리츠를 어느 수준 이상으로 올리는 것도 중요하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아닌 이상 은퇴할 생각은 없다. 나를 보고 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들에게 은퇴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아직도 자꾸 아이디어가 생각난다. 

-펀드 운용자가 갖춰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

▶'신의성실의 원칙'이란 말이 있다. 운용자가 자기 돈을 투자할 생각이 없는 것이면 고객에게 추천하면 안된다. '고객의 돈이 나의 돈보다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몸에 배야 한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이사 프로필 

△1958년 인천 출생 △서울 여의도고 졸업 △연세대 경제학과 중퇴 후 1980년 미국행 △미국 뉴욕대 회계학과 졸업△1991년 미국 스커더스티븐스&클라크 펀드매니저 △2006년 라자드자산운용 전무 △2014~현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이사 


jy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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