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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인생]⑤'아내 임신 4개월'…모두가 말렸지만 삼성전자 사표 왜?

"내 이름 박힌 브랜드에 대한 열망 포기 못해"…아내의 지지도 큰 힘

(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2018-12-17 08:00 송고 | 2018-12-17 08:59 최종수정
편집자주 청년실업 100만시대에 잘나가는 대기업을 때려치우는 30·40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그들도 '미친 짓'이란 주위의 평가가 틀리지 않았다고 인정한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학원가다. 세무사·공인회계사·공인중개사·9급 공무원 등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또 다른 엘리트 직장인들은 퇴사 후 창업을 하고 있다. 이들은 "더 미룰 수 없었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억대' 연봉조차 마다하고 사표를 쓰는 이들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안중근(오른쪽)·임동률 하울팟 대표가 최근 서울 용산구 하울팟 매장에서 뉴스1과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News1
안중근(오른쪽)·임동률 하울팟 대표가 최근 서울 용산구 하울팟 매장에서 뉴스1과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News1

"미쳤어? 삼성전자를 나간다고?"    

지난 2015년 5월 안중근씨(당시 30세)가 3년간 몸담았던 삼성전자를 나간다고 하자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말했다. '국내 대표기업'의 제품디자이너로 일하던 그의 연봉은 당시 직장인 평균연봉의 약 2배. 게다가 사직서를 낼 당시 그의 아내는 임신 4개월이었다.    
주변 사람 모두 "먹고살 길이 막막해질 것"이라며 그를 말렸다. 가족들까지 그의 아내와 곧 태어날 아이를 생각해야 한다며 설득했다. 안주머니에 든 사직서를 찢어야 하나 고민하던 그에게 아내가 다가와 말했다.    

"오빠 하고 싶은 대로 해. 어릴 때 도전해 보지 언제 해보겠어?" 그는 이 한마디에 미련없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안씨의 백수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모든 디자이너들은 가슴 속 한편에 '내 브랜드, 내 제품을 만들겠다'는 꿈을 꾸며 살고 있습니다. 주어진 일, 세분화된 일을 해야 하는 대기업에선 내 작품을 만들겠다는 꿈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전 꿈을 꾸고 싶었습니다" 

그가 사표를 던진 이유다. 
◇ 첨단 전자제품 디자이너가 반려동물 제품을?…어린시절 '아픈' 기억 탓

최첨단 전자제품을 디자인하던 안 대표와 반려동물 사업은 언뜻 봐서는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 그가 반려동물 사업에 뛰어든 것은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이다.  

안 대표가 처음 강아지에 관심을 가진 건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강원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의 집은 삼촌이 데려다놓은 개들로 가득했다. 시골이었기 때문에 '앞집 개는 우리집 개, 우리집 개는 앞집 개'로 취급됐다. 자연스럽게 개는 그의 친구이자 가족이 됐다. 늘 개들과 함께 마을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그러나 당시만 하더라도 시골에는 '보신탕' 문화가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어르신들은 종종 마을을 돌아다니는 개들을 보신용으로 잡아먹었다. 어제 본 개가 다음날부터 보이지 않은 일은 흔하게 일어났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키우던 셰퍼드 1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어른들은 '군부대에서 보신탕을 해먹기 위해 몰래 훔쳐간 것'이라며 찾을 수 없으니 포기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안 대표는 친구이자 가족이었던 셰퍼드를 꼭 찾겠다고 다짐했다. 반려견이 보신용으로 잡혀간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하루 종일 마을을 뒤졌지만 흔적 하나 보이지 않았다.

보름쯤 지났을까, 방에서 슬픔을 삼키던 안 대표의 귀에 웬 짐승의 우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우리 개가 아닐까?' 정신을 차리고 집 밖으로 나간 그의 눈앞에는 마르고 지저분한 개가 서있었다. 털은 흙투성이였고, 나뭇가지와 먼지가 뒤덮여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짐승이 몇날 며칠을 찾던 셰퍼드라는 걸 바로 알아챘다. 개는 그에게 달려와 꼬리를 흔들며 안겼다.

안 대표는 "가족에게 돌아오기 위한 탈출기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면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그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며 "사람에게 상처 받았지만 질투와 증오 대신 무한한 사랑을 선보인 개가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을 가진 뒤 조금이라도 동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강아지를 위한 작품을 만든다면 직장인 시절처럼 안정적이진 않더라도 만족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언뜻 어울리지 않는 반려동물 사업에 뛰어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프랑스 파리 봉마르셰 백화점에서 판매 중인 하울팟 제품들.(사진 봉마르셰백화점 인스타그램)© News1
프랑스 파리 봉마르셰 백화점에서 판매 중인 하울팟 제품들.(사진 봉마르셰백화점 인스타그램)© News1

◇ '동물'이 맺어준 인연… '창업' 힘들지만 '자아실현'에 만족 "후회 없다" 

반려동물과 함께 했던 어린시절은 사업 파트너인 임동률씨와 의기투합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대학 시절인 2011년 삼성전자의 디자인 영재 후원 프로그램에서 처음 만났다. 함께 삼성에 입사해 각각 TV와 스피커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임 대표도 장래희망이 수의사였을 만큼 개를 무척 좋아했다. 개들의 천국인 미국에 살았던 영향도 있었다. 그러나 반려견인 리트리버를 입양해 키우다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경험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가족처럼 여기던 반려동물이 죽은 뒤 상실감과 우울증상을 나타내는 펫로스 증후군을 앓았고, 동물을 위한 일을 하겠다는 꿈은 사라져갔다. 그러다 안 대표와 대화를 나누던 중 서로가 동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게 되면서 '펫산업'에 뛰어들겠다는 결정을 하게 됐다. '동물을 위한 일을 하자'며 두 사람은 삼성전자에 사표를 제출했다. 그렇게 이들의 제2의 인생 막이 올랐다. 

창업의 길은 결고 쉽지 않았다. 퇴사 직후 돈이 없던 그는 친구가 운영하는 사무실 한편에 있는 작은 창고를 빌렸다. 매일 밤샘이 이어졌다. 그러나 피로를 느낄 겨를이 없었다.

특히 안 대표는 그를 믿어준 아내를 위해서라도 꼭 성공해야만 했다. 그렇게 끊임없이 고민하고 준비한 둘의 백수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퇴사 약 5개월이 지난 2015년 11월 안씨와 임씨는 반려동물 디자인 브랜드 '하울팟'(HOWLPOT)의 대표가 됐다. 

그렇게 둘은 창업 3년 동안 열심히 달려왔다. 성장을 거듭한 하울팟은 현재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CU(씨유)와 계약을 맺고 '하울고' 론칭했다. 현재는 1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고 유명 호텔 내 펫케어센터 운영까지 하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적 명품브랜드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과 손을 잡고 세계 최초 백화점인 프랑스 파리 봉마르셰 백화점에서 팝업스토어도 열었다. 추후 제품디자인 등도 협업할 예정이다.  

그러나 하울팟의 성공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자연스레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에 대해 안 대표는 "사실 이전 직장에서도 워낙 야근이 많아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못했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며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퇴사를 하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것"이란 생각은 확고하다. 그는 "그곳에 남았더라면 겪지 못할 다양한 일들을 겪었다"며 "우리가 만들고 싶은 제품들을 직접 디자인해 제작·판매·유통까지 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반려동물도 디자인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존재'라는 슬로건으로 시작한 제품디자인 사업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보는 전시나 브랜드쇼, 세미나 등을 주최하면서 반려동물에 대한 토털케어를 실현 시켜나가는 일을 하는 것도 굉장히 들뜨는 일"이라며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때의 설렘과 원하는 것을 이뤘을 때 즐거움을 상상하며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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