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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강화중성에서 방어시설인 '치'와 '외황' 처음 발견

목책 구덩이 9기와 두겹의 외황 확인

(서울=뉴스1) 여태경 기자 | 2018-12-06 10:10 송고 | 2018-12-06 15:11 최종수정
고려 강화중성의 '외황' 모습.(문화재청 제공)
고려 강화중성의 '외황' 모습.(문화재청 제공)

고려 강화중성에서 방어시설인 목책 치(雉)와 외황(外隍)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재)한백문화재연구원(원장 서영일)에서 허가를 받아 조사 중인 강화 옥림리 주택신축부지에 대한 소규모 국비지원 발굴조사에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6일 밝혔다.

'치'는 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방어시설이며 '외황'은 성벽 밖에 둘러 판 물 없는 도랑이다.

고려는 1232년(고종 19년) 몽골 침략에 맞서 수도를 강화도로 옮겼다. 이후 강화는 1270년(원종 11년)까지 39년 동안 개경을 대신해 고려의 도성 역할을 했다. 당시 고려는 내성을 비롯해 외성, 중성(외성과 내성 사이) 등을 차례로 축조해 모두 세 겹의 성벽이 겹겹이 둘러싼 요새를 구축했다.

이 중 강화중성은 흙을 다져 만든 약 8.1㎞에 달하는 토성으로 이번에 발견한 목책 치와 외황이 발견된 지점은 강화중성이 시작하는 강화읍 옥림리의 옥창돈대 부근이다.

조사 결과 강화중성 토성벽에서 밖으로 돌출된 능선부에서 고려 시대 강화중성과 함께 만들어진 목책 구덩이, 외황, 초소 등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또 신라토기 폐기장도 발견돼 신라시대부터 이곳에 군사목적의 방어시설이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다.

강화중성의 목책 치와 외황 조사지역 전경.(문화재청 제공)
강화중성의 목책 치와 외황 조사지역 전경.(문화재청 제공)

목책 구덩이는 모두 9기가 확인됐는데 능선을 따라 한줄을 이루는 형태로, 목책에 사용했던 나무 기둥을 뽑아내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기둥자리를 파내고 파낸 흙으로 다시 메운 상태다.

'고려사절요'의 기록(권17 고종 46년 6월)에 따르면 몽골은 고려와의 전쟁을 끝내기 위한 강화협정을 맺으면서 강화도성을 허물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후 실제로 몽골 관리가 성벽을 허무는 과정도 감시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연구원 측은 "이번 조사에서 기록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강화중성의 일부인 목책을 인위적으로 허물고 다시 메운 흔적이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황은 목책 치를 두 겹으로 둘러싸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h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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