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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 책 선물과 책 뇌물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18-12-17 19:32 송고 | 2018-12-18 09:00 최종수정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News1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주위에 선물을 준비하는 때다. 역사를 보니 책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인기 품목이었다. 옛날 서양에서는 ‘선물’이라 함은 어디서 산 것이 아니고 자기가 직접 만든 물건을 의미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1820년대 영국에서 특이하고 화려한 장정을 한 책들이 처음 등장했고(Gift Book) 19세기 중반 빅토리아 시대에 성황을 이루었다. 대량생산이지만 직접 만든 것 같은 느낌을 주었고 내용도 수필이나 시, 단편소설 같은 것들로 채웠다. 가격도 비싼 것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 경우 아마도 뇌물로도 쓰였을 것 같다.

요즘은 그런 선물용 책이 없다. 우리가 누구에게 책을 선물하려고 할 때는 책의 외관이 아니라 내용을 기준으로 서점에서 구입한다. 그리고 누가 책을 뇌물로 사용했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필자는 이번 주에 책을 한 권 새로 낸다. 홍보를 잘 해서 성공작이 되게 하자고 출판사와 협의하다가 의외의 이야기를 들었다. 책도 가격 기준으로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 규제 대상이라는 것이다.

사실 작년에 정가가 상당히 비싼 책을 낸 적이 있는데 꼭 읽고 참고해 주었으면 하는 정부 사람들에게 보내지를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책은 규제 대상이 아니어야 할 것 같은데 공연히 받는 사람을 불편하게 할 이유가 없어서였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책도 엄연한 규제 대상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권익위로서야 책이라는 물건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할 특별한 이유는 없을 것이다.
책도 규제 대상이기 때문에 출판사가 책을 방송국이나 신문사에 일괄적으로 보내는 행동이 수량을 반영한 책 가격이 5만 원을 넘으면 위법한 행동일 가능성이 생긴다.

개인 간의 선물이 아니라 출판사가 홍보를 부탁하면서 규제 가격 이상의 책을 언론사에 보내는 것은 경제적 이익이 걸려있기 때문에 법의 규제 대상으로 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부정한’ 청탁인지는 의문이다. 나아가 비영리기관인 대학교의 출판부가 책을 보내는 것은 경제적 이익이 걸려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학생이 교수에게 캔 커피 하나를 건네도 위법이라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러면 직장 다니는 대학원생이 해외 출장길에 자기 전공분야 좋은 신간을 하나 발견하고 사와서 지도교수에게 선물해도 문제일까. 교수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교수는 학생들에게 개인적으로 밥을 사주지 못한다. 그러면 교수가 자신의 새 책을 학생에게 공부하라고 주어도 문제일까.

부정청탁금지법은 수수금지 금품등의 예외사유에 일상적인 사회생활을 보장하고 과도한 제한 소지를 방지하기 위해 8가지 사유를 구체화하고 있다. 여기에는 특정한 물품을 특정해서 규정하지는 않고 상황에 따른 예외를 규정한다. 중요한 것은 다른 법령 특히 형법의 뇌물죄가 성립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예외사유가 성립가능하다고 하는 점이다.

스페인 속담에 “선물은 마음이 열리게 하고 입을 닫히게 한다”는 것이 있는데 선물과 뇌물의 모호한 경계를 잘 나타내 준다. 모든 선물은 당사자들과 상황에 따라 뇌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책을 선물하는 행동을 형법상 뇌물죄 구성요건에 대입해 보면 책 선물이 부정청탁금지법의 규제 대상이 될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책은 내용에 따라서는 사회의 부패 수준을 낮추는 데 공헌도 할 것이다. 바로 부정청탁금지법의 입법목적이다. 예컨대 성경이나 부정부패를 척결한 외국사례를 소개하는 책이 뇌물로 사용될 수 있을까? 책 선물은 책의 속성상 사회에 긍정적인 효과도 미친다. 정보와 지식이 전파되고 문화 수준을 높여 사회의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 영세한 국내 출판업계를 지원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국내 최대 출판사의 연매출이 400억 원대라고 들었다. 펭귄랜덤하우스는 4조원이 넘는다. 개인들이 책을 사지 않는 시대이니 여력이 있는 회사와 기관들이 사서 널리 선물로 사용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농수산물 선물도 가격 한도를 예외적으로 높여주지 않았나.

전달되지 않는 지식과 정보는 의미가 없다. 뤽배송 감독의 ‘루시’(2014)라는 영화에서 모건 프리먼이 인상적인 대사를 한다. 모든 유기체는 외부에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그 본성으로 한다. 세포가 분열되면서 정보가 전달되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하는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여기에는 우리가 모르는 뭔가 ‘높은 뜻’이 있다. 책은 정보전달의 가장 전통적인 매체다. 부정한 청탁에 사용되는 여타 물건들과는 좀 다른 시각으로 보아야 하겠다.

※ 이 글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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