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수프림에 선적된 컨테이너(사진=임해중 기자)© News1

독일 엘베강의 새벽은 어두웠다. 체코와 독일을 가로질러 1000㎞가 넘는 이 강은 북해로 이어진다. 3일 강에 진입한 현대수프림은 시속 20㎞로 정속 주행을 이어갔다. 중국 상하이의 궂은 날씨에 운항이 조금 지연됐으나 속도보다는 기름값을 아끼는 게 중요했다.

8기통 디젤엔진이 탑재된 현대수프림은 건조 10년이 넘은 선박이다. 속도가 중요했던 시기에 건조돼 엔진이 거대하다. 배 크기는 작은데 기름은 많이 든다. 신조 발주한 2만3000TEU 선박에는 10기통의 저속추진 디젤엔진이 실린다. 같은 기름으로 현대수프림 대비 5배가량의 화물을 나를 수 있다. 4600TEU급 선박은 유럽 항로에 적절한 배가 아닌데 11척을 AEX 노선에 투입했다. 당분간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화주 신뢰를 이끌어내겠다는 전략적인 판단에서다. 대형 선박 투입에 앞서 바닷길을 닦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독일 함부르크 항에 들어가는 길은 상당히 고되다. 로테르담에서 밤늦게 출항해 이틀 정도 운항한다. 엘베강 지리에 밝은 도선사가 길을 안내하지만 염철수 선장은 선교(브릿지)를 떠나지 못했다. 이틀 간격으로 접안과 화물 승·하적을 해야 하는 만큼 승선인원 모두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해상인원들의 고민은 비용이다. 고정비를 줄여 조금이라도 손실 폭을 줄여야 한다. 항해 속도를 30㎞에서 40㎞ 사이를 유지해 기름 소모를 최소화하고 값이 가장 싼 곳에서 연료를 급유한다. 이번엔 기항지 중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기름을 채웠다. 기항지 중 가장 기름값이 싼 곳으로 벙커C유 3000톤 급유에 110만달러 정도가 들었다. 기름을 한번 급유하면 현대수프림은 속도를 적절히 조절하면서 14개 기항지로 이뤄진 AEX 노선을 모두 돌아야한다.

출항 준비 중인 현대수프림(사진=임해중 기자)© News1

오전 7시경 함부르크 항에 다다른 현대수프림은 접안에만 2시간가량이 걸렸다. 함부르크 항 도선사 2명과 함께 배를 120도 돌린 염 선장은 선수에서 상황을 체크하는 일항사와 수시로 무전을 주고받았다. 배를 돌릴 때 물살이나 바람에 휩쓸려 선체가 항만에 닿기라도 하면 낭패다. 정교하게 위치를 바꾼 배는 천천히 후진해 위치를 잡았다. 선박 전·후방과 항만을 스프링라인(SPRING LINE)으로 고정하자 접안이 끝났다.

배가 항만에 도착했지만 작업은 계속됐다. 항해사들은 건물 1층에 해당되는 UPP 데크에서 승·하역 화물 정보를 체크했다. 낡은 작업복을 입고 분주하게 움직이던 항해사들의 일은 점심 직전까지도 계속됐다.

이날에만 1500TEU의 화물을 내리고 컨테이너 2600개를 새로 실었다. 피곤한 일정이었지만 승무원들은 자긍심을 느낀다고 했다. 무너진 한국해운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여건에서 70여일간 유럽 구간을 오가며 바닷길을 닦는 건 이들의 몫이다.

염 선장은 "대형 선박이 투입되기 전 미리 길을 닦아두고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공급해야 운영차질을 최소화할 수 있다"며 "쉬운 항로가 아니기에 2020년 초대형 선박 투입 후에도 계속 키를 잡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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