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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록의 욜로은퇴] 선이냐 점이냐

(서울=뉴스1)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 2018-12-14 15:01 송고 | 2018-12-14 15:06 최종수정
편집자주 100세 시대, 누구나 그리는 행복한 노후! 베이비 부머들을 위한 욜로은퇴 노하우를 전합니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News1
퍼즐 중에 연필 떼지 않고 그리기가 있습니다. 이 게임은 과거에 어떤 경로를 따라 선(線)을 그렸느냐가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앞으로 내가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 하더라도 이전에 잘못된 선을 그었으면 원하는 그림을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 그리지 않은 상태에서 실패했다고 펜을 던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경우, 미래는 과거에 종속됩니다.

반면에 점으로 구성된 경우를 보시죠. 이는 아무리 촘촘하다고 해도 확대를 하면 단절되어 있습니다. 선으로 이어진 것과는 전혀 다른 불연속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과거에 내가 어떤 점을 찍었느냐에 종속되지 않고 점프가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미래의 점은 과거의 점과 독립되어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 비유는 기시미 이치로가 쓴 '미움 받을 용기'에 나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노후에 어떤 관점으로 인생을 바라보느냐 하는 문제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노후의 삶은 선으로 보는 관점이 있고 점의 집합으로 보는 관점이 있습니다. 전자는 원인과 결과로 촘촘하게 엮여 있어서 미래가 과거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어릴 때 받았던 경험이 무의식에 축적되어 인간의 행동을 결정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자유의지가 없다고 선언한 셈이죠.

인간 행동이 과거에 의해 결정된다는 면에서 선 그리기 퍼즐이나 프로이트 심리관은 비슷합니다. 마치 인생을 결정하는 식이 있어서 설명변수 값(과거의 행동)이 대입되면 결과인 종속변수(미래의 행동)의 값이 자동으로 툭 튀어나오는 식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노후의 삶은 인생 전반부의 일들에 의해 상당부분 결정되어 버립니다.

점의 집합으로 보는 후자의 관점에서 점은 여러 사건이라 볼 수 있습니다. 80년을 살았고 하루에 평균 100개의 사건들이 있었다면 292만개의 사건이 인생에 일어나는 셈입니다. 작은 사건까지 감안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수 있고 큰 사건만 추린다면 더 적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건들이 무의미하게 나열되어 있을 수도 있고, 마치 점묘법으로 그린 그림처럼 의미 있는 모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점들의 연결(connecting the dots)’을 연설하면서 우연인 듯한 인생의 점들이 의미 있게 연결되는 게 삶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일어났던 사건들(양부모를 만난 것, 대학 중퇴, 글씨체 공부, 애플 창업 등)이 그 당시는 이유를 몰랐지만 세월이 흐르고 보니 모두 연결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현재’의 점을 찍는 데 최선을 다하고 옆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하나의 점이 되니 그 인연을 소중히 여기라고 합니다.

선과 점의 관점은 모양을 만들어간다는 데 있어서는 유사해 보입니다. 하지만 선은 자신이 과거에 그렸던 그림을 쳐다보게 만드는 반면에 점은 과거에 찍었던 점들을 쳐다 보지 않고 미래의 점들을 찍어 가게 합니다. 선은 과거의 그림이 보이지만 점으로 이루어진 집합은 세월이 흘러서야 그 의미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삶을 점을 찍어 나가는 것으로 보는 관점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인들은 그날 그날이 새롭게 시작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해지기 전에 낮에 가졌던 분한 마음을 풀라고 합니다. 히브리인들은 해지는 게 하루의 시작이기 때문에 새로운 날이 시작하기 전에 이전의 마음을 풀라는 뜻입니다. 그뿐 아니라 7년이 7번 되고 난 50년 째인 희년(禧年) 때는 모든 것을 풀어 주고 새로이 시작합니다. 노예로 있던 사람에게도 자유가 선포되므로 희년이 가까워지면 노예의 가격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노후의 삶은 ‘점(點)의 관점’을 가져보는 게 어떨까 합니다. 이 관점은 다음의 장점이 있습니다. 우선, 과거에 자신이 그은 선에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내가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었는데’라고 하면서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벽이 허물어집니다. 성공한 그림에 집착하면 변화한 삶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도 수 년 동안은 변화한 환경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퇴직 후 물 빼는 데만 3년 걸린다고 합니다. 성공뿐 아니라 과거의 실패에도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과거와 관계 없이 새로운 점을 찍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무엇을 완성하고 이루어야 한다는 데 집착하지 않습니다. 노후에는 언제 갑자기 아플지 혹은 세상을 떠날지 모릅니다. 노후에 완성해야 할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언제 아플지 언제 죽을지 초조해하고 집착하게 됩니다.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끝내지도 못했을 때 아프거나 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갖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점의 관점으로 본다면 그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면 될 따름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그리고 여기’에 최선을 다해 점을 찍으면 됩니다. 그 점들이 언제 끝났든지 간에 의미 있는 연결을 해 줄 것은 하늘의 몫입니다. 사람의 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의 자세라고 할 수 있죠.

노후의 삶은 관점이 중요합니다. 저는 철인(哲人)이 아니기에 선과 점 중 어떤 삶의 관점이 올바르다고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어떤 관점을 가졌을 때 노후의 삶이 행복해질까를 생각해 봅니다. 이 기준에서는 선의 관점보다는 점의 관점을 갖는 게 답이라고 판단됩니다. 선의 관점이 옛 술 부대를 계속 갖고 있는 거라면 점의 관점은 새 부대를 갖는 것입니다. 인생 2막이라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 이 글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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