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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해운 짊어진 현대상선 "선대확대로 씨 뿌렸다"

[다시 쓰는 韓해운①]홀로 남은 현대상선, 글로벌 공룡들과 외로운 싸움

(로테르담·함부르크=뉴스1) 임해중 기자 | 2018-12-14 16:21 송고 | 2018-12-14 17:03 최종수정
편집자주 뿌린 씨가 싹을 트지도 않았는데 수확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한국 해운업을 짊어진 현대상선을 겨냥한 말이다. 단기성과를 요구하며 현대상선 지원이 불합리하다는 목소리까지 감지된다. 옛 한진해운의 악몽이 떠오른다. 산업 생태계를 고려한 정책 없이 금융논리에 끌려 다니다 결국 한진해운은 문을 닫아야했다. 수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현대상선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흔들기는 곤란하다. 수출산업이 경제를 지탱하는 우리나라가 무역 강국 위상을 회복하려면 현대상선이 우선 덩치를 키워야한다. 현장에선 안간힘이다. 현대상선 아시아·북유럽(AEX) 노선 얘기다. 몸으로 부딪히며 무역 강국 재도약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현장의 모습을 담아봤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월드 게이트웨이(항만)에서 출항 준비 중인 현대수프림(사진=임해중 기자)© News1
네덜란드 로테르담 월드 게이트웨이(항만)에서 출항 준비 중인 현대수프림(사진=임해중 기자)© News1

한진해운 빈자리가 크다. 글로벌 국적 컨테이너선사는 현대상선만 남았다. 선복량 43만TEU(1TEU=컨테이너 20피트 1개) 수준의 현대상선이 적재능력 300만TEU를 훌쩍 넘어선 머스크, MSC 등 해운공룡들과 경쟁하는 건 외로운 싸움이다.

올해 4월 서비스를 재개한 아시아·북유럽(AEX) 노선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경쟁사들이 2만TEU급 배를 띄우며 더 많은 화물을 적은 기름값으로 옮기고 있을 때 현대상선은 4600TEU급 선박으로 힘든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수익을 내는 미주노선 등에 투입된 8600TEU 이상 선박을 빼는 건 불가능하다. 현대상선은 어쩔 수 없이 사선(보유 선박) 중 활용 가능한 선박을 투입했다.

◇ AEX 적자지만 화주신뢰 확보 사전작업

AEX 노선 운영 현황(현대상선 제공)© News1
AEX 노선 운영 현황(현대상선 제공)© News1

과거 한국해운의 알짜 노선이었던 구주에서 적자를 감수하고 영업을 재개한 것은 선대 확대에 대비해 미리 화주신뢰를 끌어올리려는 사전작업이다.

싸움은 고되다. 해운 강국 회복의 짐을 짊어진 해운인들 얘기다. 이달 1일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만에서 AEX 노선 투입 현대수프림호에 몸을 의탁했다. 선적 승·하역 후 함부르크 항까지 가는데 걸린 시간은 이틀에 불과했다.
그러나 치열했다. 10월 부산에서 출항한 이 배는 중국 상하이, 로테르담과 함부르크를 거쳐 홍콩까지 70여일간 파도를 헤치고 나가야 한다.

친환경 대형선박 발주라는 씨앗은 이미 뿌렸다. 해상인력이 작은 배로 해로를 닦고 있다면 네덜란드와 독일 법인 등 육상에선 대형 선박 투입에 대비해 화주 계약을 늘리는데 총력전이다.

현대상선이 발주한 선박 중 탈황설비(스크러버)를 장착한 2만3000TEU급 컨테이너선 12척은 2020년 2분기 AEX 노선에 들어온다.

물론 현재 AEX 노선은 적자다. 2M(머스크+MSC)과 전략적 제휴를 맺으며 지난해 철수한 구간으로 올해 4월 서비스가 재개됐다. 화물 확보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으나 선적률은 80%를 오가고 있다. 꾸준히 관리한 영업 네트워크 덕에 화물을 채울 수 있었다.

화물을 충분히 실어 나르면서도 적자를 보는 원인은 운임이다. 머스크와 MSC 중심의 치킨게임으로 글로벌 해운운임은 곤두박질쳤다. 각국 정부의 막강한 화력지원을 등에 업은 해운공룡들은 저가운임 경쟁을 유도하며 경쟁사들을 무너뜨렸다. 20여곳에 달하던 글로벌 컨테이너선사는 이제 10여개만 남았다.

일각에서는 수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있는 현대상선이 적자노선을 서둘러 정리하거나 선대 확대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AEX 노선을 겨냥한 말이다.

자금지원을 받았으니 수익부터 끌어올리는데 초점을 맞춰야한다는 금융시각과 맞닿아 있다. 기간산업 생태계를 보지 않고 유동성 회수만 주장하다 한진해운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때가 겹친다.

◇ 해운강국 회복 '선대 확대가 유일한 길'

AEX 노선의 영업 요충지인 현대상선 네덜란드와 독일 법인 생각은 다르다. 승선 전·후 방문한 네덜란드와 독일 법인에선 기존 거래 글로벌 물류기업(포워더)들과 계약물량을 늘리는데 초점을 맞추고 영업전략을 짜고 있다.

저가 운임을 제시해 새로운 화주를 끌어 모으기보다 기존 대형 물류기업에게서 더 많은 물량을 받아내면 보다 고수익의 화물을 2만3000TEU 선박에 채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장에선 선대확대에 대비해 화주 물량 확대에 안간힘인데 내부에선 "채권단과의 자율협약 체결 2년이 지났으니 당장 적자폭을 줄여라"다는 요구가 나온다. 이는 취약한 재무구조로 대외 신용도가 떨어지면 AEX 노선에 2만3000TEU 선박을 투입해도 영업활동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로 이어진다.

뿌린 씨가 아직 싹 트지 않았는데 일단 수익부터 내라는 의미다.

이같은 우려에는 모순이 있다. 우선 한국해운의 대외신용도 하락은 한진해운 채권단이 조건부 자율협약을 승인해놓고 4000억원의 자금지원을 거부하며 회사가 문을 닫으며 발생했다.

현 정부가 한국해양공사를 설립해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노력 중이나 한국 해운업에 대한 신뢰는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한진해운 파산으로 글로벌 화주들로부터 접수된 피해액수만 34조원에 달한다.

무너진 대외신용도를 회복하려면 아시아·유럽 노선에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화주 신뢰를 이끌어내는 방법뿐이다. 현대상선이 연간 11척의 배를 투입해 AEX 노선을 지키고 있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적자를 보고 있으니 선대확대보단 재무구조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는 요구는 또 다시 화주 불신을 낳을 뿐이다.

현대상선 입장에서도 선대 덩치를 키워 운영효율을 제고하지 않으면 적자를 줄일 방법이 없다.

최덕림 현대상선 독일법인장(상무)는 "대형선박이 들어오면 기름값 등 똑같은 고정비로 더 많은 화물을 실을 수 있는데 지금은 이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시기"라며 "시작도 안했는데 단기적인 적자를 이유로 선대확대와 노선 운영을 포기하라는 건 근시안적 시각"이라고 지적했다.


haezung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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